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에서
유언장이 공개되자, 유언장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듯 기쁨만큼이나 크나큰 낙심을 안겼답니다. 물론 조카로부터 영지를 빼앗을 정도로 노신사가 부당하거나 배은망덕했던 건 아니에요―다만 영지의 상속에 따르는 여러 조건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상속분의 가치가 절반은 뚝 잘려 나갔을 따름이에요. 헨리 대시우드 씨는 본인이나 아들보다도 아내와 딸들을 위해서 영지를 물려받기를 바랐었거든요―하지만 영지는 그의 아들과, 지금 네 살인 그 아들의 아들 몫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생계 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가족들에게 그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요. 영지를 분할해 나눠 줄 수도 없고, 귀한 숲을 처분할 수도 없었지요. 영지 전체가 통째로, 부모와 함께 놀랜드에 간혹 놀러 올 때마다 귀염을 떨어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어린아이의 몫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거든요. 두세 살짜리치고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매력, 말하자면 혀 짧은 소리 내기, 제 맘대로 하겠다고 생떼 쓰기, 온갖 교활한 잔꾀 부리기, 엄청나게 시끄럽게 울어대기 등등의 애교가, 수년에 걸쳐 질부와 조카손녀들이 바친 세심한 보살핌과 배려의 가치를 훌쩍 상회해버린 거예요.
--11~12쪽
존 대시우드 부인은 남편이 동생들에게 베풀고자 하는 친절을 전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소중한 아들 몫에서 삼천 파운드나 빼내버린다면 아이가 얼마나 끔찍할 정도로 궁핍해지겠어요. 부인은 남편에게 제발 다시 생각해보라고 졸랐습니다. 친자식, 그것도 외동아들에게서 그런 거액을 빼앗고는 나중에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냐고요. 대시우드 자매들이 그 재산을 누릴 권리가 대체 어디 있느냐고요. 겨우 이복동생들일 뿐인데, 그건 부인의 기준에서는 친척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거액을 너그럽게 베풀 수가 있느냐고요. 잘 알려진 바대로, 엄마가 다른 아이들끼리는 아무 정도 없는 사이가 아니냐고요. 그런데 이복동생들한테 돈을 다 줘버리고 자기 신세도, 우리 불쌍한 아가 해리의 신세도 망치려 하는 거냐고요.
--18쪽
“세상에!” 메리앤이 탄성을 질렀어요. “그이가 있어―저기 있어―아! 왜 나를 보지 않지? 왜 그이한테 말을 걸면 안 돼?” “제발, 제발 평정심을 잃지 마.” 엘리너가 외쳤어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한테 네가 느끼는 감정을 훤히 보여주지 말고.”
--272쪽
“아유, 나쁜 바람 어쩌고 하는 게 다 맞는 말이지 뭐예요. 브랜던 대령한테는 훨씬 잘된 일이니까요. 드디어 그이가 미스 메리앤을 갖게 되겠어요. 암요, 그렇고말고요. 두고 보세요. 한여름이 되기 전에 둘이 결혼할걸요. 아유, 세상에! 이 소식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얼마나 활짝 웃을까! 오늘 밤에 대령이 오면 좋겠는데요. 동생한테도 어느 모로 보나 훨씬 좋은 혼사가 될 거예요. 부채도 반환금도 없고 일 년에 이천 파운드 수입이라니!―물론 그 어린 혼외자만 제외하고요. 아유, 그 애를 깜박했네. 하지만 도제 수업을 받게 하면 돈도 얼마 안 들 테고, 그럼 그게 뭐 큰일이겠어요?”
--303쪽
“그러겠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작년 10월 제가 바턴을 떠날 때―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해를 못 하시겠군요―훨씬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습니다. 제가 이야기꾼으로는 영 서투릅니다, 미스 대시우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저에 대해 짧게 설명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정말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깊이 한숨을 쉬며, “이런 주제로는 중언부언 말을 많이 하고 싶을 리도 없지요.”
--316쪽
“네 언니가, 맘고생이 끔찍하게 심했어. 페라스 부인도 그렇고―한마디로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하게 괴로운 장면이었지―하지만 우리 중 아무도 크게 휩쓸리지 않고 풍파를 견뎌내길 바라고 있다. 가엾은 패니! 어제 하루 종일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켰지 뭐냐. 하지만 너희한테 너무 큰 걱정을 안길 생각은 없다. 도너번 선생 말로는 크게 걱정할 중병은 아니라고 하거든. 체질도 건강하고 의지야 못 해낼 게 없이 굳은 사람이니까. 패니는 그 모든 일을, 천사처럼 굳건하게 견뎌냈단다! 이제 다시는 아무도 좋게 평가하지 않겠대. 그렇게 사기를 당했으니 놀랄 일도 아니잖니!―그리 친절을 베풀고 그렇게 믿어줬는데 돌아온 건 그런 배은망덕이니 말이야! 그 아가씨들을 집에 오라고 부른 건 너희 새언니 심성이 워낙 후해서 그런 건데. 그냥 좀 신경을 써줘도 좋을, 무해하고 행실 바른 아가씨들이라 벗 삼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건데 말이야. 안 그랬다면 우리 둘 다 저기 계시는 친절한 너희 친구분께서 따님을 돌보러 가신 사이 너와 메리앤을 불러 같이 지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거든! 근데 이런 식으로 보답을 받다니! 우리 가엾은 패니가 그 사랑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하더라고. ‘그 자매 말고 당신네 동생들이나 초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드네요.’”
여기서 그는 말을 끊고 감사의 인사를 기다렸지요. 기어이 인사를 받은 다음에야 다시 말하기 시작했어요.
--405~4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