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파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본과 국가의 교육 프로젝트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과 국가가 학교를 완전히 장악할 수는 없고, 교사와 학생들은 항상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자율적인, 불온한 공간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괜찮은 건 아니지요. 지금이야말로 교육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학교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국가에 포획된 교육을 해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돈과 영원한 성장을 가르치지 말자는 것이고, 돈과 영원한 성장을 내면화하는 강력한 장치인 ‘학교태schooling’를 거부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전환의 시대입니다. ‘문명사적 전환’, ‘시스템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파상된 세계에서 근대의 진상을 보고, ‘지금, 여기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전환이겠죠. 그렇다면 전환이야말로 좋은 삶에 이르는 길이고, 전환하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교육입니다. 사물, 모델, 동료, 연장자로 구성된 ‘전환의 커뮤니티’와 그것들의 연결이 교육의 새로운 비전입니다.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과정이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 박복선(스콜라), 〈전환의 커뮤니티 - 성미산학교에서 일어난 교육적 실험과 가능성〉, 20쪽
청소년/학생은 학교 밖 시위나 집회 같은 투쟁의 현장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존재한다. 그 현장에서 청소년은 도래할 미래로서, 다른 가능성을 만드는 주체로서, 그리고 현재의 불가능성에 금을 내는 존재로서 위치가 새롭게 창조된다.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과정에서는 일련의 사건이 연결되어 발생하는 현장에서의 필드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직접 현장을 찾아가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구경꾼’이나 ‘관찰자’가 아니라 ‘목격자’이자 ‘참여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 최경미(사이다), 〈다른 가능성의 예고 -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필드워크 스토리〉, 23~24쪽
학교의 프로젝트에서는 어려웠던 발달장애인과의 관계 맺기가 평등한 밥상과 〈난잡한 자기소개〉를 통해서는 왜 즐거웠을까? ‘행사’라는 일시적 이벤트였기에, ‘연극’이라는 일상이 아닌 예술적 활동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일상을 중지시키고 새로운 환경과 조건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관계가 다르게 탄생하지 않았을까. 일상적으로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관계가 아니라 다른 조건에서 만났기 때문에 독특함을 인정하게 되고 사건·사고가 창의적인 방식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관계를 넘어 학교 바깥에서 일상이 중단된 다른 관계로 새로 만나는 경험을 해 보는 것, 관계의 다양성을 경험해 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과의 만남은 다름을 감각하고 수용하는 과정이었다. 그 전과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기회를 주었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하며 고민하게 만들었다. 졸업 후에도 나는 이 관계의 다양성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계속 새롭게 시도할 것이다.
- 최여울(이응), 〈비장애인 중심을 넘어 새로운 관계 탄생 - 권리와 예술을 매개로 장애인 중심으로 활동하기〉, 63쪽
팝업 레스토랑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곳은 ‘비’국민이라 불리며 사회의 경계 바깥에 머무는 이들이 한 사람의 존재로 자리 잡는 공간이었다. 무국적 레스토랑에 모인 사람들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새롭게 인식했다. 낯설게만 들리던 ‘난민 신청자’라는 단어는 누군가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실존의 존재로 다가왔고, 그들은 더 이상 ‘외면할 타인’이 아닌 ‘이웃 사람’이 되었다. 이런 경험은 난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허물기 시작한다.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며 관계를 맺은 경험은 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이처럼 팝업 레스토랑은 난민을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사회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그들은 그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요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공동체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작은 공간에서 음식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문화를 통해 차별 없는 공존을 경험했다. 국적과 체류 자격,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모두가 먹고 살아간다는 가장 기본적인 공통점에서 시작된 이 기획은, 사회가 설정한 경계를 허물고, 그 경계 너머에 있던 이들을 다시 중심으로 초대하는 과정이었다.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일하고, 손님을 맞으며 나눈 모든 시간은 작은 변화의 씨앗이 되었다. 참여한 사람들은 단순히 식사만 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대와 공존의 감각을 품고 돌아간다. 그리고 그 감각은 또 다른 만남을 부르고, 다른 방식의 연대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렇게 팝업 레스토랑은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다. 경계 너머의 존재들을 다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상상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시작점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 이솔, 〈식탁 위에서 시작된 변화 - ‘비’국민들과 함께한 무국적 레스토랑〉, 94~95쪽
