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바빠서 글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러 나라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누비고 짓다 보니 하나의 흐름으로 묶이는 걸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시간을 조각조각 모으며 제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 갈 시간의 누비입니다.(프롤로그, 9쪽)
기분을 고쳐 보고 싶었어요. 그럴 때면 전 뭔가를 만듭니다. 먼저, 바흐의 〈미뉴에트〉를 틀어 공간을 음악으로 채웁니다. 냉장고를 뒤적거려 파를 꺼내요. 이런, 일주일 정도 요리를 안 했더니 시들어 있습니다. 시든 파의 누런 부분을 다 잘라내고 깨끗하게 씻습니다. 볼을 꺼내 달걀을 깨뜨려 젓습니다. 탁탁탁 달걀 젓
는 소리, 파를 송송송 써는 소리가 바흐의 미뉴에트와 어울려 조금 흥미로운 기분이 됩니다. 이런 기분, 오늘 하루 종일 느끼지 못했어요. 어디에 넣어도 맛있는 ‘노도구로 시오’를 참 좋아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초록 상자에서 말돈 소금을 꺼내 손가락으로 비벼 넣었습니다. 얇게 썬 파도 넣고 노릇노릇 맛있게 달걀말이를 합니다. 된장국도 보글보글 끓여 주었어요.(바흐와 함께 된장찌개를, 48쪽)
갓 지은 밥, 공기에 한 숟갈이라도 좀 더 얹어 다독이면서 예쁘게 담고, 국이나 찌개를 떠도 좋은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담아 주려고 하죠. 생선을 구워도 더 노릇하니 맛나게 굽겠다고 불 옆에 붙어서 타이밍 맞추려 노력하고 나물도 깨끗하게 씻어 집 양념 맛, 손맛 넣어 정성스레 무치고요. 고소한 참기름도 아끼지 않고 조르륵 넣어 봅니다.(집밥의 힘, 58쪽)
모두 손질을 끝내서 말끔히 단장한 달래를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지런히 손가락에 감아 모양을 잡고 중간에 새우를 넣어 예쁘게 부칩니다. 위에 빨간 고추를 얹으니 시간 걸렸던 거 다 잊히고 완성된 새우 달래전이 그저 곱기만 해요. 남은 달래는 송송 썰어 달래장을 만듭니다. 이 달래장만 있으면 밥을 비벼 먹어도 좋고, 곱창 김을 싸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히죠. 정성스럽게 유리병에 담고 나면 모든 게 그냥 너무 뿌듯해집니다. 밖은 아직 겨울이어도 제 마음엔 이미 봄이 찾아왔어요.(봄이 오는 속삭임, 냉이와 달래, 94쪽)
장바구니 안에는 신선한 채소들이 가득합니다. 채소를 씻을 때부터 좋은 에너지가 전해져 옵니다. 붉은 토마토, 초록빛 브로콜리, 셀러리 듬뿍, 양파, 양배추, 버섯 등 있는 채소를 이것저것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다 넣어 줍니다. 약간 큰 냄비에 채소가 잠길 정도만 물을 부어서 스톡을 넣고 끓입니다. 특별한 기술은 없어요. 자연에서 자란 채소들이 뭉근히 익으면서 건강하고 깊은 맛을 선물해 줍니다. 페페론치노 대신 한창 나오고 있는 청양고추를 넣습니다. 채소에서 우러나온 감칠맛 있는 육수와 칼칼한 청양고추가 어우러져 맛이 제법 근사합니다. 소금, 후추로 간 맞추고 좋아하는 치즈를 듬뿍 넣어서 먹으면 맛도 좋고 몸이 힐링되면서 해독되는 느낌입니다.(비 오는 날 위로의 야채수프, 108쪽)
초여름 단백질을 맛있게 섭취할 수 있는 닭가슴살 장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 두면 반찬 걱정이 없습니다. 밥 한 그릇이 뚝딱입니다. 깻잎이나 김에 싸 먹어도 좋고 밥에 비벼 먹어도 좋습니다. 국수 고명으로 넣어도 맛있습니다. 엄마가 반찬 담을 때 사용하시던 수국 그림이 있는 그릇에 담아 봤습니다.(수국이 핀 날 반찬 만들기, 112쪽)
뭐든지 타이밍이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남들과 내가 다 같은 시간 속에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개가 20대에 집을 사고, 재산을 많이 모았다고 한들 ‘내 시간’과는 다릅니다. 요리도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불을 줄여야 할 때 줄이고 세게 해야 할 때 강하게 해야 하고, 튀김도 기름 온도가 알맞을 때 넣어야 바삭하지요. 김치도 정성껏 만들어 적당한 온도에서 시간을 가지고 잘 숙성되었을 때 가장 훌륭한 맛을 냅니다. ‘나만의 조리법’ ‘나만의 레시피’로 자신의 삶을 맛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인생의 맛은 내가 결정하는 겁니다.(내 인생의 레시피, 199쪽)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 20분 정도는 꼭,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으로 정해 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운동, 바느질, 책 읽기, 음악 듣기, 그림 그리기…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그 20분 시간이 긴 세월 쌓이면 당신에게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주부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작은 꿈들을 응원합니다.(주부의 하루 20분, 211쪽)
피클링 스파이스라는 멋진 향신료 믹스를 알게 된 건 오래전 어느 날이었어요. 코리앤더, 딜 시드, 겨자씨, 정향, 후추 등이 잘 섞여 있는 피클링 스파이스. (…) 각기 다른 향을 가지고 있지만 피클링 스파이스는 사이좋게 어우러져 피클에 화려하게 맛과 생기를 더해 줍니다. 월계수 잎과 피클링 스파이스가 피클 주스 안에서 동동 떠서 무도회를 하듯이 춤을 춥니다. 음악이 끝나고 모두 체에 거르면 맛있는 향기만 남아서 계절채소와 만납니다. 형태는 없지만 그 향이 오래 머뭅니다. 저도 피클링 스파이스처럼 나만의 독특한 향과 색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향으로 살며, 삶 속에 어떤 향기를 남기고 있을까요?(리카 피클, 212쪽)
곧 설도 다가옵니다. 나라가 달라도 복을 바라는 마음은 같은 것 같아요. “나쁜 기운들은 모두 떠나가고, 좋은 기운만 가득한 계절이 되기를!” 오늘도 작지만 내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행복이 찾아올 거라 믿으며 조용히 마음을 다독여 봅니다.(고고로 바카리, 2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