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7
하이일드 등급을 받은 채권과 대출은 투자 등급 채권에 비해 디폴트 확률이 훨씬 높다. 이러한 채권과 대출은 흔히 ‘정크(junk)’라고 불리며, 완곡한 표현으로는 ‘투기 등급 (speculative grade)’ 또는 ‘투자 부적격 등급(non-investment grade)’이라고도 한다. 하이일드 채권은 위험도가 높은 만큼 투자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익률 (yield) 을 제공해야 한다. 1970년대만 해도 하이일드 채권 시장은 대부분 ‘폴른 엔젤(fallen angels)’로 구성되어 있었다. 폴른 엔젤이란 발행 당시 투자 등급이었으나 이후 실적 부진으로 등급이 강등된 기업을 뜻한다. 당시 이들은 전체 채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았기 때문에, 이른바 ‘벌지 브래킷 (Bulge Bracket)’이라 불리는 대형 투자은행들은 이 시장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틈새를 파고든 인물이 바로 ‘정크 본드의 왕’으로 알려진 드렉셀 번햄 램버트(Drexel Burnham Lambert)의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이다. 하이일드 채권의 2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트레이더로 자리 잡은 밀켄은 이미 발행된 채권의 유통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사업을 확장하려면 ‘신규 채권 발행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처음부터 투기 등급으로 발행되는 채권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자산군을 만들어냈다. 당시 하이일드 신규 채권 발행 시장의 잠재력은 매우 컸다. 미국 내 약 11,000개의 상장 기업 중 투자 등급을 받은 곳은 단 6%에 불과했고, 나머지 94%는 자본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밀켄은 투자자들을 설득해 투기 등급 기업이 발행한 신규 채권을 매입하도록 함으로써 이 거대한 잠재 시장의 문을 열었다.
정크 본드 신규 발행 시장이 형성된 초기에는 조달 자금이 주로 기업의 운영 자금으로 쓰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상장 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차입 매수 (Leveraged buyout, LBO) 자금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모펀드(Private Equity, PE) 산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사모펀드들이 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1980년대 중후반에는 일부 기업이 경영진의 매각 의사와 관계없이 공격적인 인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거래를 ‘적대적 인수(Hostile Takeover)’라 불렀고, 이를 주도한 사모펀드들은 ‘기업 사냥꾼(Corporate Raider)’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늘날까지도 전설적인 투자자로 회자되는 칼 아이칸(Carl Icahn) 과 론 펄먼(Ron Perelman)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1987년 개봉한 영화 〈월스트리트〉의 주인공 고든 게코는 실존 인물인 칼 아이칸과 악명 높은 차익 거래자 이반 보스키(Ivan Boesky)를 모델로 한 캐릭터로 알려져 있다. 과거 적대적 인수합병(M&A) 이나 전통적인 의미의 ‘기업 사냥꾼’은 오늘날 거의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들은 상장 기업의 상당한 지분을 확보한 뒤 경영 전략이나 재무 구조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2023년, 87세의 고령임에도 칼 아이칸이라는 이름은 기업 경영진 사이에서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P86
담보가 설정된 리볼빙 신용한도(Revolving Credit Facility)는 기업이 필요할 때 자금을 인출하고 여유 자금이 생기면 상환한 뒤 다시 필요할 때 인출할 수 있는 한도 대출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기업의 신용카드와 비슷한 구조다. 리볼버의 금리는 변동금리로 보통 SOFR과 같은 기준금리에 연동된다. 일반적인 대출과 달리, 리볼버는 상환한 금액만큼 다시 빌릴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며, 개인이 신용카드를 일부 상환한 뒤 다시 사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P98
파편화된 시장에는 수많은 경쟁자가 존재한다. 이러한 산업에 속한 기업을 분석할 때는 시장 점유율, 경쟁사 대비 생산 비용, 그리고 다른 업체와의 합병 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시너지에 주목해야 한다. 파편화된 산업이 통합되는 현상은 흔히 발생한다. 산업 전체 매출이 감소하면 경쟁력이 약한 기업은 파산하여 청산되고, 우량 기업들은 서로 합병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하기 때문이다. 재생 판지(Recycled board)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2017년 이전에는 이 업계에 약 10개의 대형 업체와 다수의 소규모 기업이 존재했다. 재생 판지 제조업은 고정비 부담이 크고 제품은 차별화가 거의 없어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2017년, 원재료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다 수요마저 감소하면서 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했다. 여러 기업이 파산과 구조조정을 겪었고, 많은 소규모 공장이 문을 닫거나 대형 업체에 인수되었다. 오늘날 이 산업은 단 4개 기업이 시장의 90%를 점유하는 과점 구조로 변화했다. 경쟁 구도를 분석할 때는 현재 상태뿐 아니라 변화 가능성도 함께 판단해야 한다. 신규 진입자, 대체재, 기술 혁신 등 기존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위협이 존재하는지를 점검하고, 그 발생 가능성과 시기, 그리고 기업의 수익성과 현금 흐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은 신용 분석 7단계 중 4단계(예측)에서 경쟁 구도가 심화되는 경우를 가정한 하방 시나리오를 모델링하는 작업으로 연결된다.
