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꺼내기 힘든 감정들을
그림으로 내보일 수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잘 산다는 건 환하고 반짝이는 순간들로만 가득 차는 건 아닐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 한차연 작가가 담백하고 쓸쓸하게 담아낸,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는 이유에 대하여.
★도서 소개
한차연 작가가 전하는 첫 그림 에세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오랜 시간 자신의 그림 세계를 확장하고 골똘히 탐구해온 한차연 작가의 첫 드로잉 에세이를 선보인다. 담담한 듯, 거칠고 대담하게 그린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슬픔이 밀려온다. 그렇지만 또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툭툭 던져서 그린 선 속에는 그가 그동안 묻어둔, 간절히 전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가 있다. 그 마음 하나를, 홀로 그늘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건네주기 위해 틈틈이 써온 글을 모으고 그림들을 모아 엮었다.
드로잉 : 나의 공허를 마주하는 순간
회화를 비롯해 도자기까지, 한차연 작가는 자신의 손이 이끄는 대로 창작의 세계를 넓혀왔다. 종이에 새겨진 선에서는 단순한 듯, 깊은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도자에 새긴 것들은 그가 흙으로 표현한 또다른 그림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단단한 흙을 오래 만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는다. 도자기에는 어딘가에 두고 온 마음이나, 누군가를 기다리며 만든 그릇과 컵들이 있기도 하다. 애쓰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그녀는 자신의 세계를 그려왔다. 그림들은 그동안 전시회를 통해 공개되기도 하고, 또 어느 책의 표지로 쓰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동안 차곡차곡 그려온 그림들을 모으고, 조각조각 써왔던 글들을 이번에 함께 엮으며 지난 시간들을 정리해 본다.
드로잉 에세이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잘 기억나지 않는 혹은 잊고 싶은 유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릴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가고 싶었던 미술학원에 가지 못한 일, 어깨 너머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친구들이 그려달라는 걸 그리던, 어린 그의 눈빛이 들어 있다. 미대에 갈 집안 형편이 아니었지만 보내만 주면 어떻게든 하겠다고 고집을 피운 일, 늘 알바를 하느라 학교를 오래 다닌 것, 쉴 틈 없이 일을 하다가 서른도 안 되어 번아웃이 온 이야기, 엄마의 암 투병을 곁에서 지켜보며, 사는 일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편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손가락에 박힌 가시 같은 이야기가 1부에 담겨 있다. 2부에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누군가의 응원에 기대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음 좋겠다고 늘 생각하는 마음, 매니저가 되어주겠다고 말하는 그의 오랜 친구 이야기가 담겨 있다. 3부와 4부에는 한차연 작가의 그림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여백을 주어, 그림이 돋보이게 지면에 배치했다. 거친 듯 쓱쓱 그려나간 그림들 사이로 떠오른 단상들이 3부와 4부에 함께한다. 다른 드로잉북과 달리 이 책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를 많이 담았다. 그동안 그린 그림들의 소재가 된 이야기,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담긴 내면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어디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던 한차연 작가의 사적인 고백들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치고 가난한 마음들을 모아 그림 안에 가두다
조각조각의 기억이 모여, 조각난 시간들이 모여 결국은 나를 이룬다. 잊고 싶었던 기억들도, 기쁘고 벅차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기억들도 모두 내 것이다. 한 조각을 잊어버리면 영영 그곳은 빈 곳이 된다. 여기에 실린 원고들은 그런 조각들을 모두 찾아 그러모은 퍼즐이다. 못나고 슬픈 조각도, 아름다운 조각도 모두 여기에 실려 있다. 글과 그림과 도자의 경계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차차 넓혀가는 그의 길을 응원하고 싶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이 외로운 그늘에 서 있는 독자에게 건네는 다정한 손이 될 수 있기를.
“나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어서 그림을 그리나 보다. 그림으로 내가 느낀 것을 완곡히, 둥글게 전달한다. 어쩌면 닿지 못하는 말일 테지만 그런 것이 또 나의 말과 닮았다.
나를 통과한 순간들과 선명하지 않은 감정을 내 안에 쌓아두지 않고 그려내야만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잘 사는 게 뭘까. 삶의 굽이로 단단해지기도 했으니, 잘 산다는 건 환하고 반짝이는 순간들로만 가득 차는 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