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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의 얼굴들

철학은 지적장애를 어떻게 보아왔는가


  • ISBN-13
    979-11-7254-116-3 (0310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도서출판 푸른숲 / 심심
  • 정가
    23,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6-03-31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리시아 칼슨
  • 번역
    이예린 , 유기훈
  • 메인주제어
    장애: 사회적 측면
  • 추가주제어
    윤리학, 도덕철학 , 철학: 인식론과 지식론 , 사회 차별, 평등한 대우
  • 키워드
    #장애: 사회적 측면 #윤리학, 도덕철학 #철학: 인식론과 지식론 #사회 차별, 평등한 대우 #지적장애 #장애학 #장애철학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5 * 215 mm, 456 Page

책소개

인간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던 지적장애

착취와 억압의 역사를 넘어, 새로운 철학을 상상하다

 

지적장애 연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지적장애의 얼굴들》이 오랜 기다림 끝에 심심에서 출간되었다. 장애를 인간 존재의 한 양식으로 재사유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선구적인 학자 리시아 칼슨은 장애학, 생명과학, 윤리학 등을 아우르는 철학 담론을 통해 우리가 지적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말하지 못하는 존재'로 환원해왔는지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지적장애의 얼굴들》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푸코의 역사-비판적 태도를 빌려 지적장애를 둘러싼 제도의 역사와 그 세계가 어떻게 젠더화되었는지를 분석해 지적장애 억압의 구조를 파헤친다. 2부는 지적장애를 '개인의 비극' 또는 '최악의 악몽'으로 여기는 주류 철학을 비판한다. 특히, 철학 담론에서조차 지적장애인이 비인간화되고 고통받는 존재로 고착되고 있음을 폭로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지적장애를 사유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지적장애를 낯선 타자로 여겨온 기존의 담론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철학자, 정책입안자, 지적장애와 관련한 연구자, 그리고 시민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지적장애에 관한 사유의 전환을 촉구하는 이 책은 지적장애인을 포함해 그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 공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목차

용어 설명

들어가며 철학자의 악몽

 

1부 지적장애의 역사적 세계

 

1장 백치와 시설이라는 쌍둥이 형제

지적장애인 시설의 탄생│어른 아이와 애완동물│지적장애는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고정적인 동시에 변동적인│'보호'와 '생산성'을 위한 시설 수용│가시성과 비가시성

 

2장 객체와 주체를 오가는 '젠더화' 문제 

사회집단과 권력 양식│정신박약 여성과 전형 효과│시설의 돌봄 제공자와 수용자 노동의 역설│어머니로서의 여성과 정신박약의 저주│여성을 억압한 여성 연구원│아이러니한 존재, 여성 개혁가│결론

 

3장 분석을 위한 중간 고찰

사회구성주의 너머의 지적장애│지적장애 분석의 새로운 틀

 

2부 지적장애의 철학적 세계

 

4장 권위의 얼굴

도덕 전문가│지적장애 역사의 문지기│억압된 지식과 저항│인식적 권위와 특권을 넘어, 동등한 시민으로

 

5장 짐승의 얼굴

지적장애의 동물화│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철학자의 주장│인간과 동물에 대한 억압│인간됨이란 무엇인가?│동물성을 다시 주장하는 것의 의미

 

6장 고통의 얼굴

산전 전형과 철학적 전형│고통의 맥락화│인식론적 장벽

 

결론 거울의 얼굴

연속성과 불연속성│인지부조화│지적장애를 둘러싼 세계 여행하기

 

감사의 글

옮긴이 후기

미주

본문인용

영화 제작자의 세계관에서 철학자의 세계관으로 시선을 옮기면, 지적장애가 철학자들에게도 '최악의 악몽'임을 암시하는 묘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현상을 이해하고, 철학을 따라다니며 그늘처럼 떠도는 지적장애의 여러 얼굴을 드러내려는 시도다. _17쪽 〈들어가며 철학자의 악몽〉 중

 