여성들이 겪은 억압과 고통은 시대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권력 구조에 의해 배제되고 착취당했던 삶이 있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공통적이다. 그래서 항상 취약한 위치와 조건의 존재들은 서로 우정을 나누고 연대했다. 내가 만났던 연약한 존재들은 다정했고, 현명했고, 명랑했다. 억압과 고통으로 삶이 망가졌을 거라 편협하게 상상했던 우리는 항상 반전을 목격했다. ‘할머니’들은 어떻게 그런 따스함과 유머를 가질 수 있는지 놀라웠다. 스스로 존엄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 온 그녀들의 삶을 이제는 사회가 존중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여성 청소년으로서 가지는 불안과 두려움을 과거의 생존자들과 연대함으로써 다른 사회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대 다른 세대가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 한다영(크림)·윤소연(그냥), 〈지금 여기에서 책임을 나누다 - 수요집회와 여성연대〉, 170쪽
세상은 혐오와 불평등으로 점점 더 나빠져 가고 있으며, 기후 위기는 심각해져서 인간 또한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 코로나19까지 겹쳐 더 무력해졌다. 그래서 더 근본적으로 인간이 어떻게 생명을 대하고 관계하고 있는지 질문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인간뿐만 아니라 나무나 동물 등 무수한 생명들을 하찮은 존재로 취급해 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증오와 폭력만으로는 생명의 존엄함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직 평화만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 정은결, 〈서로를 살리는 - 민간인 학살을 마주하며〉, 173쪽
그들이 바라는 평화는 그저 평범한 삶에 대한 것이었다. 순간 먹먹해졌다. 나는 이 말들을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한글 수업을 통해 동시대 미얀마 청소년의 삶에 접속하게 되었고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말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삶이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었고 그들이 바라는 세계가 바로 내가 바라는 세계였다. 우리가 같은 곳에 살지 않더라도, 그들을 알게 됨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세계가 곧 내가 원하는 세계가 되었다.
- 이자민(마농), 〈그곳에 친구가 있다 - 미얀마 시민 불복종 운동을 지지하며〉, 209쪽
4.16 합창단을 생각하면 나는 제일 먼저 ‘유머’가 떠오른다. 이분들은 모이면 일단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대화의 반 이상은 유머이다. 덕분에 나도 참 많이 웃었다. 가을 이동 학습으로 제주 강정마을에 갔을 때 평화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때 비폭력 저항에 속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유머였던 게 생각났다. 이곳 합창단에서 끊이질 않는 유머와 웃음은 어쩌면 8년을 지나오며 만들어 낸 투쟁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고 처음 겪는 이 명랑함이 낯설지만 좋았다. 내가 4.16 합창단에서 활동한 시간은 짧았지만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건 4.16 합창단만이 가진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품을 내주고 자리를 만들어 주며, 이미 서로를 환대할 줄 알고 또 서로를 사랑할 줄 아는 공동체였다. 그분들을 통해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그 가능성은 나에게 희망이었다.
- 문해람(인),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세월호 참사 추모 활동〉, 230쪽
나는 포스트중등 과정에서 활동을 하며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존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도 지워지는 삶과 빼앗기는 삶을 사는 존재들을 만났고, 그 존재들 중에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동물 해방 운동을 한다. 사랑하는 존재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즉 수많은 나의 친구들이 존엄하게 자연스러운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생명을 사고파는 산업의 구조가 비인간 동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현장에서 사건들을 만나면서 확인한 건 나는 안전한 위치에 있다는 아이러니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불평등과 폭력의 위험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을 외면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도록, 외면하게 만드는 것도 구조의 힘이 아니었을까.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 폭력의 구조에 가담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말은 “사랑해서 행동한다”라는 것이다. 사랑으로 모든 걸 낭만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물살이들은 양식장에, 수족관에, 그리고 집 안 어항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횟집 수조 앞에 앉아 물살이를 살피고 있던 시간을 말과 글로 사람들과 나누고, 아쿠아리움 모니터링을 하고, 벨루가를 방류하라는 1인 시위와 직접행동을 하고, 물살이를 먹지 않음으로써 폭력의 구조에 저항한다. 사랑은 붕 뜬 감정이 아니다. 나는 지금껏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많은 행동들을 해 왔기에, 사랑은 땅에 발 붙어 있는 감각이고 구체적이며, 다른 세계를 만들어 갈 좋은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전주하(명이), 〈관계하는 힘으로 다시 불화하기 - 생추어리를 넘어 동물 해방〉, 265~267쪽
