책속에서
p. 31 물론 사유는 진리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유가 그 자신일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이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할 때뿐이다. 이는 진리를 향해 떠나는 것, 즉 진리를 향해 가는 중인 것, 장애물을 극복하고, 자신의 비겁함과 안일함을 고발하며, 관성을 거부하고, 환상과 환영을 자유롭게 논파하고, 너무 빨리 예라고 말하기를 강요하는 모든 억압에 대해 그 권리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p. 34 “사유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라는 의사표시는 잠든 인간의 것임에 주목하라. 반대로 깨어남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말한다.”
pp. 42-43 타자에 맞서기 전에 그리고 타자와 맞서기 위해 — 그 모든 형태에서 그것이 타인이든 세계든 폭군이든 설교자든 심지어 친구든 — 내가 먼저 대면해야 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적이기 때문이다. 이 적은 나에게 잠을 속삭이고, 도망치기를 권하며, 나로 하여금 저항하지 않고, 검토하지 않고, 항복하거나 설복하게 만드는 내부의 패배주의자다. 그러므로 정신은 트로이전쟁과 같은 것을 벌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적이 항상 이미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p. 76 깊은 잠에 빠진 자 혹은 알랭이 말하는 광인,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나 완전한 맹신의 상태에 있는 자가 만일 순수한 상태로 실존한다면, 그는 ‘예’뿐만 아니라 ‘아니요’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꿈도 꾸지 않고 잠에 빠진 상태, 꿈 그 자체 그리고 순수한 착란의 상태는 언어가 더이상 긍정이나 부정이라는 범주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는 영역이다.
p. 140 불안은 “왜 어떤 것이 있고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불안은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피의 기투 자체가 내가 불안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불안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