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문제를 배제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은 미완의 가정에 불과할 뿐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강을 건너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분명 ‘삶’의 시간인데, 나는 이러한 점을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혹시 다들 나와 같다면 삶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이해는 반쯤 가다 만 셈이다. 생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맞닥뜨릴 ‘더 나은 죽음’에 대한 고민과 대처 방안까지 포함시켜야 진정한 의미의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18~19쪽
결론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혼자여도 ‘더 잘 죽기’ 위해서는 결국 오늘 하루를 ‘더 잘 살아야’ 한다는 명쾌한 사실이다. -80쪽
아버지는 완전히 겁에 질려 계셨다. 운명의 포승줄에 묶여 질질 끌려가며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표정, 내 아버지의 얼굴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는 없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정신은 차리고 자기다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를 낫게 할 방법은 없지만, 운명이 허락한 시간까지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평안한 시간을 보낼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마음먹었다. -101쪽
아버지 얼굴에 남겨진 표정에는 그간 내가 알아오던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엇이 느껴졌다. 무언가에 깊이 몰두하여 초월에 이른 사람의 표정이라고나 할까. 거기엔 단순히 ‘죽었다’고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낡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아버지는 무엇이 되셨을까. 어디로 가셨을까. 너무도 궁금했다. 육체를 떠나면서 남긴 사람의 마지막 표정이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은 말할 수 없는 황홀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슬픔과 경이로움을 오가는 양가적 감정 사이에서 언젠가 겪게 될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깊은 호기심이 피어나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03~104쪽
삶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건 분명하나 그 시점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직 젊고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죽음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인생 전반을 설계하는 차원에서,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시각으로 ‘내 삶’을 연구하였듯 ‘내 죽음’ 또한 연구할 수 있어야 공평한 일이다. 죽음이 저만치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이미 패배감을 안고 시작하는 일이 되므로 공평하지도, 여유롭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죽음의 주체로서 당당히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갖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기도 하다. -139쪽
병원에서는 ‘비위관(콧줄)’ 삽입을 통한 영양 공급을 권하였다. 그다음 수순을 물으니,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하여 그곳에서 비위 관 관리를 받으며 지내시면 된다고 했다. 결국 낯선 요양병원에서 콧줄에 의존해 연명하다가, 위급해지면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이른바 ‘연명 셔틀’을 반복하며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155쪽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사결정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계획과 결정을 합법화함에 있어서 당사자의 의사결정능력이 취약한 상태라고 판단되면 그 결정을 위한 권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필요한 과정과 절차를 이행하는 것이 몹시도 중요하다. -207쪽
‘셀프 돌봄’은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의지이며 태도이다. 이는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출발하며, 성인이 될수록 더더욱 강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성인이 된 후 노화의 과정을 겪으며 노인이 되어가는 사이에도 그 본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역량은 비록 취약해지더라도 존엄한 인간으로 늙어가기 위한 의지와 살아온 세월만큼 두터워진 삶의 지혜가 이 부분을 더욱 강화해줄 것이라 믿는다. 늙음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 법을 찾고 존엄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만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믿기 때문이다. -231쪽
한평생의 삶을 보내고 유효기간이 다한 육체가 맞이하게 될 죽음은 ‘극복해야 할 질병’이 아니다. 싸워서 이겨야 할 적도 아니고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 선을 방해하는 악도 아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지점에 놓인 삶의 일부이며 삶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마침표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완성해갈 내 삶의 서사 디자인의 핵심은 어떻게 그 마침표를 찍을지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92~293쪽
내 몸 안에 들어 있던 너와, 네 몸 안에 들어 있던 또 다른 생명. 그렇게 보면 너는 네 딸의 껍질이고 나는 너의 껍질인 셈이니, 엄마는 ‘대왕 껍질’이 되어 이뤄낸 그 풍경이 참으로 대견하고 벅찼다. 내 속에서 나온 소중한 알맹이가 더더욱 소중한 알맹이를 내어 우리가 삼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격스러웠어. -3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