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저격수예요.”
“그래서 뭘 어쩌겠다고? 혼자 일본군을 상대하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건 안 돼!”
백두 대장이 나섰다. 나무라는 말투였지만, 걱정이 가득 배어 있었다.
“저는 혼자지만, 시간을 벌 수는 있어요. 지금은 사방이 어둡고, 더구나 적군은 길을 모릅니다. 저는 누구보다 이 지역의 지리를 잘 알고……. 무엇보다 저격수예요.”
설아는 일부러 저격수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도 백두 대장은 설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설아야!”
“여기서 죽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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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유독 가지가 굵은 나무 위로 찬찬히 올라갔다. 할아버지와 살 때부터 느꼈다. 들판을 달리고, 나무와 절벽을 오르는 일이 낯설지가 않았다. 기억이 돌아오면서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총 쏘기는 말할 것도 없고.
나무 위로 오를수록 옆의 또 다른 나무와 엉켜서 가지와 잎이 무성했다. 어둡고 짙은 안개 때문에 막힌 시야가 더 좁아졌다. 잎 사이로 얼핏 달이 보이는 듯도 했지만, 금세 구름에 가려지고는 했다. 남은 건 소리뿐이었다. 누군가가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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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여기서 며칠 더 지내.”
“왜요? 샤샤를 만나는 건 제 약속이기도 해요.”
“넌 약속을 지킨 거나 다름없어. 이제는 내가 갈게. 그 애는 내 동생이야.”
구태여 숨길 필요가 없었다. 아이는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 설아는 아이를 한 번 쳐다본 다음 밖으로 나섰다.
“누나, 나도 데려가요!”
“넌 아직 걷기에는 무리야.”
“그래도 갈래요. 제발요. 나도 누나를 구했잖아요.”
아이가 애타게 말했다. 문지방을 넘어 절뚝이며 밖으로 나왔다.
“그건 고마워. 평생 잊지 않을게. 하지만…….”
“함께 가거라.”
바로 그때,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할아버지!”
설아는 반사적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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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을 때 설아는 바깥을 걷고 있었다. 얼추 열흘은 지난 듯했다.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주사를 맞고 잠들기를 반복했다는 것.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건 거짓말 같았다.
손과 발에 묶여 있는 족쇄가 무거웠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렬해졌다. 특히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소름이 끼쳤다.
건물을 나서자마자 따가운 햇빛이 눈을 찔렀다. 하늘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설아는 땅만 내려다보며 양옆에서 팔을 붙잡고 이끄는 일본군 병사를 따라 걸었다.
좁은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잔돌과 잡초가 발바닥에 닿을 때마다 적잖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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