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을 보면 ‘당랑거철’하는 자들이 많다. 모두 깨어 있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을 무시하는 자들이다. 예로부터 백성은 무던히 잘 참는다. 하지만 그 인내의 임계점이 무너지면 지체 없이 권력을 뒤엎고 권력자를 내쫓는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미 몇 차례나 일어난 일이다. 빛의 혁명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엄청난 용기와 성숙한 시민의식을 목격하고도 여전히 ‘당랑거철’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못난 정치꾼들이 적지 않다. 수천만 시민들이 끌고 미는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 정신 차려라! 정치는 너희들이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깨어 있는 집단지성의 힘이 정치를 이끌고 간다. 정신 차려라, 눈멀고 귀먹은 어리석은 자들아!
- 07 〈당랑거철(螳螂拒轍)-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 중에서
*
지식을 뽐내는 데에도 종류가 있고, 차원이 있다. 어설프게 알면 뽐내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썼다면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고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더 그래야 한다. 되지도 않는 지식을 어설프게 뽐낸다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라도 알리고 싶어 하는 유치한 행동에 불과하다.
이번 소동은 비단 연예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소신 없고 실력 없는 정치가들이 줄을 서 있다. 시민들의 의식 수준은 저만치 가 있는데, 누구보다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지지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자들의 수준은 한참 멀어 보인다.
-12 〈불의필망(不義必亡)과 토붕와해(土崩瓦解) -어설픈 문자 놀음에 놀아나는 세태〉 중에서
*
“기생도 늘그막에 남편을 따르면 젊어서의 분 냄새 사라져 버리고, 열녀(烈女)도 머리 희어 정조를 잃으면 반평생의 절개가 수포로 돌아간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람을 볼 때에는 그 늘그막을 보라’고 했거니와, 참으로 명언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말인가! 오늘날 늘그막에 그것도 스스로 욕을 보이고 욕을 먹는 수많은 인간, 특히 사회적으로 지도자급에 있는 인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조지훈 선생도 〈지조론〉에서 《채근담》의 ‘차라리 한때의 적막함을 받들지언정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말라’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자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채근담》에 나오는 지조의 중요성을 비롯하여 사람을 보는 지혜와 관련한 명구들 몇 개를 인용해본다.
“도덕(道德)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한때만 적막할 뿐이나, 권세에 의지하고 아부하여 사는 사람은 만고(萬古)에 처량하다. 도(道)에 통달한 사람은, 사물 밖의 것을 보고 육체 뒤의 몸을 생각한다. 차라리 한때의 적막함을 받들지언정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말라.”
-26. 〈지간후반절(只看後半截)-인생 후반부를 봐라〉 중에서
*
“무릇 이 여덟 가지 ‘팔간’은 신하가 간사한 짓을 할 때 사용하는 술책이다. 군주는 이로 인해 간사한 신하의 협박을 받거나 권세를 잃을 것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중략) 군주가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실제로 나라를 잃은 경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군주가 권세를 장악하지 못해 간사한 신하들이 외세를 업고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나라를 잃은 경우라 할 수 있다. 대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지만 요구를 들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멸망을 재촉할 수도 있으니, 이때는 반대로 거부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간사한 자들은 자신의 군주가 대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밖으로 제후에게 국익을 팔지 않을 것이며, 대국의 제후 역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므로 군주는 간사한 자들에게 속지 않게 된다.”
시대착오적인 자들이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자들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며,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이런 자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불쌍한 우중(愚衆)들이 많기 때문이다. 경계해야 하고, 법에 걸리면 가차 없이 처단해야 한다.
-29. 〈팔간(八姦)과 사방(四方)-외세에 구걸하는 매국노들〉 중에서
*
우리 사회 정치가나 고위 공직자들의 처신을 보면 ‘결자해지’와 거꾸로 가는 자들이 많다. 일을 꼬이게 만들고 심지어 망쳐놓고도 처벌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구질구질한 변명으로 일관한다. 일을 푸는, 즉 설거지나 뒤치다꺼리는 늘 시민들 몫이다. 정치는 정치가가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국민이 한다는 말도 잘 새겨보면 정치가가 어질러 놓은 일을 결국은 시민들이 수습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결자해지’는 책임(責任)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성어이다. 책임이란 떠안아야 할 임무와 일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맡긴 일(任)에 대한 문책(問責)’이 본래의 뜻이란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공직자를 비롯한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들이 누구의 지지로, 누구의 세금으로 그 자리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그 처신이 그릇되지 않는다. 나의 권력과 부, 그리고 명성이 어디에서 나왔으며, 누구로부터 나오는가를 아는 공인이라야 오래 명예를 지킬 것이며, 나아가 나라와 국민들에게 혜택을 드릴 수 있다
-33.〈결자해지(結者解之)-맺은 놈이 풀지〉 중에서
*
사마천이 말한 여섯 가지 불치병은 아래와 같다.