어쩌면 청소년 활동가가 되기로 한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성미산학교에서는 이미 ‘체인지 메이커’로서 청소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강조해 왔기 때문에 운동이나 활동은 익숙했다. 나는 ‘사회운동은 어른들의 일이고 광장에서 일어난다’는 고정관념을 바꾸고 싶었고 청소년이 미래를 만들어 갈 주체로서 지금 여기에서 변화를 만드는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며 청소년이 중심이 되는 운동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 오연재(문어), 〈우리가 바꾼다- 기후 위기 시대의 진로 찾기〉, 271~272쪽
어쩌면 나는 바다를 유토피아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막막함이 밀려올 때 현장에서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며 이 환멸을 마주했다. 이들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악순환에 우울해하면서도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서로에게 발견해 가고 있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나는 현실을 고발하고 문제의식을 담아 비판하는 것보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감각을 ‘리와일드’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게 나의 소박한 저항 방식이었다. 바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었다. 자유롭지 않은 곳에서 자유를 위해 생존 투쟁을 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 동물에는 나도 포함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 대해 탈출로 저항했던 얼룩말과 사자, 아쿠아리움에서 방류된 돌고래의 자유를 향한 역동적인 몸짓, 고기로 죽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돼지 새벽이와 잔디, 실험과 안락사의 위험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비글들, 그 밖에 호명되지 않은 이들을 생각하며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 김민서(뱅어), 〈살아 있음으로 저항하기 - 새와 돌고래 서식지 보존 활동〉, 319쪽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투쟁의 현장에서 나는 이전까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이 탄생하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연대의 의미, 다른 사회를 만들어 가는 상상력, 따뜻한 나눔과 즐거운 이야기, 노래와 유머 등을 경험했다. 포기보다는 다르게 시도해야, 절망보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무력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을 따스하게 챙겨야 가능성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 그 가능성을 발견한 또 하나의 현장이 있다. 바로 전북 군산이다.
- 최여울(이응), 〈트러블과 함께 살아가는 법 - 살아 있는 수라갯벌과 새만금 신공항 건설 취소 소송 참여기〉, 323~324쪽
노래는 두려움을 없애 주고,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걸 알기에 우리는 연대의 현장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시대의 위기와 재난에 대응하는 힘을 즐겁게, 외롭지 않도록 만들어 가고자 했다. 우리가 짓고 부른 노래들은 폭력에 맞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들, 개발로 쫓겨나고 죽어 간 이들, 우리에게 잠시 찾아왔던 한 생명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우리 함께 있다고 말하는 진동이었다. 꼭 우리가 부른 노래들처럼 우리는 생명들이 사라지게 하고 쫓겨나게 하는 시스템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감을 인지하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같이 살고 싶다.
- 전주하(명이), 〈노래로 만든 세상 - 창작과 합창을 연대의 매개로〉, 387~389쪽
생추어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사회적 이슈가 있는 여러 현장들에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사회에서 이미 존재 자체가 ‘불법’이거나 언제든 그렇게 이름 붙여 삶을 빼앗길 수 있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며 단지 속상함으로 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 모인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성소수자, 장애인, 성노동자, 동물, 여성, 노동 등 여러 관심 이슈에 관한 집회나 문화제 등 다른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곳에 다녔다. 그리고 생추어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여기저기 다른 집회 현장에서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주 마주치다 보니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에서 만나게 되고, 철탑 위에 올라간 해고 노동자가 있는 곳에서 만나게 되고, 강제 철거 당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투쟁 현장에서 만나게 되고, 외국인보호소 폐쇄를 위한 문화제에서, 혹은 양수 발전소 반대를 위한 기자 회견장에서 만나게 되는가? 다들 여러 의제에 관심을 갖고 이 모든 이슈들이 자신의 일이라고 느끼는 건가? 자신의 활동 영역의 문제도 어려운데 왜 다른 이슈에도 참여하고 연대할까? 시위나 집회에서 반복해서 만난 사람들 각자의 연대와 투쟁은 어떤 의미일까? 모든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기에 한 문제만 해결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에게 연대는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할까?
- 김규림(똘추), 〈왜 연약한 우리는 교차하는가? - 우정과 연대의 의미〉, 395~3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