나는 현대 철학 담론에서 지적장애가 구현되는 구체적 양상을 역사적 세계와 나란히 놓음으로써 지적장애를 다루는 철학 담론이 역사적 우연의 산물임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서 지적장애를 다르게 사유하는 것이 윤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상상해보고자 한다. 중증 지적장애인과 비인간 동물을 긴밀하게 연결 짓는 방식과 이로 인한 비인간화의 위험, 고통과 장애를 동일시하는 문제, 지적장애인을 피해자나 주변 사람에게 깊은 고통을 안겨주는 존재로 묘사하는 주류 방식에 도전하는 일이 포함된다. 도덕적 세계의 경계를 구분 짓는 시도에 내재된 배제의 방식과 특정한 타자를 도덕적 주체로 구성하거나 소외시키는 “우리”의 미심쩍은 방식을 문제 삼는 것은 “우리가 지금과 같이 존재하고 행하며 사유하지 않을 가능성”을 향한 한 걸음이다. _39쪽 〈들어가며 철학자의 악몽〉 중

 

이에 나는 일련의 광범위한 푸코적 질문과 함께 이 작업을 시작했다. 지적장애에 관한 지식이 수집되고 생산되는 방식에는 어떤 독특한 변화가 있었는가? 지적장애 범주를 규정짓고 이를 영속시킨 담론 및 실천은 무엇인가? 그 근원에는 어떤 연속성과 비연속성이 존재하는가? 제도적 기술 속에 어떤 형태의 권력이 내재돼 있으며 이는 전문 지식의 생산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_50쪽 〈1장 백치와 시설이라는 쌍둥이 형제〉 중

 

가망 없는 상태로 고착돼 있어 보호·관리가 필요한 '정적' 사례는 시설의 존재를 정당화했다. 동시에 정신박약이 변화 가능한 '동적' 상태라는 개념 역시 시설의 존재 근거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했다. 정신박약이 변화 가능하다는 가정은 시설설립운동의 핵심이었다. 새로운 시설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데 있어 개선 및 교육의 가능성과 적절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수사가 만연했다. 시설의 제도적 실천은 교육과 훈련에서 감독과 처벌에 이르기까지 알맞은 환경이 정신박약을 개선하고, 더 나아가 시설의 희생양인 정신박약자를 좀 더 생산적인 개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었다. 여기서 시설은 단순히 보호적 공간에 그치지 않고 교화적이고 생산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게 된다 _98쪽 〈1장 백치와 시설이라는 쌍둥이 형제〉 중

 

영은 여러 페미니스트의 연구를 인용하며 여성 자신이 의존하는 집단(대개는 남성)의 이익을 위해 '여성의 일'로 폄하된 업무를 수행하면서 그 노동의 성과를 한 사회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이전해온 여러 방식을 지적한다. 정신박약자의 경우, 수용자의 노동 활용이 착취의 한 형태였음이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_116~117쪽 〈2장 객체와 주체를 오가는 '젠더화' 문제〉 중

 

정신박약 여성이 다른 수용자를 돌보는 이 상황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바로 이 여성이 빈민 중의 빈민이며 혼외자를 낳는 등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 규범을 왜곡시킨 존재인 동시에 여성성의 진수를 체현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정신박약 여성은 지적·도덕적 능력의 결함 때문에 격리되고 보호받아야 했지만, 이들의 돌봄 본능만큼은 여전히 온전한 것으로 여겨졌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박약에 대한 고정적·변동적 관점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증 정신박약 여성은 시설 밖에 그대로 두면 가르칠 수 없는데다가 도덕적·지적 결손 상태가 변하지 않는 경우로 간주됐지만(이 도덕적 결함을 지울 수 없는 것으로 묘사했던 아이작 커린의 설명을 떠올려보자), 시설 안에서는 충분히 변할 수 있을뿐더러 궁극적으로는 유용한 노동력으로 인정받았다. _133쪽 〈2장 객체와 주체를 오가는 '젠더화' 문제〉 중

 

남성 권위자는 모든 여성을 정신박약을 확산시킬 수 있는 존재로 규정했지만, 여성 개혁가는 자신을 정신박약 여성과 분리했다. 이들은 여성성과 모성의 범주 안에서 '우리'와 '그들'을 나눴다. 앞으로 살펴보게 될 바와 같이, 자선가에게 정신박약자 계층은 하나의 사회적 대의명분이 되었고, 새롭게 등장한 여성운동의 정치적 주장을 뒷받침할 구실로 활용됐다. _153~154쪽 〈2장 객체와 주체를 오가는 '젠더화' 문제〉 중

 

