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은 채굴, 정제, 제조, 운송, 폐기와 소각까지 생애 주기 전 과정에서 기후위기를 키웁니다. 지금처럼 생산과 사용이 늘어나면, 2030년까지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에서만 해마다 13억 4,000만 톤의 배출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500메가와트급 석탄화력발전소 295기 이상의 배출량과 맞먹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에요. 이미 면역 체계가 약해져 있었으니까요. 플라스틱 오염은 두려움 없이 숨 쉴 권리를 침해합니다. 플라스틱의 99%는 화석연료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생산이 우리 공동체에 끼치는 직접적인 피해야말로 진짜 세계적 위기예요. 연구들은 플라스틱 위기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보여줍니다. 미세플라스틱은 심해 생물과 물고기, 우리 몸, 빗물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 이벳 아렐라노, 22쪽
끝없이 소비하고 파괴하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지속 불가능한지는 이미 분명합니다. 반면 다른 이들은 아직도 인간의 존엄에 걸맞은 삶조차 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세계 일부 지역이 성장을 줄이는 탈성장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다른 지역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27쪽
이것이 글로벌 사우스에서 바라본 성장의 현실입니다. 글로벌 노스의 과도한 자원·에너지 소비는 글로벌 사우스 생태계의 수탈,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 그리고 자립 기반의 붕괴 위에서 유지돼 왔죠. 그래서 탈성장은 착취적 관계를 끝내자는 요구와 함께 가야 합니다. 노동력의 저평가, 인간 노동의 상품화, 자연과 생태계의 상품화를 멈추자는 거죠. 글로벌 사우스의 관점에서 탈성장은 주권과 사회정의, 민중의 삶을 위한 요구이기도 합니다. - 로사리오 구스만, 33쪽
돌봄은 행위이자 태도입니다. 탈성장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돌봄 노동을 둘러싼 서구적 이분법을 거부하는 거예요. ‘관심을 기울이는 일’과 ‘돌보는 일’이 더 이상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돌봄을 제공하는 것’과 ‘돌봄을 받는 것’도 여성의 역할로 고정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돌봄은 모든 인간과 생태계의 정신적·신체적·관계적 온전함을 떠받치는 핵심 토대입니다. 오늘날의 경제가 체계적으로 생명을 소모한다면, 탈성장은 생명을 회복하는 돌봄 기반 경제를 지향합니다. 그 세계에서는 노동의 가치가 생산량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 그리고 인간다움을 확인하는 활동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에 따라 새롭게 정의될 겁니다. - 제이미 타이버그, 37쪽
이윤이 언제나 사람과 지구보다 앞서는 세계에서, 기후경제학은 결국 윤리와 도덕의 문제일 수밖에 없어요. 지구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 도덕적 위기라는 데 우리가 동의한다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맞서, 인간과 지구의 안전을 중심에 두고 성장과 이윤을 절대적 목표로 삼지 않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해요. 기후 파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기업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이윤을 환수하는 것과 같은 급진적인 경제 대안이 필요합니다. - 나오미 클라인, 50쪽
탈성장은 흔히 기술 전반에 대한 적대감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기술을 선별적으로 바라보며 기술 발전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탈성장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분명해요. 어떤 기술을 사용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결정할 것인가? 이는 멈출 수 없는 자율적 기술 진보, 생산성의 지속적 증가, 사회적 생산력의 끝없는 향상이라는 신화를 반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신화는 이른바 ‘테크노-미래주의 좌파’의 상당 부분에서도 여전히 지배적이에요. 탈성장은 여기에 맞서 민주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 안드레아 베터, 55쪽
무엇보다 성장에 대한 집착부터가 잘못됐어요. 모든 생명체는 어느 지점까지 자란 뒤 성장을 멈춥니다. 당신도, 나도, 큰 나무도 성장은 멈추지만 발전까지 멈추는 건 아니죠. 그런데도 더 많이 소비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끝없이 만들기 위해 성장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도 가운데 하나인 광고 산업이 움직이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없는 돈으로 사게 만들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게 하려는 겁니다. 이런 체제가 지속 가능할 리 없어요. - 만프레드 맥스니프, 65쪽
요즘 교차성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많이 돌아요. 특히 비판하는 쪽에서 그렇죠. 종교 같다고도 하고, 정체성 정치의 괴물이라고도 해요. 어떤 사람은 백인 남성에 대한 공격이라고까지 말하죠. 하지만 이런 말들은 교차성이 뭔지 전혀 모른 채 하는 소리예요. 교차성은 프리즘 같은 거예요. 하나의 틀이자, 우리가 일터와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일이 누구에게 일어나는지를 바라보게 해주는 도구죠. 아직 끝나지 않은 일,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 기억하지 못한 것,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왜 남아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교차성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일종의 보조 바퀴 같은 거예요. 계급과 계급의 교차를 포함해, 꼭 봐야 할 것들을 보게 해주죠. 교차성은 사람들을 갈라놓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연결하는 틀이에요. - 킴벌리 W. 크렌쇼, 76쪽
탈성장이 덧붙이는 주장은 분명합니다. 번영하는 사회를 위해 고소득 국가의 성장은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필요한 건 정의예요. 이를 깨닫는 과정 자체가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맞선 계급의식을 키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질문도 남습니다. 글로벌 사우스의 탈식민 투쟁과 맞닿지 않은 글로벌 노스의 진보정치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반제국주의 없는 생태사회주의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생태 붕괴의 시대에 글로벌 사우스와 연대하려면, 글로벌 노스의 탈성장이 필요합니다. - 제이슨 히켈, 89쪽
저는 희망과 낙관을 구분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게 낙관은 일종의 확신이에요. 결국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믿는 거죠.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돼요. 사실 그건 냉소나 비관, 절망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반면 희망은 미래가 지금 이 순간에도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해지는 거죠. - 리베카 솔닛, 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