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책을 읽는 걸까, 감각하는 걸까?”
독서율이 놓치고 있는
책과 사람 사이의 새로운 관계
1년 전 서울국제도서전은 예상 밖의 풍경으로 가득했다. 개장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이어졌고, 인기 출판사 부스에는 오픈런이 벌어졌다. 한정 굿즈와 사인본은 빠르게 품절됐고, 사람들은 책을 고르는 장면과 서점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남기며 SNS에 공유했다. 젊은 독자들은 무거운 책봉투를 든 채 전시장을 몇 시간씩 돌아다녔고, 어떤 부스 앞에는 마치 인기 팝업스토어처럼 긴 대기줄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렸다.
“정말 책을 읽어서 온 걸까?”
“독서가 아니라 인증 문화 아닌가?”
“책도 이제는 보여주기 위한 취향이 됐다.”
서울국제도서전을 둘러싼 냉소와 비아냥이 이어지던 순간, 오히려 2030 세대는 한 문장에 강하게 반응했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다.”
그 글은 빠르게 확산됐고, 수많은 공감과 함께 100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얻었다. 많은 이들이 “내가 느끼던 걸 처음 설명해준 글”이라고 반응했다. 그 화제의 글을 쓴 사람이 바로 《읽는 감각》의 저자 정도성이다.
《읽는 감각》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왜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서점으로 향하고 책을 사고 책 이야기에 열광할까. 왜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읽지 못할 책을 사면서도 만족감을 느끼고, 왜 우리는 책장을 꾸미고 읽는 시간을 기록하며 책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까.
저자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독서 감소'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책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고 감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독서는 단순히 텍스트를 완독하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은 책의 문장과 분위기, 읽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책을 둘러싼 경험 전체를 함께 소비한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를 '읽는 감각'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독서를 해야 한다는 당위나 위기 담론 대신, 지금 사람들이 실제로 책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관찰한다.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 시대, 《읽는 감각》은 우리가 이미 체감하고 있었지만 설명하지 못했던 독서 문화의 변화를 날카롭게 언어화한다.
물성, 성장, 의미, 언어
책을 사랑하는 서로 다른 4가지 방식
이번 책에서 저자가 특히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것은, 사람들이 '같은 책'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읽는 감각》은 이 변화된 독서 경험을 단순한 취향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 유형'으로 해석한다.
누군가는 책의 문장보다 종이의 질감과 표지 디자인, 책장을 넘기는 감각에 끌린다.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확인하고 싶어 하며, 또 다른 사람은 책을 통해 관계를 만들고 세계와 연결되기를 원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완독보다 “읽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감각” 자체를 사랑한다. 《읽는 감각》은 이렇게 서로 다른 독서의 욕망과 행동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오늘날의 독자를 네 가지 감각 유형으로 풀어낸다.
'물성을 감각하는 사람'은 책의 무게와 촉감, 표지와 판형 같은 물리적 경험에 강하게 반응한다. 읽지 않은 책조차 곁에 두고 싶어 하고, 책장을 하나의 취향 공간처럼 꾸민다. 저자는 사람들이 왜 '벽돌책'에 끌리는지, 왜 어떤 책은 내용보다 디자인만으로도 소유 욕구를 자극하는지를 심리학과 실제 서점 경험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성장을 감각하는 사람'에게 책은 자기 변화의 기록이다. 완독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이다. 형광펜을 긋고, 기록하고, 독서 루틴을 만들며 스스로의 변화를 확인한다. 책은 더 이상 시험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리듬을 점검하는 매개가 된다.
'의미를 감각하는 사람'은 책을 관계의 언어로 사용한다. 혼자 읽는 데서 끝나지 않고, 북클럽과 동네서점, 독서 모임을 통해 연결을 만들어간다. 책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게 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느슨한 공동체의 중심이 된다. 실제로 저자가 운영하는 서점에서는 함께 페인트칠을 하고, 퇴근 후 책을 읽으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언어를 감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읽기의 중심을 종이책에만 두지 않는다. 종이책과 전자책, 오디오북과 뉴스레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읽기 리듬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지금의 삶과 가장 잘 연결되는 읽기의 방식이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독서를 '해야 하는 것'으로 훈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지금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책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관찰한다. 왜 읽지 못할 책도 사고 싶은지, 왜 서점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지, 왜 책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지. 《읽는 감각》은 그 익숙하지만 설명되지 않았던 마음들을 하나의 언어로 정리해낸다.
독서율 하락이라는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대. 《읽는 감각》은 책이 더 이상 단순한 정보의 도구가 아니라, 감각과 취향, 관계와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는 매체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