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시는 시인의 사상과 정서를 표현하는 문학 장르입니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생각이나 성품이 작품에 오롯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서금복 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동시를 읽다 보면 시인의 심성이 참 맑고 곱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화자 즉 시인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발랄하고 경쾌하고 구김이 없습니다.
사자와 고래가 뽀뽀하고
양 떼와 악어 떼가 어깨동무한다
돌고래와 낙타는 춤을 추고
독수리와 문어가 팔짱을 낀다
바다와 땅으로 갈라져 사느라
만날 수 없던 것들을
뭉게구름이 척척 불러온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늘을 자주 올려다볼수록
구름도 내 마음을 빨리 알아차린다.
- 「텔레파시」 전문
이 시는 매 순간 동심을 잃지 않고, 동심을 꿈꾸며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자와 고래가 뽀뽀하고” “양 떼와 악어 떼가 어깨동무”하고, “돌고래와 낙타가 춤을 추고” “독수리와 문어가 팔짱을 끼”는 일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동심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화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미리 척척 알아서 만들어주는 뭉게구름. 그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난다면 사는 일이 훨씬 신나고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고
급하게 돌아가는 소리 들리면
현관문을 열어 봐
상자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요즘 산타는 굴뚝으로 오지 않아
요즘 산타는 한여름에도 오지
산타를 봤냐고?
아직……
요즘 산타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거든
그래도 보고 싶다면
얼른 베란다로 가서 내려다봐
누군가 땀을 닦으며
택배차에 오르는 뒷모습이 보일 거야.
- 「여름에도 산타는 온다」 전문
표제작인 이 시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의 존재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굴뚝으로 들어와 착한 아이들의 양말 속에 선물을 넣고 간다는 흰 수염에 빨간 옷을 입은 할아버지. 어릴 적부터 애타게 기다렸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상 속의 할아버지. 화자는 그런 산타에 대해 “요즘 산타는 굴뚝으로 오지 않아/요즘 산타는 한여름에도 오지”라고 말하며, “그래도 보고 싶다면/얼른 베란다로 가서 내려다봐”라고 말합니다. 그곳엔 한여름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집마다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 아저씨가 있습니다. “요즘 산타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거든”에서처럼 산타와 택배 아저씨를 한 자리에 나란히 놓아 바쁘게 살아가는 택배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 시인의 말
동시 외에 시와 수필을 쓰는 내가 문학 행사장에 가서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지요. “동심이 문학의 기본입니다.” “동심이란 참된 마음이지요. 그래서 동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동문학가들이 부럽습니다.” 그럴 때마다 온전히 ‘참된 마음’을 갖지 못하는 부끄러움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동시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자연과 물질문명, 사랑과 미움, 의지와 게으름이 어우러져 있는 동시의 숲을 어른과 어린이가 거닐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잡아준다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는 동시 산타가 여러분에게 시 읽는 즐거움을 전해줄 거라 믿습니다.
2026년 봄
서금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