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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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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크루이프


  • ISBN-13
    979-11-430-2910-2 (03690)
  • 출판사 / 임프린트
    커뮤니케이션북스㈜ / 지식공작소
  • 정가
    15,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6-06-17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요한 크루이프
  • 번역
    -
  • 메인주제어
    자서전: 스포츠인
  • 추가주제어
    축구 및 연관게임
  • 키워드
    #자서전: 스포츠인 #축구 및 연관게임 #축구 #자서전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8 * 188 mm, 381 Page

책소개

축구는 발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게임이다. 현대 축구의 기본 개념은 반세기 전 아약스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토털풋볼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 크루이프는 토털풋볼의 철학을 피치 위에서 완성시키며 축구의 역사를 바꿨다. 단순히 이기는 축구를 넘어, 팬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상주의자이자, 모든 걸 경험에서 배웠던 경험주의자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삶이 축구 그 자체였던 위대한 스포츠맨의 드라마가 생생히 펼쳐진다.

목차

머리말
 

01 나의 삶은 처음부터 축구였다

기량과 스피드, 기술과 득점

모든 것은 길에서

한쪽 눈이 의안이었던 아버지

아약스에 처음 간 날

드레싱룸부터 선발멤버까지

숫자로 축구 생각하기

내가 가장 싫어한 훈련

유소년팀 훈련의 핵심

선수를 보호하는 방법

미헬스 감독과의 만남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해요?

아버지와 손목시계

완전한 아약스의 식구

야구에서 배운 것

심리적으로 강한 선수

유니폼을 직접 빨면서

 

02 바르셀로나 이적

토털풋볼의 중심

다듬지 않은 다이아몬드

처음 퇴장당했을 때

전반전 4ᐨ0

경기 내내 노래하는 관중

유러피언컵 우승

축구의 모든 것은 거리 문제

감아 차기 골의 기억

내 장인과 이야기하세요

알아서 잘해 봐

주장 투표의 결과

바르셀로나 이적

6ᐨ0과 해트트릭

아들 조르디의 탄생

아이의 이름을 정할 권리

뒤로 처져서 플레이

 

03 1974년 서독 월드컵

대장이 필요하다

토털풋볼의 정수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오렌지색 옷을 입은 관중들

크루이프 턴 등장

잔디의 차이

수비의 진수는

우리가 패한 이유

끔찍한 사건

내가 놓친 기회

말도 안 되는 소문

 

04 나의 운명

바르셀로나라는 클럽

퇴장을 당했다

원하지 않은 고별전

세금으로 맞은 뒤통수

미국에서 시작한 새 삶

축구계의 신사협정

진정한 스포츠 강국

샤킬 오닐과 야오밍

5명과 500명

야구와 숫자와 승부

뺨을 부비며 인사하는 아이

미국 축구의 힘

유럽과 미국의 차이

 

05 팬을 즐겁게 하는 축구

다시 아약스로

나와 동갑인 젊은 감독

팀 운영에 대한 불만

너무 많은 돈을 번다

감독의 생각을 구현한 선수

2ᐨ8의 대패 이후

새아버지의 죽음

축구 지도자의 자격

진정한 전문가 만들기

120분 뛰고 웃는 선수

축구의 훈련 강도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팀

 

06 드레싱룸의 지배자

감독 요한 크루이프

축구를 하고 싶었다

선수들의 연봉

영입에 실패했던 경험

팀에서 제외한 선수

아약스와 결별

드레싱룸을 지배하는 감독

세 가지 패스의 가능성

3미터 거리에서 태클

최적의 간격 찾기

담뱃갑 트래핑

내 심장의 속도

유럽을 정복한 그해

 

07 그는 준비된 선수인가?

