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행동하는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의 철학 강의
우리는 왜 멈추지 못하고 끝없이 무엇인가 해야 할까요? 이 바쁜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나 다음 일을 향해 내달리고 있습니다. 한 가지 목표를 이루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 다음목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잠시 자유를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또 이 시대에 얼마나 공공연한가요. 잠깐 멈춰 서려고 하면 금세 강박과 불안이 찾아오지요. 모든 행위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쉴 틈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진정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잠시 내려놓았다고 여긴 그 자유를 어쩌면 영영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일본의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는 이야기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목적’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유 없는 행동’ 자체를 상상하기도 어렵지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우리는 은연중에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돈을 벌기 위해,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쉬기 위해, 법을 지키기 위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목적’을 들이밀지요. 사회는 결코 이유 없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고, 개인들은 각각의 목표를 향해 끝없이 달립니다. 그러니 우리의 자유를 조금이라도 되찾으려면 ‘목적’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만 하지 않을까요?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에서 소비와 낭비를 재해석해 우리를 끝없는 소비로 밀어 넣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 고쿠분 고이치로는, 이번 철학 강의 『우리는 왜 무엇인가 해야 할까』에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몰아 부치는 사회의 기저에는 “모든 것을 목적으로 환원하는” 목적과 수단의 논리가 자리한다고요. 목적이 없는 행동은 불필요하기에 허락되지 않고, 목적만 있다면 수단은 쉽게 정당화됩니다. 사물이 아닌 관념을 소비하게 하는 소비자본주의는 인간을 끝없는 목적의 늪에 가두고요. 이때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목적에 저항하는 곳에 자유가 있다!”
코로나 이후에 계엄이 벌어진 게 우연일까?
우리 사회에 예고된 위험에 철학으로 맞서는 법
모든 것을 목적으로 환원하는 사회의 문제점은 개인의 차원을 훌쩍 넘어섭니다. 바로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지요. 이유 없는 행동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쉬운 관리 대상입니다. 어느 정도 정당하게만 보인다면, 목적과 이유를 제시할 때 개인은 잠시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그에 맞추어 움직이게 되니까요. 이러한 사회의 위험한 단면이 고스란히 노출된 지점은 바로 코로나19 위기에 비추어진 우리의 모습.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주어질 때, 시민들이 얼마나 쉽게 ‘이동의 자유’ 등을 포기할 수 있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의 방역 조치가 정당했음을 저자가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당시 정부의 자유 제한 조치를 비판했다가 되레 큰 비판에 직면한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의 사례를 보더라도, 코로나 시기 긴급 조치들은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아감벤의 논의를 따라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유를 제한하는 긴급조치를 이토록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과연 다른 예외상태가 제시되었을 때 그 정당함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느냐고요. ‘목적’이 주어질 때 너무나도 쉽게 이에 따르는 사회는, 언제라도 권력이 긴급사태를 명분으로 시민을 통제하고 제한할 수 있는 사회가 됩니다. 바로 전체주의 사회이지요,
공교롭게도 아감벤과 저자가 경고한 위험이 오늘날 한국에서 그대로 벌어졌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코로나 사태의 종식을 선언했던 바로 그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지요. 코로나 사태의 국가 방역 대책을 관통하는 “행정권이 입법권의 손을 빠져나가는 사태”라는 이 책의 문장은 계엄의 밤에도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모든 것을 목적으로만 환원하는 사회가 끝내 맞이하는 정치적·사회적 위험이 고스란히 실현된 것이지요. 이 책을 옮긴 박영대 번역가의 마지막 말은 이렇습니다. “코로나를 겪고 계엄을 이겨 낸 우리에게, 이 책이 묻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우리 삶의 구체적 면면을 되짚는 이 철학 강의를 통해, 철학의 힘으로 우리 일상의 자유를 되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