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님의 침묵』에서 보여지는 ‘기룸의 시학’
『님의 침묵』 출간 100주년을 맞이하며 저자는 종교 문화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문화운동가 한용운의 실상을 부각하고, 『님의 침묵』을 새로운 문화적 비전을 담은 시집으로 읽어내고자 한다.
한용운을 대상으로 한 문헌과 연구는 1,600여 편을 상회하고 석·박사 논문도 260여 편에 이른다. 한국 근현대시사에서 이처럼 많은 연구가 집중된 사례는 한용운을 제외하면 이상과 김수영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이고 학술적인 인기에 비해, 시집 『님의 침묵』과 한용운을 둘러싼 연구에는 여전히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공백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기존 연구는 시집의 내용 분석에 치중한 나머지 제자와 장정, 문장부호와 어조와 같은 형식적인 미학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또한 오늘의 문제의식과 긴밀히 접속시키며 이 시집의 현재적 가치와 의미를 논의하려는 시도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저자는 선행연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지점을 하나씩 채워가며 이 시집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전언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한다. 한용운이 식민지 문화공간 속에서 어떤 인적 네트워크 안에서 활동했는지 또한 깊이 들여다보며 종교계에만 머물지 않고 문학계와 언론계로까지 확장된 그의 활동을 면밀히 추적한다. 그 과정 속에서 한용운이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글쓰기에 임했는가를 검토했다.
한편 저자는 이런 미세한 형식의 결들을 살피면서 불교적 논리가 삶의 논리와 조응하는 지점을 놓치지 않고자 했다. 서문의 첫 문장인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진술에 담긴 시적 논리는, 부정과 긍정이 역동적 의미 생성의 논리로 전개되는 불교의 불일불이(不一不二)론과 조응하면서도 이를 삶의 차원에서 나름의 논리로 변용한 것이기도 하다. 이 시집에서 ‘님’과 ‘나’는 서로 떨어져 있는 존재이면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우는 관계 속에서 내밀하게 연결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계를 해명하는 시적 논리가 불교적 논리로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시집에서는 불교적 사유가 활용되면서도 그것이 삶의 논리와 결합되는데 이 결합 양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 시집에는 대립과 통합을 단순히 대립항으로 고정하지 않고, 이를 생성의 의미장으로 전환하는 삶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불교 논리를 새로운 인식의 원천으로 삼으면서도 여기에 삶의 논리를 결합해나간 한용운의 이러한 시적 태도를 해명하기 위해 저자는 ‘기룸의 시학’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