이성을 잃는 사람들

선수가 수술받을 때

조르디의 1군 데뷔

최악의 악재

히딩크 감독의 선발

승리를 추구하는 자질

10만 명이 퍼붓는 야유

조르디가 받은 차별

퍼거슨 감독의 관심

잉글랜드의 놀라운 분위기

그가 성취한 위치

 

08 나는 언제나 이상주의자였다

해 본 일은 그만

6대 6 축구

크루이프 코트의 시작

판 바스턴의 귀환

20세기를 마무리하는 방법

뛰어난 축구 선수는 예술가

레이카르트를 추천한 이유

의견 차이가 심한 이유

50대 50의 상황

축구를 통한 정치

나 자신의 관점

 

09 바르셀로나를 완성한 정신

이사회냐 회장이냐

축구를 기준으로 결정하기

극약 처방에 걸리는 시간

레이카르트의 바르셀로나

다른 감독, 다른 축구

레이카르트와 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의 정치 싸움

 

10 이 팀은 더 이상 아약스가 아니다

기존 코치진 정리하기

아약스의 낡은 방식

0ᐨ2였지만 0ᐨ12로 졌다

분노가 너무나 커서

선수 출신 적임자

클럽보다 자신의 안위

정치 싸움에 휘말리다

온갖 터무니없는 소문

내가 인종차별을 했다고?

선수들이 무시당한다

크루이프 플랜의 사명

판 할의 복수?

주주 73퍼센트가 요구한 사임

 

11 크루이프 플랜

잠을 못 이루는 날

한 가지 옥의 티

바르셀로나는 되고 아약스는 안 되고

링의 리포트

아약스 문제의 핵심

철저히 무시당하는 상황

너무도 많은 정치 싸움

빔 용크의 축구

열린 마음을 가진 이사들

그건 내가 잘 압니다

나 역시 달려갈 것

 

12 정상급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승리의 압박에 익숙한

가서 자라고. 내일 경기 있잖아

과르디올라와 나

판 바스턴의 복수

외국인 선수 제한

팬들이 원하는 축구

양쪽 발을 잘 쓰는 골키퍼

4ᐨ3ᐨ3을 쓸 줄 아는

저 선수를 막지 않는다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

운영진의 일과 선수의 일

나는 특별한 사건의 일부

 

13 토털풋볼

10미터의 간격

다섯 라인을 활용할 때

토털풋볼의 핵심

골키퍼가 첫 번째 공격수

공격수가 첫 번째 수비수

최전방 선수의 움직임

나쁜 플레이 유도하기

공을 잃으면 할 일

헤딩에 미숙한 선수들

세계 최고의 베스트 11

펠레와 마라도나

 

14 책임질 줄 알았던 스포츠맨

크루이프 파운데이션의 성공

사람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경험에서 모든 것을 배운 사람

크루이프 인스티튜트

지도자의 임무

요한 크루이프 월드

어린이가 더 많이 운동하려면

히딩크를 존경하는 이유

나의 롤 모델

나만의 학교에서 배운 것들

크루이프의 열네 가지 규칙

항상 불평하는 사람

나처럼 고집 센 아들

여덟 명의 손주

정상에 있는 사람들의 방식

책임질 줄 알았던 스포츠맨

 

감사의 글

크루이프의 생애

옮긴이의 말

본문인용

축구를 잘하는 선수란 공을 단 한 번에 터치하고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아는 선수다. 이것이 네덜란드 축구의 핵심이다. 나는 늘 축구는 아름다우면서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아약스 시절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술과 전술이다. 많은 감독이 움직임을 강조하고 많이 뛰라고 하지만, 나는 너무 많이 뛰지 말라고 말한다. 축구는 머리로 하는 게임이다. 축구 선수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너무 늦어도 안 된다.

_02 “바르셀로나 이적” 중에서

 

‘토털풋볼’이라는 용어를 누가 처음 떠올렸는지는 모르지만, 이 전술의 의미를 제대로 포착한 표현이다. 토털풋볼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기본이고 선수 간 거리와 포지셔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축구다. 그것이 모든 전술의 토대다. 간격과 포메이션을 제대로 잡고 나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다. 토털풋볼은 강력한 규율을 토대로 한다. 독자적으로 슈팅을 하는 공격수가 있어선 안 된다. 그래서는 토털풋볼이 되지 않는다. 한 선수가 상대 선수를 압박하기 시작하면, 다른 모든 선수가 그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토털풋볼이다.

