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왜 돈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것일까?
이 책에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돈에 대한 불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다.
이는 ‘돈을 어떻게 불릴 것인가?’라는 투자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마음을 고쳐먹으면 불안은 사라진다’라는 정신론도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기 위한 구체적인 생존 전략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금융 시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대학을 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본주의 세계에 내동댕이쳐졌는데, 어쩌다 보니 그 세계를 내부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일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것은 우리가 ‘좋은 손님’으로 있는 한 돈에 대한 불안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현실이었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는 돈에 대한 불안을 계속해서 부풀리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불안을 돈에 대한 불안으로 치환하면서 살고 있다. 〈본문 18쪽〉
제1장 그 불안은 누군가의 비즈니스다
불안이 증폭되는 구조는 악의가 없이도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40대부터 시작하는 스킨케어’라는 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40대에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라는 의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불안해지고, 불안은 곧 조함으로 바뀐다. 그렇게 되면 냉정을 잃고 만다.
나 역시 금융 세계에 몸담고 있을 때 이를 수없이 경험했다. 국채를 입찰하는 날이었는데, 일단 관망할 생각이었지만 시장에서 "국채를 사고 싶어 하는 은행이 많다고 한다”라는 소문을 듣자 지금 사지 않으면 이익을 놓치겠다는 불안으로 초조해졌다. 그리고 예정했던 500억 엔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매입액을 두 배로 늘렸는데, 결과적으로는 손해를 봤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프로도 초조함을 느끼면 판단이 흐려진다.
특히 교육이나 미용, 건강, 투자 같은 분야에서는 ‘여기에 돈을 써야 해’라고 느끼기 쉽고 ‘망설였다간 때를 놓칠 거야’라고 믿기 쉽다〔소비자청이 2022년에 실시한 소비자 의식 기본 조사에서 ‘앞으로(도) 돈을 들이고 싶은 분야’로 건강, 의료, 교육, 미용 등이 상위에 올랐다. 투자도 6년 전보다 두 배 이상 관심이 커졌다〕. 〈본문 34쪽〉
제2장 투자와 도박의 경계선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의 옆자리에 친구가 앉게 되었을 때,
동기가 회사의 간판 부서로 이동이 결정되었을 때,
후배가 산 암호화폐가 폭등했을 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이 쓰렸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또한 SNS에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성공담까지 보게 된다. “투자로 1,000만 엔을 벌었다” “불과 00년 만에 억대 수익 달성!”
같은 구체적인 돈 이야기도 적지 않다.
그런 게시물을 보고 ‘어쩌면 나도 저렇게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라는 희미한 기대를 품지만, ‘정말로 저렇게 간단히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의심 또한 떨쳐 내지 못한다.
이는 프로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앞두고 불온한 분위기가 시장을 뒤덮고 있었던 2008년 여름, 상사가 갑자기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단기 금리 시장에서만 100억 엔을 벌어들인 친구가 있다더군.” 〈본문 56쪽〉
제3장 '회사가 지켜 준다'라는 환상
‘투자는 노동보다 유리하다.’
종종 이런 투자 권유 문구를 보곤 한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유명한 경제학자의 이름을 들먹이며 투자를 권하는 사람들도 있다.
토마 피케티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r>g’의 부등식이 성립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운용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부가 노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부보다 성장이 빠르다는 것이다. (중략)
피케티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처음부터 자산을 보유한 사람이 더욱 부자가 되는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 자산이 없는 사람도 투자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본문 95쪽〉
제4장 사랑과 동료와 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사랑, 동료, 돈,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먼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 들어 보세요.”
(중략)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건 SNS에서 받은 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내 책 《부자의 마지막 가르침》을 읽은 한 선생님이 ‘돈과 사랑 중 어느 쪽이 소중한가?’라는 주제로 학생들에게 영작문 숙제를 냈는데, 대부분이 돈을 선택했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돈보다 사랑이 더 중요함을 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철학자가 아니며 사랑을 이야기할 자격도 없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하려고 생각한 순간,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카트리네 마르살의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였다.
저자가 돈과 사랑의 대비를 통해 인간이 일하는 원동력을 논했던 것이 떠올랐다. 사랑 자체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자격이 없지만 경제라는 관점에서라면 전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수업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본문 112쪽〉
제5장 '당신 탓'이 되어 버린 인구 문제
이 우화는 돈이 가치를 지니려면 일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난방도 안 되고 음식도 먹을 수 없다.
“부를 낳는 것은 노동이다”라고 말한 애덤 스미스나 “화폐는 부가 아니다”라고 단언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본질을 꿰뚫어 봤던
것이다.
또한 이 이야기는 우리의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힘도 약해지며, 곧 모두가 필요한 것을 평등하게 얻기는 어려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개미들의 마을처럼 몇 개 안 되는 의자를 두고 모두가 다투는 ‘의자 앉기 게임’ 같은 사회가 될 것이다. 〈본문 147쪽〉
제6장 '돈만 있으면'의 종말
‘돈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런 시대가 분명히 있기는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경제 대책은 돈을 순환시키는 것을 중시해 왔다. 정부가 공공사업에 거액의
자금을 투입하면 그 자금이 노동자의 임금이 되어 소비를 낳고 새로운 고용으로 이어지는, 이런 선순환의 흐름을 믿어 온 것이다. 심지어 프로젝트 자체가 낭비로 보이더라도 돈이 순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쓸 것인가?’였으며 경제 효과나 GDP라는 숫자가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지표로 중시되었다.
그러나 이 생각에는 사람도 물건도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본문 195쪽〉
제7장 투자는 '나누는 것'이 아니라 '빼앗는 것'
개인이 주식 투자를 시작해도 기업에는 그 돈이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주식을 사서 기업을 응원합시다”라는 것은 거래량을
늘리고 싶은 증권사의 궤변일 뿐이다. 기업으로서는 주식보다 자사의 제품을 사 주는 편이 훨씬 고마우며, 그것이 더 실질적인
응원이다. 실제로 기업이 광고하는 것은 주식이 아니라 자사의 제품이다.
융자든 투자든 금융의 본래 역할은 ‘도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돈을 융통하는 것이다. 빵집을 열고 싶은 사람이나 표고버섯의 재배법을 연구하는 회사에 자금을 전달하는 게 금융의 역할이다.
경제는 그들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성장한다.
돈 자체에는 아무런 힘도 없다.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싶습니다”라며 손을 들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본문 222쪽〉
제8장 아이들의 절망에서 찾은 희망
우리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다양한 불안을 품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이 교육이 정말로 아이에게 도움이 될지 불안을 느끼는 사람, 주위의 이직 소식을 듣고 자신에게도 적성에 맞는 다른 직장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 저출산· 고령화
뉴스를 보고 언젠가 자신도 사회의 짐이 되지 않을까 마음이 괴로워지는 사람.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무인도에 고립된 게 아니다. 분명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 소비자로서, 노동자로서, 유권자로서, 보호자로서, 지역의
일원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존재한다.
소비자로서 일하는 사람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려고 노력할 수 있다.
노동자로서 직장에서 젊은이들의 도전을 응원할 수 있다.
유권자로서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생각한 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
보호자로서 아이가 미래에 희망을 품도록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지역의 일원으로서 작은 교류나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다.
그리고 도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지원하는 사람도 꼭 필요하다.
그저 조용히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난 돌이 정을 맞지 않는 것만으로도 미래는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용기다. 〈본문 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