기존의 남성중심의 병인론 담론이 여성 집단 전체를 지목했다면, 이제는 다시금 '정신이 온전한' 여성이 정신박약 여성과 자신을 분리시킨 것이다(앞서 언급한 로웰을 떠올려보라). 생어는 “우리는 모성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외침과 동시에 사회에 계속해서 짐이 되는 여성에게는 모성을 단념하기를 요구했다. _163쪽 〈2장 객체와 주체를 오가는 '젠더화' 문제〉 중

 

만약 이것이 옳다면 장애의 사회적 모델의 전제가 되는 핵심 구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이에 장애 이론가의 과제는 사회적·정치적·개념적 실천을 통해 '손상'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재고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신지체' 꼬리표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준다. / 하지만 옹호, 권리, 그리고 법적 보호의 맥락에서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기존에 존재하는 지적장애에 관한 발상이나 가정에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고 때로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범주의 유지, 즉 지적장애 범주 자체를 완전히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에바 키테이는 지적장애와 관련된 의존성의 재개념화를 주장하면서도 중증 지적장애인이 필요한 돌봄과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범주가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존재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다. _177~178쪽 〈3장 분석을 위한 중간 고찰〉 중

 

정신지체 분류의 흥미로운 점은 이 분류가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는 점이다. 이 분류가 이토록 오랫동안 존속한 이유는 이질성, 불안정성, 전형 효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다양한 권력 구성체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 때문이지, '그럼에도'가 아니다. 서로 다른 학문 분야의 전문가가 이들을 정의하고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 존재하고 가르칠 학교가 있으며, 연구할 과학자와 검사할 심리학자, 분류할 교육자, 판단할 사람, 그리고 이 꼬리표 자체의 정당성을 논의할 이론가가 존재하는 한, 지적장애인은 계속해서 지식의 객체로 남게 될 것이다. _200쪽 〈3장 분석을 위한 중간 고찰〉 중

 

나는 이런 측면에서 제도적·시설적 세계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지만, 분류된 개인과 이들의 동맹자가 그 구조와 관행에 도전했던 중요한 순간이 증거로 존재한다. 20세기가 진행되면서 옹호단체와 자기옹호자는 지적장애에 대한 이해와 의료 및 제도적 전문가의 처우 방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은 이 담론의 장에 어떻게, 그리고 언제 등장하는가? 이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이 주제에 대해 발언할 권위를 어떻게 주장하는가? _205쪽 〈4장 권위의 얼굴〉 중

 

자기옹호운동은 지적장애 정의의 경계를 어떻게 다시 만들어나가고 있는가? 어떤 전복적 담론이나 루핑 효과가 일어나고 있는가? 장애권리운동이 장애를 사회적 구성물로 재개념화함에 따라 지적장애 분류의 지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럼에도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지적장애에 관한 철학적 논의가 전형적 사례(예컨대, 경증과 중증)에만 국한될 경우 그 내용이 매우 빈곤해질 것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_231쪽 〈4장 권위의 얼굴〉 중

 

지적장애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부재한가? 지적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야말로 가장 깊은 침묵 속에 갇혀 있다. 중증 및 최중증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은 이런 논의에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경한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의 목소리를 포함한 작업조차도 매우 드문 실정이다. 여타 학문에서는 당사자의 관점이 어떻게 포함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존재하지만 철학 문헌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_233~234쪽 〈4장 권위의 얼굴〉 중

 

그렇다면 자신의 위치, 정체성, 그리고 환경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성찰하기 어렵고, 입장을 명확히 표명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은 어떻게 되는가? 관점 인식론이 특정 종류의 지식을 전제로 한다면(설령 그 이론이 지식이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런 앎이 불가능한 이들은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되는가? 만약 관점 인식론에서 '인식론'을 제거한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 이 질문에 한 가지 응답을 내놓을 수 있다. 중증 장애인과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는 타자, 가령 옹호자, 돌봄 제공자, 친구, 가족 등이 당사자의 관점을 앞세울 수 있는 '앎의 주체'라는 것이다. _247~248쪽 〈4장 권위의 얼굴〉 중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논의에서 중증 지적장애인 집단이 특히 호소력 있는 이유는 인간 본성을 정의할 때 이 집단의 구성원이 정의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존재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에 따르면 중증 지적장애인은 오직 생물학적으로만 우리 인간종에 속하는 변두리 구성원으로, 이들은 종이라는 경계가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보여준다. 지적장애를 이처럼 극단적인 형태로 마주할 때, 말하자면 모든 중요한 인간적 자질이 결여되어 있고 심지어 발달 가능성조차 전혀 없는 존재로 제시될 때, 우리는 19세기 백치에 관한 묘사를 떠올리게 된다. _276쪽 〈5장 짐승의 얼굴〉 중