_03 “1974 서독 월드컵” 중에서

 

나에게 축구란 하나의 감정이다. 선수 시절 나는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가만히 지켜본다거나 벤치에 앉아 투입되기만 기다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으로서도 늘 스스로가 즐거운 축구, 완벽한 축구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팀에서 일하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축구에 대해 이야기하길 바랐다. 하루 종일이라도. 바로 그것이 내가 바르셀로나와 그 팬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것이었다. 내가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바르셀로나에는 그런 면이 부족했다. 그들이 축구에 대해, 어떤 축구를 구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가십으로 주고받는 대화조차 축구 이야기이기를 바랐다.

_06 “드레싱룸의 지배자” 중에서

 

과르디올라가 나의 바르셀로나 시절에 대해 한 발언도 그 한 예다.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에 대성당을 세웠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이 말은 단어 하나하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대단히 큰 울림을 선사한다. 난 그저 모두에게 가장 좋은 일을 했을 뿐이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아약스에서도. 다행히 바르셀로나에서는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헹크 텐 카터, 펩 과르디올라, 치키 베히리스타인 같은 사람들 덕분에 펩이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해 준 그 ‘대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나는 이에 대해 그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그건 단순히 내가 사랑한 축구가 아니다. 팬들도 사랑한 축구다. 축구가 반드시 보여 주어야 하는 축구다.

_12 “정상급 축구” 중에서

 

축구에 대해 논할 때 나는 일부러 선수들의 체력을 거론하거나 ‘부지런하게 뛰는 선수’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특히 지난 몇 년간은 그런 것이 지나치게 유행했다고 본다. 그 결과 축구 선수가 공을 차는 시간보다도 뛰는 시간이 많아졌다. 중요한 것은 공간을 잘 활용해서, 발이 아니라 공으로 축구를 만들어 가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선수 개개인에 대한 분석보다 팀 전체의 경기력에 더 초점을 두게 된다. 선수 개개인은 기술과 통찰력, 무엇보다 재능을 다 지니고 있지만, 열한 명의 선수는 반드시 팀 전체로서 함께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통찰력, 즉 팀 전체의 움직임을 보면서 각자가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나는 지금도 경기를 보다가 라인 사이가 벌어져서 일부 선수가 너무 넓은 지역을 커버해야 하는 상황이 눈에 띄면 아주 화가 난다. 관건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야만 좋은 플레이가 나온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기술이다. 공을 다루고 공간을 이용하는 능력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이보다 간단할 수가 없다. 라인을 가깝게 유지하는 통찰력과 공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기술, 그리고 이 일에 필요한 재능만 있으면 된다. 

_13 “토털풋볼” 중에서

서평

현대 축구는 그의 머리에서 시작되었다

발이 아니라 공으로 만들어 가는 축구를 제시하다

볼 소유, 전방 압박, 간격 유지, 고정된 포메이션과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플레이, 빠른 공수 전환, 선수들 간 끊임없이 새로운 삼각형 만들어 내기, 빈 공간으로 침투하는 오프 더 볼 움직임 등 현대 빌드업 축구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개념은 요한 크루이프가 완성시킨 토털풋볼에 기원을 두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길거리에서 축구를 시작한 크루이프에게는 그가 서 있는 곳이 곧 학교였다. 도로의 갓돌을 활용해 불규칙한 공의 움직임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균형 감각을 기르는 식이었다. 네덜란드 청소년 국가대표팀 야구의 포수로 활약하며 경기 전체를 읽는 시야를 터득하는 건 물론이었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꼽히는 리오넬 메시에게 펩 과르디올라가 있었듯이 요한 크루이프에게는 리누스 미헬스가 있었다. 축구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토털풋볼의 혁명은 크루이프와 미헬스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둘은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던 네덜란드를 단숨에 중심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축구의 패러다임 자체를 뒤바꿔 놓았다. 선수들 간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공 주변에서 끊임없이 수적 우위를 점하는 플레이는 축구가 투지와 체력이 아닌 기술과 통찰력의 싸움임을 보여 주었다. 크루이프는 ‘피치 위의 감독’으로서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토털풋볼의 설계도를 현실에서 구현해 냈다. 팀으로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토털풋볼은 단순히 이기는 데 만족하는 축구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축구, 선수와 팬 모두의 즐거움을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축구를 추구했다. 

