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41년. 그 긴 세월 동안 신인범 목사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 곁에 앉아 있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아픔 앞에, 기도로도 다 담지 못한 눈물 앞에 그는 언제나 조용히 함께 있었다. 이 책은 그 긴 동행의 기록이다.
시와 신앙 디카시, 에세이라는 세 가지 언어로 쓴 이 책은 한 가지 메시지를 향해 흐른다. 사랑은 우리가 찾기 전에 이미 먼저 와 있다는 것. 믿음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타오르는 심장의 고백이고, 소망은 아무도 보지 않는 땅속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는 씨앗이며, 사랑은 사라지면서도 끝내 남는 것이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1부 〈세 기둥〉 연작시는 이 책의 심장이다. 어둠 속을 밝히는 믿음의 불씨, 보이지 않아도 자라는 소망의 씨앗, 사라지며 남는 사랑의 신비를 깊고 맑은 언어로 담아냈다. 2025년 한국작가협회 공모전 대상을 받은 이 작품은 상처 난 영혼의 밤을 지나 끝내 새벽에 닿게 하는 힘이 있다.
성지 순례의 발자취를 따라간 2부는 베들레헴의 낮은 마구간에서 예루살렘의 십자가 길까지, 그분의 길이 언제나 가장 낮은 곳을 향했음을 보여준다. 짧고 단단한 시어들이 오래된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살려낸다.
신앙 디카시는 이 책의 또 다른 얼굴이다. 피아노 건반 위에, 빈 의자에, 골목 끝 가로등에, 현관에 나란히 놓인 신발 두 켤레에 — 작가의 렌즈는 일상의 가장 평범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다정한 시선을 찾아낸다. 특히 〈신발〉의 마지막 행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랑이란 먼 길을 대신 걷는 일이 아니라 피곤을 곁에 벗어 두는 일이다." 이 한 줄이 이 책 전체를 요약한다.
에세이는 더 깊은 곳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고향 북상의 물소리에서 시작된 글쓰기의 뿌리, 어머니가 남겨두신 기억의 도시락, 교복 입은 소년이 어설픈 발음으로 흥얼거리던 팝송, 사십 년 우정의 이름 '출범식'. 이 이야기들은 거창하지 않다. 그래서 더 진하게 남는다.
이 책은 신앙 서적이지만 종교의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절망에 머물지 않고, 결국 다시 살아낼 힘을 건네는 책이다. 화려한 수사보다 진실한 숨결로 다가오는 문장들이 지친 마음의 어느 지점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사람의 마음에도 처방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 책은 그 처방전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한 줄기 빛이 되고,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설 힘이 되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에게는 먼저 달려오는 사랑의 증거가 될 것이다.
오늘도 사랑이 먼저 달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