 

짐승의 얼굴이 유지되고 영속될 때 어떤 중대한 문제가 뒤따르는지를 고려한다면, 종차별주의를 반박하는 데 전념하는 논의에서든 지적장애를 다루는 다른 철학적 논의에서든 지적장애 집단을 동물화하는 것을 자제해야 할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다. 비인간 동물과 지적장애인을 계속해서 연결 짓는 것은 개념적으로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형태의 개념적 억압을 지속시키며 다른 구체적 억압의 양상을 외면하게 만든다. 나아가 지적장애인의 고유한 인간의 얼굴을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해롭다. _281쪽 〈5장 짐승의 얼굴〉 중

 

만약 우리가 비인간 동물과 지적장애인이 각기 경험하는 상이한 형태의 억압과 차별을 이를 논하는 과정에서 되풀이하지 않으면서도 인식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장애인권리운동과 동물권리운동 간의 연대를 구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적장애인을 철학의 애완동물로 전락시키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형태의 억압에 맞설 새로운 화해 방안을 구상할 수 있을까? 또한 지적장애를 둘러싼 논의 속에 여전히 '짐승의 얼굴'이 자리할 여지가 있을까? _305~306쪽 〈5장 짐승의 얼굴〉 중

 

개인적 비극 모델을 비판하는 당사자는 자신의 상태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일부 손상이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장애 당사자와 지적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주장하듯, 그들의 고통을 초래하는 좀 더 중대한 원인은 장애에 대해 차별적 견해를 지닌 사회, 그리고 장애인의 충만한 삶을 가로막는 구체적 장벽을 지닌 사회에 있다. _315쪽 〈6장 고통의 얼굴〉 중

 

많은 장애 여성이 현대 페미니즘 담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역학이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고통을 예방한다는 명목하에 장애를 지닌다는 것의 본질과 바람직하지 않음에 대해 잘못되고 해로운 전제를 반복하는 것이다. 동물권 담론의 사례처럼, 이런 논의가 실제로 지적장애인을 위한 이해 관심에 맞춰져 있는지 아니면 지적장애인을 단지 비장애 여성의 권리를 위한 도구로 활용해 장애인의 억압과 주변화를 영속화하고 있는 것인지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_335쪽 〈6장 고통의 얼굴〉 중

 

장애와 고통을 단순히 등치시키는 대신,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고통에 대한 특정한 주목이 다른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을 어떻게 방해해왔는가? 지적장애의 예방과 제거, 치유를 강조하는 것이 지적장애인과 그 가족이 사회에서 겪는 고통(사회적 폄하, 경제적 불이익,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대한 주의와 자원을 얼마나 빼앗아가는가? 고통을 없애기 위해 권장되는 실천이 어떻게 고통을 더하는가? 불가피한 고통의 삶이라는 비극적 초상이 장애가 있는 삶의 다른 실존적 차원을 얼마나 가리고 있는가? _337쪽 〈6장 고통의 얼굴〉 중

 

인지손상인 집단을 '우리'와 극도로 다른 집단으로 구성하는 것은, 바로 '우리-그들'이라는 이분법에 근거한다. 그리고 이런 개념적 거리가 철학자가 지적장애인을 비인간 동물과 동일한 범주 아래에 손쉽게 배치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로 상실되는 것은 오직 이 완전히 인간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점과 서사적 서술이 포함될 때에만 비로소 드러나는, 구체적이고 체화된 삶과 관계의 풍부한 직조물이다. 그리고 이런 상실은 많은 이에게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_380~381쪽 〈결론 거울의 얼굴〉 중

서평

“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지적장애가 던지는 질문에 철학은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지난 4월 20일, 광화문 서십자각에는 “우리를 가두지 마십시오”라는 외침이 울려퍼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진보적 장애인권 단체들은 비 오는 날씨에도 우비를 입고 시혜와 동정의 맥락이 담긴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며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집회를 이어갔다. 그중에서도 발달장애인 당사자 중심 단체 한국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권리보장 촉구대회를 열어 “발달장애인 스스로 삶을 결정할 권리”를 외쳤다. 