발롱도르를 3회 수상한, 당대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에 그가 경기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자못 흥미롭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크루이프 턴’, 브라질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인 오렌지 군단, ‘카이저’ 베켄바워와 ‘폭격기’ 게르트 뮐러의 서독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비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불참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등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이어진다. 

 

펩 과르디올라 이전에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다

경험에서 모든 것을 배운 사람

축구 역사를 풍미한 명장들 중에 선수 시절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던 이들이 적지 않다. 리버풀과 맨유를 각각 전 세계적인 명문 클럽으로 발돋움시킨 빌 샹클리, 알렉스 퍼거슨이 그랬고, 현대 압박 축구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AC 밀란의 아리고 사키는 “훌륭한 승마 선수가 되기 위해, 먼저 말이 될 필요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크루이프는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정점을 찍은 드문 경우다.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 감독 재직 시절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우승컵을 바르셀로나에 선사했다. 당시 유소년팀에서 방출당할 뻔한 펩 과르디올라를 1군으로 발탁해서 전술의 핵심으로 삼은 데서 크루이프의 안목과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광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게 씨앗을 심고 떠났다. 자신이 경험한 아약스의 유소년 시스템, 즉 전 연령대 선수가 동일한 전술 철학을 공유하며 자라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바르셀로나에 옮겨 심었고, 이 크루이프의 유산은 펩 과르디올라에게 이어졌다. 펩은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에 대성당을 세웠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라고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출한 바 있다. 

크루이프는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는 동시에 실수에서 교훈을 얻길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강한 개성과 올곧은 성품은 때로 주변과의 불화를 낳곤 했다. 구단 운영진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쓴소리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독불장군은 결코 아니었다. 상대방에게서 배울 점을 찾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 열려 있었다. 공격수로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변화를 회피하지 않았다. 그런 개방성 덕분에 유럽과 시스템이 판이하게 다른 미국에서의 경험을 뒤에 네덜란드 축구계에 이식해 냈다. 축구를 그만둔 뒤에도 스페셜 올림픽, 자신의 재단을 통해 스포츠의 선한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가장 간단한 것이 가장 복잡한 것

13장에서 크루이프는 토털풋볼의 정수에 대해 직접 이야기한다. 그가 보기에 축구 선수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강철 같은 체력이나 뛰어난 신체 능력이 아니다. 그건 바로 공간 활용, 기술, 통찰력이다. 특히 팀 전체의 움직임을 보면서 각자가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팀이 전체로서 함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4-3-3이니 4-4-2이니 하는 포메이션 숫자에 집착하지만, 크루이프는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상대의 강점을 무력화하는 유연성이라고 단언한다. 패스를 줄 때도 동료가 주로 사용하는 발 방향으로 건네고, 수비를 할 때는 상대가 잘 쓰지 못하는 발을 쓰도록 유도하는 아주 기본적인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는 것이다. 크루이프는 대다수의 사람이 축구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설명하지만 사실 축구는 올바른 기술과 공간 활용을 통해 간단하게 플레이 할 때 가장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스포츠임을 역설한다. 

저자소개

저자 : 요한 크루이프
194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열 살이 되던 해 아약스 유소년팀에 입단, 1964년 1군팀에 데뷔한 후 1973년까지 아약스에서 뛰며 아약스가 8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3년에는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를 받고 바르셀로나로 팀을 옮겨 1978년까지 활약했다. 절정의 시기에 이른 은퇴를 하고 잠시 방황했으나 미국 활동으로 복귀, 이후 7년간 선수 생활을 더했다. 1985년부터는 아약스 기술이사로 부임하여 사실상 감독 생활을 시작했으며, 3년 뒤에는 바르셀로나 감독을 맡아 수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는 크루이프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어린이들의 체육 환경을 개선하고 체육 활동을 독려하는 데 앞장섰다. 누구보다 축구를 위해 살았던 그는 2016년 3월 24일,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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