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예전의 아이처럼 대하지 마십시오. 지금 눈앞의 아이는 과거의 그 아이가 아닙니다. 어제까지의 말투와 규칙, 훈육 방식이 더는 효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만난다는 자세로 아이를 이해하고 대해야 합니다. -22쪽
집 짓기에 비유하면, 유아기는 기초를 닦고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 ‘집의 형태’를 만드는 시기라면, 청소년기는 그 집을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게 다듬는 ‘마무리 공사’ 시기입니다. 문제는 이 마무리 공사가 조용하고 차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구조물을 뜯어내고 고치는 과정에서 소음과 먼지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26쪽
미국의 뇌 발달 연구자 로렌스 스타인버그는 청소년기의 뇌를 “아직 브레이크가 완성되지 않은, 강력한 엔진을 단 자동차”에 비유합니다. 강하게 튀어 오르는 감정을 제어할 브레이크, 즉 대뇌피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청소년기에는 편도체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고 기쁨도, 화도 더 강렬하게 느낍니다. -29쪽
이처럼 청소년기는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입니다. 욕구와 충동, 좌절과 실망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 갑니다. 청소년기를 버텨 내면 감정을 조절하고 욕구를 다스리는 전전두엽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진짜 참아야 할 때 참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32쪽
부모와 청소년 자녀 간의 싸움은 이겨야 끝나는 싸움이 아닙니다. 한 번 관계가 틀어지면, 다시 회복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사춘기의 반항은 부모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세우려는 신호라는 점도 기억해 주세요. 그러므로 아이들을 힘으로 누를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기준과 안전선을 분명히 제시해 주세요. -40쪽
사춘기의 중요한 과제는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 ‘자신이 판단을 해 보고, 그 결과를 감당해 보는 것’입니다. 이 점을 부모님들은 꼭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성적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시간 관리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판단해 그 결과를 감당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그 아이는 ‘선택의 무게’를 배우지 못합니다. -53쪽
아이들에게 폰은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즐거움과 위로를 주는 대상이고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기도 하죠. 부모가 폰 사용을 제한하면 아이의 일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삶의 유일한 탈출구를 빼앗기는 것이 되고요. -70쪽
힘들 때 자기 몸에 상처 내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그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앞서 말했듯이 반복적인 자해는 마음속 상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해에서 벗어나 마음을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자해 충동이 일어날 때 혹은 힘들 때 속마음을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절반은 치료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98쪽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면 대부분 부모님은 “그래도 가야지”, “자퇴는 절대 안 돼!”라는 말부터 먼저 내뱉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아이의 마음은 더 닫힙니다. 청소년기는 부모에게 자신의 고통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때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실망시킬까 봐 마지못해 “학교 갈게요”라며 물러섭니다. 속으로는 이미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요. -121쪽
우울증은 친한 친구와 헤어졌거나 시험을 망쳤을 때 느끼는 일시적인 슬픔이나 좌절과는 다릅니다. 이 경우는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지만, 우울증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노르아드레날린 등)의 불균형으로 인해 감정, 동기, 집중력, 수면, 식욕과 관련된 뇌의 조절 기능이 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기분 좀 바꿔 봐.” “마음먹기에 달렸어.” 우울증을 앓는 아이에게 이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137쪽
ADHD는 노력 여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두엽의 ‘주의 조절 회로’가 충분히 기능하지 못해 생깁니다. 이 회로는 집중할 자극을 선택하고, 불필요한 자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회로에 문제가 생기면 쉽게 산만해지고,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집니다. -147쪽
감정은 뇌의 전두엽과 변연계(특히 편도체와 해마)의 상호작용을 통해 조절됩니다. 양극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이 조절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 흥분과 억제의 균형이 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기분이 극단적으로 들뜨거나(조증) 가라앉는(우울증) 상태가 번갈아 나타납니다. 조증일 때는 너무 들떠서 잠도 안 자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155쪽
더 쉽게 설명하면, 뇌의 네트워크는 오케스트라와 비슷합니다. 각 악기(뇌 영역)가 따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 소리를 냅니다. 조현병은 어떤 소리는 너무 크게 나오고, 어떤 소리는 늦게 나오는 등 조화가 깨진 겁니다. 조현병 환자는 중요한 신호와 덜 중요한 신호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내부 생각과 외부 현실을 혼동하거나, 감정·생각·지각이 서로 어긋나 작동합니다. -162쪽
식이장애는 겉으로는 살 빼는 것과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몸을 통제해 불안과 낮은 자존감을 해소하려는 마음의 시도입니다. 사춘기에는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고 타인의 시선에 예민해집니다. 사춘기 여학생들 사이에서 식이장애가 많이 발병하는 이유입니다. -169쪽
정신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조현병이나 ADHD 같은 기질적 취약성을 물려받았을 수 있지만, 환경에 따라 병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기질적 취향성’이란 ‘태어날 때부터 어떤 어려움을 더 쉽게 느낄 수 있는 성향’을 말합니다. 설령 조현병이나 ADHD 같은 기질적 취약성이 있더라도 가족 등을 통해 많이 공감받는다면 이런 기질이 발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92쪽
약물은 이런 이상 상태를 완전히 ‘원래대로 돌린다’기보다는, 불균형 상태인 뇌 기능을 더 안정되게 조절해 주는 겁니다. 그 결과 증상이 완화되지요. 정신과 약물이 뇌를 망가뜨린다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198쪽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기록도 다른 과의 경우처럼,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보호받습니다. 학교, 회사, 군대, 보험사 등 외부 기관이 당사자 동의 없이 진료 내용을 열람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학교생활기록부에도 의료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병원에서는 담당 의사 말고는 아무나 기록을 볼 수 없고요. -205쪽
많은 부모님이 ‘입원’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큰 충격을 받습니다. 정신과 입원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 때문이지요. 또 막다른 곳에 몰린 느낌을 받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환자가 된 거구나’며 절망하는 것이지요. 정신과 의사로서 거듭 말씀드리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입원은 ‘안전하게 집중 치료를 받기 위한 과정’입니다. 다른 병처럼, 증상이 심할 때 잠시 안정과 회복을 위한 치료 환경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211쪽
아이에게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치료의 핵심입니다. 약은 치료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진짜 치료는 ‘인간관계’에서 일어납니다. -2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