 

“나를 인간의 얼굴로 보라”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외침은 발달장애인법 제정 등 제도적·법적 차원에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특히 지적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환대받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다. 여전히 많은 지적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자유를 빼앗긴 채로 시설에 갇혀 신체적·성적 학대에 노출되는 등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지적장애'는 욕설로 사용되며 우리는 일상적으로 '지능'의 높고 낮음을 운운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비판적 학문 내부에조차 지적장애인에 대한 철학적·이론적 분석은 미비한 실정이다. 

 

“혹시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나요?”(13쪽) 지적장애에 관심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 동료 철학자들은 그에게 묻곤 했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비장애인이 지적장애를 둘러싼 문제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는 믿음, 지적장애에 대한 철학의 일관된 무관심은 저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칼슨은 인간이라는 테두리, 시민이라는 테두리 내부에 이들의 자리를 단단하게 마련하기 위한 철학적 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적장애의 얼굴들》은 지적장애를 둘러싼 기존의 담론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말하지 못하는 자'가 아닌 '앎의 주체'로 지적장애인을 호명함으로써 새로운 담론의 씨앗을 심는다.

 

 

철학, 장애학, 윤리학의 교차점에서 지적장애를 사유하다

지적장애는 어떻게 사회에서 몰아내야 할 '악몽'이 되었나

 

《지적장애의 얼굴들》은 2010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로 장애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줄곧 지적장애 연구의 기준점이 되었던 선도적인 저작이다. 리시아 칼슨은 지적장애를 둘러싼 철학적 담론, 사회적 상상력, 정책적 기획이 어떻게 구성되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1, 2부에 걸쳐 지적장애를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로 다른 학문의 전문가들이 주체가 되어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정의하고, 연구하고, 시설에 수용하고, 꼬리표를 붙이는 한, 이들은 계속해서 지식의 객체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200쪽)

 

특히, 철학자들은 지적장애를 비인간화하고 특정한 면만을 부각시키는 역사를 반복해왔다. 이들은 정신지체와 같은 상태는 '객관적으로 나쁘다'는 믿음을 바탕에 두고 지적장애인이 인격체인지, 지적장애인을 동물과 구분할 수 있는지 등을 질문하거나, 기존의 철학적 논의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기 위한 가장자리의 사례로 지적장애를 활용했다. 피터 싱어가 동물권을 옹호하기 위해 지적장애인을 '인간보다 동물에 가까운 존재'로 호명한 방식이 대표적이다. 칼슨은 이러한 비유가 지적장애인이 인간만이 겪을 수 있는 고유한 형태의 억압을 가리고 지속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303쪽)

 

중증 지적장애인 집단이 종차별주의를 반박하기 위한 사례로 선택되는 것은 이들이 대개 인간보다 동물과 더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고 여겨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짐작건대 중증 지적장애인이 근본적으로 타자로 인식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사회적·철학적으로 주변화된 이 집단이 철학 문헌 속에 드러날 때조차도 단편적이고 왜곡된 혹은 전형적인 모습으로 자주 제시되는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또한 싱어의 작업이 어느 주변화된 집단(동물)에 대한 신화를 깨고 '무비판적이고 안이한 가정'을 반박하려는 데 목적이 있음에도 또 다른 집단에 대한 신화와 가정을 여전히 그 바탕으로 삼고 이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다. (279쪽)

 

마찬가지로, 지적장애인의 '고통의 얼굴'은 이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학대 및 폭력,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반복적인 외침을 비가시화하는 동시에 “'지적장애를 지닌 사람은 특정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널리 퍼진 믿음과 가정”(314쪽)을 강화한다. 장애와 고통의 동일시, 고통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산전 유전자 검사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칼슨은 우리 사회가 성별을 이유로 한 임신중절은 비판하면서 장애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있는 태아에 대한 임신중절에 대해서는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을 꼬집는다. “장애에 대해 차별적 견해를 지닌 사회, 그리고 장애인의 충만한 삶을 가로막는 구체적 장벽을 지닌 사회”(315쪽)야말로 지적장애인 당사자에게 중대한 고통을 준다는 사실은 산전 검사에서 중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지적장애의 착취와 배제에 연루된 여성들

 

칼슨은 지적장애에 관한 지식이 수집되고 생산되는 과정에 이루어진 독특한 변화 중에서도 젠더화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은 페미니즘과 장애를 다룬 문헌 안에서조차 지적장애라는 문제가 다소 주변화되어 있고, 지적장애의 세계에서 젠더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드물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

