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률사의 전체 공연은 사흘에 걸쳐서 이루어졌고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나뉘었다. 앞마당에서는 “이것저것” 다양한 전통연희가 공연되었으며 뒷마당에서는 〈춘향전〉이라는 새로운 극 형식이 시도되었다. 먼저 진행되는 다양한 전통연희가 연희자와 관객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평면적이고 즉흥적인 연행 공간인 ‘마당’에 더욱 자연스럽게 어울렸다면, 뒤에 진행되는 입체 판소리극은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고 돌무대(회전무대) 연출까지 가능한 실내극장이라는 독특한 공간에 안성맞춤이었다. _30쪽, 「새로운 문명의 산실, 원각사」
단성사 무대에 올랐던 여성 창극은 판소리의 재해석이자 새로운 공연 장르의 탄생이었다. 기생조합 창극단이 이끌었던 실험은 여성의 문화적 자립을 알리는 무대였고, 동시에 전통 서사가 근대적 무대 장치와 만나 탄생한 독창적 예술이었다. 훗날 1950- 60년대에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여성국극과도 연결되었고, 그보다 더 뒤인 한류로 주목을 끌었던 2024년 드라마 〈정년이〉로도 이어져 우리를 열광시켰다. _53-4쪽, 「표 한 장으로 만나는 만화경 같은 세계, 단성사」
1910년대부터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행 기차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농담이 떠돌았다. “우미관 구경 안 하고 서울 다녀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만큼 우미관은 서울다운 서울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서울 구경의 필수 코스였다. 시골에서 올라온 이들은 대개 남대문시장, 경성역, 그리고 우미관에 들렀다. 이들은 서울에 오면 일단 시장에서 옷과 생필품을 사고, 역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우미관 은막 속에서 ‘다른 세계’를 구경하는 것을 일종의 의식처럼 반복했다. 그것은 서울을 구경 수준에 머무르는 관광이 아닌, 서울 여행의 정해진 루틴이자 통과 의례와도 같았다. 마치 조선 사람들이 근대 문명을 체험하고 받아들이는 일종의 입문 의례였던 것이다. _65-6쪽, 「경성 모던라이프의 성지, 우미관」
극장에는 주된 수입원이 되는 대표작과 극장의 얼굴이 되는 스타가 존재한다. 권상장 광무대에서는 연속 상연물인 〈춘향연의〉, 조선가무극, 신연희, 신파희극 등이 공연되었지만, 극장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박춘재 놀음이었고 간판스타 또한 누가 뭐래도 박춘재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음반을 취입한 국악가 박춘재는 경서도(경기와 서도) 소리의 대가이자 재담의 일인자였고 발탈의 명인이기도 했다. _93쪽, 「식민지 조선의 해방구, 권상장」
홍도는 기생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가난이라는 경제적 제약,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약혼녀라는 감정적 좌절을 모두 겪어야 했다. 그녀의 처지는 당시 하층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삼중고를 대변했다. (...) 그래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공연이 있는 날에는, 경성의 권번 기생들이 단체로 극장을 찾았다. 그녀들은 2층 좌석 한쪽을 통째로 빌려 앉았다. _115쪽, 「홍도와 함께 사랑에 속고 돈에 울던, 동양극장」
오늘날 K-뮤지컬, K-오페라, K-팝, K-클래식을 비롯한 K 컬처와 우리나라 공연예술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현상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뿌리는 바로 명동예술극장 무대 위에서 낯선 오페라 아리아와 발라드 선율, 그리고 트로트 음정과 리듬이 서로 부딪히고 섞이던 순간들 속에 있다. 명동예술극장은 한국적 문화 코어가 생성된 장소였다. 전쟁과 가난은 예술을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더욱 피어나게 만들었다. _137-8쪽, 「한국 문화의 코어 생산 기지, 명동예술극장」
국립극장이 국가 정책의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꾸준히 시도해 온 사업들이 있었다. 바로 일반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 교육 및 프로그램 개발이다. 국립극장에서 예술 강좌를 여는 것은 물론, 예술제와 예술 캠프, 우수학교 지원 사업 등 다방면의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_151쪽, 「또 다른 문화를 꿈꾼 흥의 터, 국립극장」
어떻든 관람객의 경험은 영화사나 극장의 흥망사 언저리 어디쯤에서 논의되는 편이다. 대개는 거대한 시대 흐름을 개별적으로 입증하는 사례로 동원된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인지, 그렇기만 한 것인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개별 관객의 얼굴은 계급이나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나 지역과 같은 수많은 지층의 교차점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어야 하지 않는지 되묻게 되는 것이다. _170쪽, 「종로 트라이앵글에서 충무로까지, 극장가」
통행금지가 해제되던 1982년에 〈애마부인〉을 개봉해 많은 관객을 모았던 최초의 심야 극장이 서울극장이었다. 서울극장은 2021년 8월 31일을 끝으로 개관 42년 만에 영업을 종료했다. 이를 마지막으로 서울극장부터 국도극장에 이르던 을지로, 종로, 충무로 일대 전통 극장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24년 서울에서 단관 극장의 명맥을 잇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대한극장까지 문을 닫으면서 충무로 ‘영화의 거리’ 시대는 추억이 되었다. _192-3쪽, 「그곳에 영화관이 있었다, 테크놀로지에서 아트까지」
현재 한국 콘텐츠는 ‘K-’라는 접두사를 달고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 K-를 견인하는 중심에는 한국적인 로컬리티(locality), 즉 한국적인 스토리텔링과 분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 연우무대는 지금도 신인작가와 연출가들에게 데뷔 기회를 제공하면서 21세기 새로운 창작극 시대를 부지런히 열어가고 있다. 극단의 역사와 극장의 나이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젊은’ 연극을 지향하면서 실험성과 대중성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_231-3쪽, 「가난한 지하 무대에서 피어난 K-액팅의 뿌리, 대학로 연우소극장과 극단 연우무대」
사물을 두드리는 행위만으로 인간은 마음을 전달하고 읽어낼 수 있다. 두드림은 소리가 되고, 울림은 무수한 진동을 일으키며 퍼져나간다.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은 소리 하나로 공감하고 유대를 맺는다.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 즉 비언어적 상징과 표현, 몸짓과 소리로 꾸며지는 공연이 1990년대에 나온 이래로 지금까지 꾸준히 인기를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_238쪽, 「함께 공감하고 교감하는 두드림의 공간, 난타극장」
1932년 10월부터 1945년까지, 이왕직아악부에서는 ‘이습회(肄習会)’라 불리던 음악 발표회를 개최했다. (...) 역사적인 조건과 정치적인 제한으로 우리 문화가 말살되고 국악 전통이 거의 희미해지던 시절에도 엄격하게 운영되었던 이습회 공연은 제례악, 기악곡, 성악곡 등 다양한 장르의 국악을 가장 정제된 형태로 일반 관객 대중에게 공개했다는 점에서 더욱 심원한 의의를 지닌다. _274쪽, 「정통 국악이 새롭게 거듭나는 곳, 서울돈화문국악당」
예술의전당은 이처럼 한국 문화예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세계적 수준을 갖춘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한국 예술가들에게 더 높은 목표를 제시했고, 시민들에게는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은 특별한 사람들만 즐기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대중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_323쪽, 「스펙터클한 복합 문화 공간, 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