1 교만하여 도리를 무시하는 불치병이다.
2 몸(건강)은 생각 않고 재물만 중요하게 여기는 불치병이다.
3 먹고 입는 것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4 음양이 오장과 함께 뒤섞여 기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5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6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불치병이다.
이런 것들 중 하나라도 있으면 병은 좀처럼 낫기 어렵다.
편작은 환후에게 중병의 기미가 보이니 미연에 예방할 것을 주문했지만, 환후는 이를 일축했다. 사마천 역시 병의 징후를 예견하면 병도 고치고 몸도 구할 수 있다며 편작의 의술이 갖는 의미를 요령 있게 설명하면서, 인간에게 나타나는 여섯 가지 불치병을 거론하고 있다.
1 ‘교만하여 도리를 무시하는’ 불치병은 다분히 도덕적인 냄새가 나지만 정말 못 말리는 불치병임에는 틀림없다. 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아 걱정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이 병에 걸린 자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4 ‘음양이 오장과 함께 뒤섞여 기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불치병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울화병이나 정신병을 말한다.
특히 2 ‘몸(건강)은 생각 않고 재물만 중요하게 여기는’ 불치병과 6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못하는’ 불치병 대목은 고스란히 지난 정권의 권력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신랄한 풍자로 들린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이 여섯 가지 불치병 중 하나라도 있으면 병을 고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자신의 심신에 병이 생겼다는 조짐을 느끼면 심신을 편하게 하고 자신의 언행을 차분히 되돌아보며 좋은 의사를 찾아 상담하면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요지다.
-37. 〈기사회생(起死回生) -예방하지 못할 병 없고, 예견하지 못할 재난 없다.〉 중에서
*
우리 사회에서 ‘동문서답’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쓰인다. 그 주범은 정치인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처신이다. 특히 지적이나 질책을 피하기 위한 주요한 꼼수로 모르는 척 ‘동문서답’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동문서답’에 능숙한 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런 공통점들이 있다.
첫째, 자신이 없는 자들이다. 자신이 없으니 질문의 핵심을 피해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둘째, 실력이 없는 자들이다. 실력이 없으니 자신도 없다.
셋째, 실력을 기를 노력(공부)도 하지 않는 자들이다.
넷째, 입만 살아 있는 자들이다. 말발로 적당히 땜질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동문서답’에 능숙한 자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시치미’를 잘 뗀다. ‘시치미’란 길들여진 사냥용 매의 꽁지 쪽에 단 꼬리표를 말한다. 비유하자면 매의 신분증이다. 거기에는 매의 이름・종류・나이와 주인 이름 등이 적혀 있다. 그런데 ‘시치미를 떼고’ 매를 훔치는 자들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시치미를 보면 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어 주인을 찾아 줄 수 있는데 나쁜 마음을 먹고 시치미를 떼어내고 자기가 차지한 것이다. 말하자면 매 도둑놈이다. ‘시치미를 뚝 잘 떼는’ 자들을 잘 살펴야 한다.
-39.〈동문서답(東問西答)과 시치미-실력(實力)도 자신(自信)도 없는 자들의 상투(常套) 수법〉 중에서
*
공융의 딸이 남긴 ‘새집이 부서졌는데 알이 깨지지 않겠는가’라는 말에서 ‘소훼난파’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훗날 이 사자성어는 조직이나 집단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일곱 살 난 공융의 딸은 아버지 못지않게, 아니 아버지보다 더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지금 우리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그건 그렇고, 우리 검찰과 검사들은 어떤가? 선량한 국민을 범죄로부터 지켜 걱정 없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봉사해야 할 검찰이란 조직을 완전히 타락한 정치집단으로 만들고, 결국은 국민들의 지탄 속에 해체될 운명을 앞두고도 반성은커녕 여전히 거짓과 술수로 버티는 자들 아닌가?
‘소훼난파’는 불가피하다. 둥지도 알도 통째로 들어내서 시궁창에 처박든지 완전히 태워버려야 한다. 공융의 딸이 말한 ‘소훼난파’는 조조와 그 간신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뒤따르는 의연함과 처연함이지만, 우리 검찰의 ‘소훼난파’는 왜 이리도 구질구질할까? 개운치 않고 찝찝하다. 왜? 일곱 살 딸처럼 의연하게 당당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당은 그만두더라도 최소한 자신들의 운명을 말없이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찌질한 이들이 바로 수십 년 무소불위의 칼을 휘둘러 온 검찰의 진짜 정체다. 그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둥지가 부서지니 알들이 여기저기서 깨지면서 난리를 피운다. ‘소훼난파’다.