 

여성이 돌봄에 타고난 역량이 있다는 고정관념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여성이 돌봄 제공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했다. 어머니 집단은 자녀의 정신박약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는 정신박약 여성의 재생산권을 현저히 제한했다. 일부 비장애인 여성들은 남성보다 '직관적이고 사교적이고 순종적'이라 여겨진 덕에 우생학 가계도 연구원으로 일종의 지식 생산자가 될 수 있었다. 여성 내부의 구분짓기는 여성 개혁가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 마거릿 생어 등 20세기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재생산권을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 우생학 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젠더와 지적장애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젠더가 지적장애 범주에 대한 정의와 그에 따른 실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는 것을 넘어선다. 지적장애 역사의 젠더화된 차원을 분석해보면 지식 객체와 지식 주체 간의 단순한 관계를 넘어 훨씬 더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문제들이 드러난다. /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적장애 분류의 역사와 본질이 이것을 태동케 한 복잡한 권력관계의 그물망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166쪽)

 

칼슨의 분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정신박약 여성이 경험한 억압이다. 정신박약 여성은 “정신박약 개념과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교차하면서”(118쪽) 정신박약 범주의 위험한 특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지목되었다. 이들은 시설 바깥에서는 성 규범을 왜곡시키고 도덕적·지적 상태가 개선될 수 없다 여겨졌으나, 시설 내부에서는 여성성의 진수인 돌봄을 체현하고 유용한 노동력으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즉, “정신박약 여성은 자신의 본질을 규정하는 상충되는 정의들에 종속”(133쪽)되어 있었고, 이는 다름 아닌 시설의 자기 보존을 위해서였다. “완전한 여성 또는 엄마로 정의될 수 있는 자의 존재는 여성성과 모성이 허락되지 않은 자들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가?”(168쪽)라는 칼슨의 절박한 질문은 오늘날 페미니즘이 '결함 있는 자들'과 함께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예속된 지식 너머의 얼굴을 그리다

 

칼슨이 철학과 지적장애의 교차에 천착한 까닭은 철학이 우리가 이미 지나온 지적장애의 묘사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적장애를 '결여된 존재', '비시민적 존재'로 환원해온 역사가 “누가 인간이며, 누가 시민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이 지금까지 지적장애인을 절대적 타자로 그려왔는지 질문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다행히도, 철학 담론 내부에서는 예속된 지식을 드러내기 위한 변화의 물결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피터 번, 에바 키테이, 수전 웬델 등은 비판적 장애 접근에 뿌리를 두고 당사자의 주체성과 응답가능성을 긍정하며 당사자와 관계 맺는 이들에게 귀기울이는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적장애의 얼굴들》은 바로 그 철학으로 향하는 전환점이다. 지적장애인 가족과 맺은 관계를 엮어낸 철학자들의 글에서 “관습에 따라 흐릿하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그려졌던 중증 지적장애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 곧 한 인간의 얼굴을 또렷이”(242쪽) 마주할 수 있듯이, 리시아 칼슨은 지금껏 듣지 못했던 선명한 목소리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리시아 칼슨
미국 프로비던스칼리지 철학과 교수로 '지적장애'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확장한 선구적인 학자다. 그는 지적장애를 둘러싼 도덕적 지위, 돌봄 윤리, 상호의존, 인격성과 비인간화 문제를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장애를 인간 존재의 한 양식으로 재사유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왔다. 저서로 《지적장애의 얼굴들》, 《함께하는 음악적 삶: 철학과 장애, 그리고 소리화의 힘(Shared Musical Lives: Philosophy, Disability, and the Power of Sonification)》이 있고 《인지장애와 도덕철학의 도전(Cognitive Disability and Its Challenge to Moral Philosophy)》을 함께 썼다.
번역 : 이예린
대구대학교 언어치료학과를 졸업한 후 대구대학교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발달장애인 언어재활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장애학 분야에서 연구 활동과 논문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지적장애인, 동물화, 그리고 동물로의 전환: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의 교차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있다.
번역 : 유기훈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 전공 조교수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인류학, 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법학과 의료인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학교병원과 종로구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진료 교수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경북대학교와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생명윤리학과 장애학을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아프면 보이는 것들》, 《법, 과학을 만나다》가 있으며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인식적 부정의》, 《발달장애 당사자연구》, 《정의로운 건강》(출간 예정)을 공동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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