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축구는 그의 머리에서 시작되었다
발이 아니라 공으로 만들어 가는 축구를 제시하다
볼 소유, 전방 압박, 간격 유지, 고정된 포메이션과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플레이, 빠른 공수 전환, 선수들 간 끊임없이 새로운 삼각형 만들어 내기, 빈 공간으로 침투하는 오프 더 볼 움직임 등 현대 빌드업 축구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개념은 요한 크루이프가 완성시킨 토털풋볼에 기원을 두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길거리에서 축구를 시작한 크루이프에게는 그가 서 있는 곳이 곧 학교였다. 도로의 갓돌을 활용해 불규칙한 공의 움직임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균형 감각을 기르는 식이었다. 네덜란드 청소년 국가대표팀 야구의 포수로 활약하며 경기 전체를 읽는 시야를 터득하는 건 물론이었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꼽히는 리오넬 메시에게 펩 과르디올라가 있었듯이 요한 크루이프에게는 리누스 미헬스가 있었다. 축구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토털풋볼의 혁명은 크루이프와 미헬스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둘은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던 네덜란드를 단숨에 중심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축구의 패러다임 자체를 뒤바꿔 놓았다. 선수들 간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공 주변에서 끊임없이 수적 우위를 점하는 플레이는 축구가 투지와 체력이 아닌 기술과 통찰력의 싸움임을 보여 주었다. 크루이프는 ‘피치 위의 감독’으로서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토털풋볼의 설계도를 현실에서 구현해 냈다. 팀으로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토털풋볼은 단순히 이기는 데 만족하는 축구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축구, 선수와 팬 모두의 즐거움을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축구를 추구했다.
발롱도르를 3회 수상한, 당대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에 그가 경기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자못 흥미롭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크루이프 턴’, 브라질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인 오렌지 군단, ‘카이저’ 베켄바워와 ‘폭격기’ 게르트 뮐러의 서독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비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불참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등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이어진다.
펩 과르디올라 이전에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다
경험에서 모든 것을 배운 사람
축구 역사를 풍미한 명장들 중에 선수 시절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던 이들이 적지 않다. 리버풀과 맨유를 각각 전 세계적인 명문 클럽으로 발돋움시킨 빌 샹클리, 알렉스 퍼거슨이 그랬고, 현대 압박 축구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AC 밀란의 아리고 사키는 “훌륭한 승마 선수가 되기 위해, 먼저 말이 될 필요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크루이프는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정점을 찍은 드문 경우다.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 감독 재직 시절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우승컵을 바르셀로나에 선사했다. 당시 유소년팀에서 방출당할 뻔한 펩 과르디올라를 1군으로 발탁해서 전술의 핵심으로 삼은 데서 크루이프의 안목과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광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게 씨앗을 심고 떠났다. 자신이 경험한 아약스의 유소년 시스템, 즉 전 연령대 선수가 동일한 전술 철학을 공유하며 자라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바르셀로나에 옮겨 심었고, 이 크루이프의 유산은 펩 과르디올라에게 이어졌다. 펩은 “크루이프는 바르셀로나에 대성당을 세웠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라고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출한 바 있다.
크루이프는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는 동시에 실수에서 교훈을 얻길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강한 개성과 올곧은 성품은 때로 주변과의 불화를 낳곤 했다. 구단 운영진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쓴소리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독불장군은 결코 아니었다. 상대방에게서 배울 점을 찾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 열려 있었다. 공격수로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변화를 회피하지 않았다. 그런 개방성 덕분에 유럽과 시스템이 판이하게 다른 미국에서의 경험을 뒤에 네덜란드 축구계에 이식해 냈다. 축구를 그만둔 뒤에도 스페셜 올림픽, 자신의 재단을 통해 스포츠의 선한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가장 간단한 것이 가장 복잡한 것
13장에서 크루이프는 토털풋볼의 정수에 대해 직접 이야기한다. 그가 보기에 축구 선수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강철 같은 체력이나 뛰어난 신체 능력이 아니다. 그건 바로 공간 활용, 기술, 통찰력이다. 특히 팀 전체의 움직임을 보면서 각자가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팀이 전체로서 함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4-3-3이니 4-4-2이니 하는 포메이션 숫자에 집착하지만, 크루이프는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상대의 강점을 무력화하는 유연성이라고 단언한다. 패스를 줄 때도 동료가 주로 사용하는 발 방향으로 건네고, 수비를 할 때는 상대가 잘 쓰지 못하는 발을 쓰도록 유도하는 아주 기본적인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는 것이다. 크루이프는 대다수의 사람이 축구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설명하지만 사실 축구는 올바른 기술과 공간 활용을 통해 간단하게 플레이 할 때 가장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스포츠임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