P100
경기민감형 기업의 비용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정비 비중이 높은 기업은 불황이 닥쳤을 때 비용을 쉽게 줄일 수 없어 리스크가 커진다. 자동차 산업이 바로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2008년 경기 침체 당시 자동차 판매량은 40%나 급감했다.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노조 인력을 포함해 고정비 비중이 높아 비용을 쉽게 절감하기 매우 어려웠다. 2008년 가을 무렵, 미국의 ‘빅 3’ 자동차 기업 (포드, 제너럴 모터스, 크라이슬러) 은 막대한 현금을 소진했고, 800억 달러 규모의 정부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정부 지원에도 제너럴 모터스와 크라이슬러는 결국 파산 보호를 신청했으며, 포드 역시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P125
비현금성 구조조정 비용 (자산 손상차손 및 장부가액 상각 등) 비현금성 구조조정 비용은 장부상의 수치일 뿐 실제 현금 유출이 없는 비용이므로, 기업의 실질적인 펀더멘털을 확인하기 위해 조정 이익 (adjusted income) 을 계산할 때 이를 다시 더하는 과정 (add-back) 을 거친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을 단순한 회계 항목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손상차손이 발생했다는 것은 해당 자산이나 사업의 가치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이러한 손실이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경영진의 반복적인 의사결정 실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자산 손상은 과도한 가격으로 진행된 인수합병, 기대했던 투하자본수익률 (ROIC) 을 달성하지 못한 신규 설비 투자 등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손상은 매년 발생하지는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 있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의류 소매업체의 경우, 몇 년에 한 번씩 재고의 상당 부분을 감액 처리해야 할 수 있다. 때로는 회사가 트렌드를 잘못 읽는 경우도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 따라서 의류 소매업체를 분석할 때는 재고 상각을 사업 모델의 일부로 간주하고, 상각 비용을 이익에 다시 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드물게 발생하는 재고 상각 비용을 그대로 실적에 반영하면 연도별 실적 비교가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실무적인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재고 상각 비용을 이익에 더해 수치를 조정한 뒤, 2단계 정성적 분석에서 해당 기업이 유행 및 트렌드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기록한다. 이후 4단계 실적 예측 모델링에서는 트렌드 예측 실패로 인한 하방 시나리오를 별도로 반영하는 것이다. 이 장의 후반부에서는 재고 상각 위험이 높은 기업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이 장의 후반부에서는 재고 상각 위험이 큰 기업을 구체적으로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P146
매출원가는 기업이 판매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들어간 직접 비용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제품 생산에 직접 투입된 원재료비와 노무비가 포함된다. 반면, 유통비나 영업 인력 비용과 같은 간접 비용은 판관비로 간주되어 매출원가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카셀라가 언급했듯이, 특정 비용이 판매관리비와 매출원가 중 어디에 배분되었는지 확인하려면 재무제표의 주석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회계상 매출원가가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되면 매출총이익률과 영업이익이 실제보다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1. 고정비를 분산시키기 위해 생산량을 과도하게 늘리는 흡수원가 방식, 2. 유행이 지났거나 구식화 될 위험이 있는 과잉 재고를 회계상 재고 자산으로 계속 보유하는 경우
P161
나는 학생들에게 유동성 분석 방법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 무엇을 기준으로 배워왔는지 묻는다. 그러면 학생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유동비율 (유동자산 ÷ 유동부채) 을 꺼낸다. 이것은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다. “기업의 유동성을 어떻게 측정하는가?”를 검색하면 대부분의 결과에 유동비율이 등장하고, 회계 교재 상당수와 많은 교수들 역시 유동비율을 유동성 지표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많은 애널리스트가 유동비율이 1.0 미만이면 유동성 문제의 신호로, 1.5를 넘으면 유동성이 충분하다는 신호로 해석하도록 배운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작가인 케이티 간셔트 (Katie Ganshert) 의 말을 빌리자면, “많은 사람이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게 유동비율은 일종의 ‘가짜 뉴스’이며 유동성을 판단하는 데 사실상 무의미한 지표다. 25년간 투자 업무를 하면서 유동성 문제를 포착하기 위해 유동비율에 의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물어본 레버리지 금융 실무자들 가운데서도 이 비율을 실제로 활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P267
많은 전문 투자자들은 CAPM을 활용해 자기자본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실제 가치 평가에 큰 의미를 갖기 보다는 학술적인 계산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투자자가 특정 기업에 요구하는 수익률은 모델이 산출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포기해야 하는 다른 투자처의 수익률(기회 비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폴 손킨(Paul Sonkin)과 폴 존슨(Paul Johnson)이 집필한 명저 『Pitch the Perfect Investment』에서도 이 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은 2003년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오간 워렌 버핏과 찰리 멍거의 대화를 인용하며 이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주식 투자 커리어를 목표로 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워렌 버핏: “찰리와 나는 버크셔의 자본비용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릅니다.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자본비용을 공식처럼 가르치지만, 우리는 그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우리는 단지 현재 가진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현명한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할 뿐입니다. 모든 의사결정은 결국 다른 선택지와 비교하는 과정이니까요.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납득할 만한 자본비용 계산법을 본 적이 없습니다. 찰리, 당신은 본 적이 있나요?”
