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은 자동기계를 통해 역사적 유물론을 조종하는 실체는 신학이어야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 준다. 신학이 결합된 역사적 유물론은 “현실을 제대로 논평”할 수 있으며 “현실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_38쪽
벤야민은 침묵하고 있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역사를 회상하고 다시 일깨우길 바라고 있다. 벤야민은 과거의 희생자들을 역사적으로 ‘회상Eingedenken’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벤야민은 “과거 세대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있는 셈”이며, “우리는 이 지상에서 기다렸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 그동안의 역사가 침묵해 버린 목소리들의 메아리였다면 이제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 목소리를 회상하고 깨울 수 있는, 이 지상에서 기다렸던 사람들인 셈이다. _52~53쪽
시간 속에서 역사의 바람은 필연적이고 절대적으로 불어온다. 그러할 때, 우리는 돛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_54쪽
이것은 신 앞에 선 최후의 심판날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과거에 일어난 그 어떤 것도 역사에서 상실되어서는 안 된다는 진리”가 가능해진다는 메시아니즘적인 시간 개념인 것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는 연대기 기술자들이 말하는 그러한 진리는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_67쪽
때때로 과거는 우리의 이성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감각 안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무의지적인 기억’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이 과거와 섬광처럼 만나 어떤 이미지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_85쪽
벤야민에게 있어서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다는 것을 뜻한다”. _89쪽
과거의 승리자들이 남긴 유물에만 감정이입을 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그 뒤에 짓밟힌 패배자들의 목소리를 망각하게 된다. 결국 이 슬픔의 실체는, 현재의 긴급한 과제를 외면한 채 박제된 과거 속에 주저앉아 버린 마음의 나태함Acedia인 것이다. _102쪽
인류는 과학, 기술, 경제 등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하여 진보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여 우리의 사유가 축소되고, 오히려 비합리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것을 인류의 역사는 보여 주고 있다. _142쪽
역사는 재구성이 아니라 새로 ‘구성’하는 대상이다. 이때 역사의 구성은 연대기적 역사 서술의 관점에서 보는 것처럼 균질하고 공허한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시간으로 충만된 시간”이다. 즉, 지금시간에서 과거를 만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_180쪽
역사적 유물론자가 바라보는 역사는 견고하고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시간”에서 바라본 새로 구성된 역사이다. 이러한 변증법은 현재의 관점에서 정지했을 때, 그리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정지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_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