역사의 심판은 더디고 때로는 건너뛰기도 하지만 절대 잊지 않고 있다가 반드시 실행에 옮긴다. 역사의 법칙이고, 역사의 회복력이다. 역사를 두려워해야 하는 까닭이다.
-49. 〈소훼난파(巢毁卵破) -스스로 조직을 망가뜨린 정치 검사들〉 중에서
*
‘곡학아세’는 ‘배운 것을 나쁜 쪽으로 돌려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평소의 자기 신조나, 소신・철학 등을 굽혀 세상(시류・권력・권력자)에 아첨함을 말한다. 자신이 배운 전문지식이나 학벌 따위를 미끼 삼아 권력과 권력자에 아부하고 꼬리를 치는 출세지상주의 사이비 지식인들에 대한 경고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수천 년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 우리 사회, 특히 언론과 지식인 사회에서 다반사(茶飯事)로 벌어지고 있다. 그 현상이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되어 있던 왕조 체제보다 더 심각한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깝고 안쓰럽다.
‘곡학아세’하는 사이비 지식인을 ‘언간’ 이야기에 넣어 소개한 까닭은 ‘언간’과 이런 지식인, 즉 배운 간신 ‘학간’이 끈끈하게 달라붙어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간행 수법인 ‘곡학아세’가 서로 판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거듭 이야기되겠지만 우리 사회 신종 간신 부류들은 따로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존재가 아니라 거의 다 둘 이상 복수로 복잡하게 결탁되어 있는 ‘카르텔’이다. 필자는 이를 ‘사이비 엘리트 간신 카르텔’로 부른다. 이 카르텔이 우리 사회, 나라 전체를 갉아먹고 있는 실정이다. 간신현상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고, 그 중간 고리로 이쪽저쪽 여기저기를 오가며 국민을 이간질하는 간신, 바로 ‘언간’이 있다. ‘언간’이 문제다.
- 66. 〈곡학아세(曲學阿世) -언론과 지식인 타락의 출발점〉 중에서
*
‘진화타겁’은 일종의 모략으로, ‘남의 위기에 편승하여’,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부도덕한 면이 있어 정상적인 인간관계 내지 국가나 사회단체 간의 관계에서는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쌍방이 이익이란 점에서 근본적으로 영원히 조화할 수 없는 모순에 놓여 있을 때는 확실히 활용한 예가 적지 않다. 특히 간신들은 언제든지 ‘진화타겁’ 수법을 사용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간신들과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는 내 쪽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진화타겁’ 역시 그중 하나인데, 대개는 ‘이간책’을 비롯한 다른 수법들을 함께 구사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단,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며칠 사이 우리 사회를 달군 기사가 둘 있었다. 하나는 재벌가 자식의 대학입시 성적에 관한 낯 뜨거운 미담 일색(?)의 기사들이었고, 또 하나는 30년 전 학폭의 가해자였던 영화배우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었다. 둘 다 언간들의 노골적인 ‘관음증(觀淫症, voyeurism)’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들이었다. 그런데 언간들의 이런 짓거리가 종래 ‘불난 틈에 물건 따위를 훔치는’ ‘진화타겁’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했다.
종래에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즉 불이 나면 그 틈에 그 사건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클릭 장사를 하고, 나아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중요한 사건을 덮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두 사례에서 보다시피 최근에 와서는 심지어 ‘불법으로 불씨를 훔쳐다 불을 지르고’, 이어 다른 기레기 언간들이 그 불에다 기름을 끼얹는 식으로 일을 말도 안 되게 키워 다른 이슈를 덮고 클릭 장사를 하는 사악한 방향으로 악성 진화하고 있다.
‘진화타겁’은 남이 지른 불을 틈타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짓거리는 대놓고 자기들이 불을 지르고, 그 불에다 마구 기름을 부어 활활 타오르게 한 다음, 불순한 의도와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간’들에 대한 주의와 경계 및 징벌적 손해배상 등 단호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여실히 보여주었다. ‘진화타겁’이란 사자성어를 빌려 이런 짓거리를 표현하자면 ‘방화타겁’이라 하겠다. 기레기 언간들이 급기야 스스로 불을 지르는 방화범들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78. 〈‘진화타겁(趁火打劫)’에서 ‘방화타겁(放火打劫)’으로 -암덩이가 된 언간(言奸)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