멍거: “없습니다. 경제학 교과서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맨큐의 저서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기회비용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요. 결국 중요한 것은 모델이 산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따라서 CAPM으로 자기자본비용을 추정하더라도 그 결과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반드시 포트폴리오 매니저와 함께 이 수치가 실제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에 투자하며 기대하는 최소한의 수익률과 부합하는지를 따져보고 검증해야 한다.
P434
회생계획가치 평가는 회수율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자본 구조상 선순위에 있는 채권자들은 자신들의 회수액 중 일부를 회생 법인 주식으로 받게 될 경우, 해당 채권자 그룹이 전체 지분과 잠재적인 가치 상승분을 독점할 수 있는 ‘풀크럼 (fulcrum)’이 되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 가치 평가액이 최대한 낮게 책정되기를 바란다. 반면, 우선순위가 낮은 후순위 채권자들은 가치 평가가 더 높게 책정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충돌은 결국 ‘가치 평가 분쟁 (valuation fight)’으로 이어진다.
P542
기업이 파산을 신청하면, 파산 이전에 물건을 납품한 거래처에 아직 지급하지 않은 금액, 즉 회사의 파산 전 매입채무는 무담보 채권 그룹에 포함된다. 따라서 분석 방식은 파산 기업의 무담보 채권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상거래채권과 일반 무담보 채권의 차이점은 거래 시장의 유무에 있다.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를 거래하려면 골드만삭스와 같은 브로커딜러에 연락해 호가를 받고 거래를 진행하면 된다. 반면, 상거래채권은 파산 기업에 물품을 납품한 업체에 직접 연락해 협상 담당자를 찾아야 하며, 매도 의사를 확인한 후 가격과 계약 조건을 직접 협의해야 한다. 이 작업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호가가 형성된 시장이 없기 때문에 동순위의 회사채나 유사한 채권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어 이러한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월드컴(MCI WorldCom) 파산 당시 우리는 같은 순위의 부채보다 10포인트(10%) 낮은 가격에 상거래채권을 매입했다.
P550
상업용 부동산 가치를 평가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아래에서 각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겠지만, 기업가치 평가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가치 평가 역시 별도의 강좌와 교재가 따로 있을 정도로 방대한 분야다.
1. 대체 원가(Replacement cost) 동일한 건물을 지금 새로 짓는 데 얼마가 드는지를 기준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치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2. 유사 거래 비교 분석(Analysis of comparables) 최근 유사 건물의 평방피트 당 매매 가격(prices per square foot, PSF)을 기준으로 건물 가치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인접 건물이 최근 평방피트당 200달러에 매각되었다면, 동일한 조건하에 본인의 건물도 평방피트 당 200달러에 매각될 수 있다. 물론 실제 매매 가격은 건물의 상태, 입주율, 유형, 입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부동산 감정인과 투자자는 이러한 차이를 반영해 가격을 조정한다. 3. 자본환원율 방식(Cap rate methodology) 11장에서 설명한 DCF 기업 가치 평가 분석을 부동산 현금흐름에 적용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부동산 현금흐름은 순영업소득(Net operating income, NOI)이라 하며 이 수치를 해당 부동산의 자본환원율(cap rate)로 나누어 추청 가치를 산출한다. 평방 피트당 매매 가격과 마찬가지로 자본환원율도 유사한 거래 사례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P551
회사가 10년전에 30년짜리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임차료가 크게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남은 20년치 임차료는 현재 시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임대차 계약에는 양도 금지 조항이 포함되지만, 파산법은 이 조항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으며, 채무자가 해당 임대차 계약을 인수하여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시가보다 낮은 임차료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다른 소매업체에 넘기는 것은 채무자에게 경제적 가치가 있다. 이 임대차 계약의 가치를 추정하려면, 새 임차인이 계약상 임차료를 시장 임차료를 내는 경우와 비교해 매년 얼마를 절감하는지 계산하고, 남은 임차 기간 동안의 임차료 절감액을 자본환원율로 할인하여 현재 가치로 환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