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는 단어 하나하나가 강세를 가진 언어다. 동시에 읽을 때는 분명한 리듬과 높낮이가 있다. 그런데 도스토옙스키, 특히 그의 4대 장편은 그 리듬을 일부러 비틀어 놓는다. 읽는 사람이 편하지 않게, 숨이 턱 막히게, 문장을 곧장 삼키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자조차 읽다 말고 돌아서게 만든다. 그래야 문장을 씹고, 다시 씹고, 결국 생각하게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래서 고민했다.
이 껄끄러움을 그대로 살릴 것인가. 아니면 독자를 위해 다듬을 것인가.
- 「잘 읽히는 게 좋은 번역이지」 중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평범한 인간’과 ‘비범한 인간’. 평범한 인간은 법과 도덕을 따라야 한다. 비범한 인간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기존의 질서를 넘어설 권리가 있다. 나폴레옹을 예로 든다. 수많은 피를 흘렸지만 역사는 그를 위인으로 기억한다. 마호메트도 마찬가지다. 질서를 깨뜨린 자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선을 넘을 자격이 있는가?
이 논리의 끝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한 사유의 주인공과 마주한다. “신은 죽었다.” 그리고 “초인이 온다.”라고 말했던 사람, 망치를 들어 기존의 가치를 깨뜨리고자 했던 철학자, 니체.
- 「초인 사상은 도 선생님이 먼저라고」 중에서
우리는 종종 과거의 한 문장에 붙잡혀 자신을 정의해 버린다. 한 번의 실패, 한 번의 비겁함, 한 번의 잘못. 그 한 줄로 자신을 요약해 버린다. 그러나 소냐도, 헤스터 프린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들은 낙인을 지운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다른 의미를 덧썼다. 수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수치가 전부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표식을 달고 산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중요한 것은 그 표식을 어떻게 숨기느냐가 아니라, 그 표식을 지닌 채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
- 「황색 감찰과 주홍글씨 A」 중에서
각각의 작품을 번역할 때는 잘 몰랐지만, 정신의 연대기 같은 네 편을 모두 번역한 후에 깨달았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을 극단으로 밀어 넣고, 그 극단이 무너지는 지점을 보여 준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붕괴의 자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는 것을.
오만은 무너지고, 순수도 무너진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완벽하게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완벽하게 선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일 필요도 없다.
- 「기사도 정신이 사라진 시대의 돈키호테」 중에서
연민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법칙이다. 그 법칙을 잃는 순간 우리는 파멸에 가까워진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은 의심하고 있는 그 법칙을 붙드는 순간, 우리는 비록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서로를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인류가 아직 여기 있는 이유도, 아직 서로를 완전히 물어뜯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유도, 그 법칙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 「연민, 인류의 유일한 존재 법칙」 중에서
이 소설은 살인의 밀도에서 도스토옙스키 전 작품 중 가장 잔혹하다. 물론 다른 소설들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짙다. 『죄와 벌』에는 세상을 좀먹는 노파의 싸늘한 시신이 있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뒤틀린 욕망에 빠진 아버지의 피가 있다. 두 작품에서 죽음은 어디까지나 한 사건이고, 한 인물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악령』은 다르다. 이곳에서는 죽음이 개별 사건이 아니라 전염병처럼 번진다.
- 「악령」 중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간질은 저주가 되었다. 그러나 그 저주를 피하지 않고 끝까지 직시하는 태도를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여전히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간질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그것은 삶을 갈라놓는 균열이다. 우리는 균열의 틈새에서 목격한다. 신의 은총도, 신의 침묵도 모두 인간의 삶 위에 얹혀 있다는 사실을.
도스토옙스키의 세계에서 고통은 사라지지 않으나 그렇다고 단순한 저주에 머물지도 않는다. 그는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 떨리는 문장들이 우리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이유다.
- 「간질」 중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사형 5분 전에 태어난 생명 찬가를 평생 붙들고 살았다.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것을 완성한다. 삶은 어떤 형태로든 사랑할 가치가 있다고, 절망이 아무리 깊어도 그것이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고통은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밀도를 증명한다고.
그는 인생이 쉽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고통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라고.
- 「공기 한 모금의 무게」 중에서
나는 그의 그림자라고 말해 왔다. 빛이 있는 한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는 빛이다. 위대한 문호의 빛이 발하고 있는 한 계속 함께 걷는다. 나는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고, 여전히 문장을 고치고, 여전히 그와 대화한다. 내가 옮긴 것은 텍스트만이 아니었다. 한 시대의 영혼이었고, 그 영혼이 나를 이 길까지 데려왔다.
번역은 끝났지만, 그와의 만남은 아직 진행형이다. 푸시킨의 생일에, 러시아어의 날에, 그의 땅에서 그의 이름을 말하게 될 그날, 나는 떠올릴 것이다. 이제는 내가 그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다음 길로 밀어 주고 있다는 것을. 그 길은 번역에서 끝나는 길이 아니라 알리는 길, 설명하는 길, 그리고 끝내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길이라는 것을.
- 「이제는, 그의 길 위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