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6
철학적 작업은 동일한 대상을 다르게 탐구하는 노력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곤 하는데, 그러한 관계에 관한 규정으로 인해 낯선 관심이 생기게 되며, 철학적 작업이 진리에 대한 인식에서 도달해야 할 목표가 불분명해진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의 대립에 관한 주관적 생각(Meinung)에 강하게 사로잡힐 때 그러한 생각은 현존하는 철학적 체계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를 기대하곤 하며, 그러한 철학적 체계에 대한 해명에서 오직 이것 아니면 저것만을 볼 뿐이다. 이러한 주관적 생각은 철학적 체계의 다양성을 진리의 진보적 발전으로 파악하지 않고 그 다양성 속에서 오직 모순만 보고 있을 뿐이다.
p.44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은 자신의 본질에 동요하지 않고 유효한 특정 생각에 속한다. 그 본질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다른 것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되고 고정된 채로 있다. 그에 반해 진리는 주조된 동전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 반드시 언급되어야 한다. 동전은 그저 완성되어 주어지고 그렇게 주머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악이 거의 없는 것만큼 거짓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각한 것은 악마처럼 악하지만 거짓되지 않은 경우다. 왜냐하면 악과 거짓은 심지어 악마처럼 특수한 주체들이 되기 때문이다.
p.128
이로써 그 한정은 사라진다. 그 한정이란 자립적 존재와 타자에 대한 존재를 구분한다. 대상은 오히려 하나의 어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되돌아봄 속에서 자신의 대립물이며,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한에서 자립적이고 자립적인 한에서 타자를 위한 존재이기도 하다. 대상은 자립적이며 자신 안으로 반성된 것이고 하나로서 존재한다. 하지만 자립적이고 자신 안으로 반성된 하나로서 존재하는 것은 자신의 대립물과의 통일 속에 있으며 동시에 어떤 다른 것을 위한 존재와의 통일 속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하나로 존재함은 오직 지양된 존재로서 정립된다. 또는 자립적 존재는 오로지 비본질적인 존재, 즉 타자와의 관계로 존재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본질적이다.
p.190
주인은 자신을 위해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이다. 하지만 주인은 더 이상 의식의 개념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하나의 다른 의식을 통해 매개된다. 즉 하나의 그러한 의식을 통해 매개된다. 그 의식이 자립적 존재 또는 사물성 일반과 합성된다는 점은 그러한 의식의 본질에 해당한다. 주인은 이러한 두 가지 계기와 관계를 맺는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 주인은 하나의 사물 자체, 즉 욕망의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 다른 한편으로 주인은 사물성이 자신의 본질인 그러한 의식과 관계를 맺는다.
p.191
노예는 자기의식 일반으로서 사물과 부정적으로 관계하고 그 사물을 지양한다. 하지만 사물은 동시에 노예에게 자립적이다. 따라서 노예는 [사물에 대한] 자신의 부정을 통해 사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까지 이를 수 없다. 또는 노예는 사물을 오직 가공할 뿐이다. 이와 반대로 주인에게는 이러한 매개를 통해 이러한 직접적 관계는 사물에 대한 순수한 부정이 되거나 향유가 된다. 이로써 충족되지 못했던 욕망은 주인한테서는 충족되고, 주인은 그러한 향유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