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우리는 끝내,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온전히 선택하지 못할 터다. 우리의 전기는 대개 시간과 공간의 질서 속에 미리 마련된 자리들을 차례로 점유해가는 과정으로 요약된다. 여러 틀이 우리에게 부과되고, 여러 역할이 우리의 몸과 정신을 사로잡으며 우리에게 깊은 흔적을 남기고, 앞으로 우리가 누구와 함께 삶을 살아가게 될지를 결정하는 만남들이 우리 운명을 빚어낸다._7쪽
인간의 삶이 언제나 피할 수 없는 필연들에 복속되어 있다는 이러한 체념이, 우리를 무력감으로 이끄는 결론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그 필연은 흔히 나이와 출산과 같은 자연적·생물학적 욕망들 혹은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사회적 힘들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이해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양식들을 의식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따라서 그러한 성찰의 필연성을 긍정해야 한다._9쪽
나는 삶의 형식들에 관한 하나의 물음을 전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우리가 실제로 되어가는 것과 우리가 발전시킬 수도 있었던 자기 자신의 수많은 가능태 사이의 간극이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번에도 나는 하나의 특이한 사례를 포착하고 그 사례를 서술하는 방식에 의지할 것이다. 다만 이 특이성은 추상적 대상이 아니라, 나의 전기 속에 깊이 각인되어 실제로 체험되어온 관계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디디에 에리봉과 에두아르 루이, 그리고 나. 우리를 이어주고 관통해온 우정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_12쪽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의 삶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연속된 일기와 같다. 한 사람이 어떤 경험을 혼자 겪고 있다 해도, 그 순간 다른 두 사람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함께 있다. 결국 그 경험은 정신적으로는 셋이 함께 겪는 것이 된다. 어떤 경험을 한다는 것은, 이미 그것을 나눌 것을 예감한 채로 경험하는 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경험은 언제나 ‘이야기가 될 경험’으로 체험된다._34쪽
사회는 이미 거기에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는 우리가 존재하고 사유하는 방식과 감각하는 방식까지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살아낸 삶이 도둑맞은 삶이며, 미리 경계 그어져 있고, 타자의 권력에 예속되어 있으며, 끝내 그 삶에 대해 우리는 거의 아무런 주도권도 갖지 못한다는 감각은 정치이론과 윤리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 감각은 우리 각자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내밀히 스며들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의 문화로서의 우정은, 다른 삶의 양식을 실험할 가능성으로서 실천적 응답이 될 수 있을까?_47쪽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친구를 만나는 일을 다른 모든 일에 앞서는 과제로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가 지나치게 멀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곧 친구를 위해 자신의 리듬과 시간표를 조정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_63쪽
이 책은 본질적으로 통치자들의 사유 속에 각인된 가족주의에 대한 반란이며, 그 가족주의를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해온 사회 전체에 대한 저항이다. 더 나아가 제도 밖의 친밀 관계가 심리적으로 주변화될 때 초래될 수 있는 정치적 위험을 경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_85쪽
삶의 정치는 무엇이 우리를 확장시키고 무엇이 우리를 훼손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다층화하고 무엇이 우리를 단순화하는지, 무엇이 삶을 지지하고 무엇이 삶을 해치는지를 끊임없이 숙고하도록 요구한다._93쪽
관계의 도구적 성격, 더 나아가 이해관계적 성격과 그 관계의 윤리적 성격 사이에 이처럼 선을 긋는 일은, 우정이 창조적 기능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자기만의 존재 이유를 발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간과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우정은, 그것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그 관계 자체를 넘어서는 정치적·정동적·창조적 쟁점들을 동반하고 또한 산출할 때에만 비로소 창조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관계는 이해관계의 맥락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_107쪽
우정은 인정을 넘어선 삶이라는 관념을 그 자체 안에 품고 있다. 우정은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의 실천의 이름이며, 긍정의 정치, 행위와 능동성을 중시하는 니체적 도덕의 형식을 취한다. 이때의 도덕은 인정에 대한 집착과 타인의 판단을 최후의 심판으로 삼아 스스로를 재단하는 태도가 필연적으로 낳는 적대감과 반동성에 맞선다. 그리고 바로 그 판단, 곧 타인의 판단으로 이루어진 최후의 심판으로부터 나는 디디에와 에두아르와 함께, 우리의 관계와 그 관계가 산출하는 것들을 통해, 매 순간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다._2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