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소스의 적화통일赤化統一 시도는 이후 벌어질 소스의 흑역사黑歷史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었다. 초저녁 나절의 노을처럼 붉은 소스가 순백의 하얀 소스를 탕수육 세계에서 퇴출시킬 무렵 갑자기 엉뚱하게도 거무튀튀한 소스가 등장했다. 나는 처음 이 소스를 봤을 때 주방장이 실수로 간장과 녹말물을 쏟은 줄 알았다. (16쪽)
당시 불교계는 안팎의 이런저런 이슈로 많이 시끄러웠다. 국민들은 “자꾸 속세에 들락거리지 말고 불자면 불자답게 산문에 틀어박혀 수행에 힘쓰라.”고 요구했다. 그런 비난 탓에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했는데, 수행 수준이 높은 고승이 한낱 음식 냄새에 홀려 담을 뛰어넘었다는 광고 문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결국 신라호텔의 최고 경영진이 사죄를 하고, 신문에 공식적으로 사과 광고를 내고 나서야 소란은 일단락되었다. (82쪽)
탕수육은 고기에 반죽을 묻혀 튀긴 후 양념을 한 요리다. 튀김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삭함이다. 그런데 튀김의 바삭거림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은 바로 수분이다. 물기가 묻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튀김은 순식간에 눅눅해져 가장 대표적인 맛 하나를 잃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제법 먼 거리로 탕수육을 배달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자 고기튀김과 수분을 머금은 소스를 분리해 포장하는 방법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147~148쪽)
하지만 그 차이다오를 버리는 화교들이 많아졌다. 차이다오를 손에 쥐고 중화요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고되어도 너무 고되어서, 본인은 가족을 위해 참고 해냈지만 ‘어떻게 해서든 내 자식만큼은 이 일을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화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226쪽)
일본에 살던 화교들은 상당수가 푸젠성과 광둥성 출신이었다. 이로써 함경남도 원산에서 전라남도 목포까지 이어지는 선을 그어 왼편을 ‘인천을 중심으로 한 화교사회’, 오른쪽을 ‘부산을 중심으로 한 화교사회’라고 할 때, 왼편의 화교사회가 주로 산둥성 출신에 의해 형성되었다면 오른편의 화교사회는 광둥성, 푸젠성 출신이 주축이 되었다. 이는 두 지역의 중화요리가 같은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이유 중 하나다. (250쪽)
“소스를 끼얹으면 잉어튀김이 눅눅해지거나 모양이 허물어지지 않을까요?” 지극히 ‘의도가 다분한’ 질문에 덩 사부는 ‘그게 무슨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소스까지 얹어야 제대로 된 탕추리위(탕초리어)이며, 튀김은 다 먹을 때까지 눅눅해지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당연하다. 때문에 ‘부먹찍먹 논쟁’ 따위는 의미가 없는 다툼, 아니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되는 다툼이라고 생각한다. (339쪽)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중요한 역할을 한 음식이 대부분 그러하듯, 탕수육 혹은 탕수육과 유사한 음식들 역시 전파될 때마다 지역과 지역민에 동화되어 해당 지역의 산물과 생활상, 식습관과 정서 등을 자신의 맛과 향에 그대로 묻혀놓았다. 사람들에 맞게 진화한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통조림 과일이 들어간 소스의’ 탕수육, ‘소스를 따로 내서 찍먹을 하도록 하는’ 탕수육을 신경질적으로 배척해온 내 고집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