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에 맞추어 옷을 갈아입다!
벽제갈비의 성공전략 키워드
'집념', '추진력', '고집'에서 '문화', '전략', '조직'까지
최상급 한우를 내세운 '벽제갈비'에서 평양냉면과 돼지갈비를 대중화한 '봉피양',
그리고 하이엔드 한식의 정점에 선 '벽제갈비 더청담'에 담긴 경영 분투기
고용 안정이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된 지금, 조기퇴직한 수많은 사람들이 치킨집, 고깃집 등 식당 창업에 뛰어든다. 벽제갈비의 김영환 회장은, 어쩌면 그 1세대일지도 모른다. 그 역시 1980년대의 건설업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후 고깃집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장기화된 불경기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재의 요식업계 종사자들에게 40년 전 창업한 벽제갈비의 사례는 '좋았던 시절의 운 좋은 성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벽제갈비가 지금까지 걸었던 길이 그저 성공과 승승장구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못된 선택과 환경 변화에 의한 시련과 실패에 맞서온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전문 매체 기자에서 기업 취재 작가로 변신해 기업의 성공과 위기, 그리고 경영자의 선택을 깊이 있게 조명해온 저자는 《식당은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신촌 골목 고깃집에서 프리미엄 한식의 상징으로, 벽제갈비 40년 경영 스토리》에서 '유명한 고깃집'에서 '가치를 보여주는 브랜드'가 되기까지, 벽제갈비의 40년사를 정리했다.
시대를 읽다, 가치를 지키다
맛있는 고깃집에서 하이엔드 한식의 정점으로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인간의 집념', '시대정신'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라고 전제한다. 이 키워드들은 벽제갈비의 성공과 시련, 갈등과 도전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벽제갈비는 처음부터 최상급의 쇠고기를 그에 걸맞은 가격으로 파는 고깃집이었다. 벽제갈비를 시작할 당시에는 좋은 고기보다는 물 먹여 중량을 속인 고기가 당연한 듯 유통되는 때였다. 창업자 김영환은 벽제갈비의 차별화 포인트를 '물 안 먹인 고기', '최상급 한우'로 잡고, 전국의 우시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좋은 쇠고기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가격은 그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또한 강남으로의 진출, 고급 돼지갈비와 냉면을 내세운 '봉피양', 전 매장에서 균질한 음식 맛을 보장하기 위한 센트럴키친 설립, 장인의 퍼포먼스를 내세운 '벽제갈비 더청담', 전용 도자기 브랜드 '무나제'까지, 벽제갈비는 시대와 시장의 흐름을 기민하게 읽으며 대응해왔다. 그러나 이 대응의 방향은 명확했다. 그저 '맛있는' 고깃집이었던 벽제갈비의 지향점을 '하이엔드', '파인다이닝'으로 옮겨 잡고, 여기에 걸맞은 품질과 서비스, 인테리어 등을 고민한 결과였다.
한편, 창업 40주년을 맞은 벽제갈비는 다른 많은 가족기업처럼 '승계'라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우리나라 가업승계 기업 중 2대까지 살아남는 비율은 30%, 3대가 되면 14%, 4대는 고작 4%에 그친다고 한다. 벽제갈비 역시 1980년대에 창업한 아버지의 운영 방식과 2020년대 후반을 대비해야 하는 아들의 운영 방식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어 보이는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다. 서로를 고통스럽게 했던 이 갈등은 아들에게 경험이 쌓이고, 아버지가 아들의 판단을 믿고 기다리며 해소되었다.
벽제갈비의 40년 행보, 그리고 창업자인 아버지와 후계자인 아들의 갈등과 화해는 결국 벽제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창업자 가족뿐 아니라 벽제갈비의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과정이었다. 그 방향성은 그저 고품질의 고기를 비싸게 파는 것을 넘어서는, 한국 요식업계의 가장 높은 곳이자 가장 앞선 곳에서 한식 문화의 격을 한 단계 높이고자 하는 집념과 책임감이었다.
직원의 가치를 높여라!
장인 제도와 산학협력 그리고 그릴마스터 대회
요식업계는 이직이 잦은 분야다. 업주 입장에서도 직원 입장에서도 장기근속의 메리트가 그다지 없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벽제갈비는 다르다. 벽제에는 현재 3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이 3명, 2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이 20여 명 포진해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홀 서비스 직원들도 평균 5년 이상 일한 근속자가 대부분이다. 이런 장기근속은 음식의 퀄리티에 걸맞게 직원들의 능력과 자부심도 최고로 만들고자 하는, 창업자에서 후계자로 이어진 경영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김영환 회장은 벽제갈비를 시작할 때부터 최상급 쇠고기를 고르고, 다루고, 조리하는 일의 전문성을 무엇보다 중시해 장인 제도를 확립했다. 각 음식 분야별로 장인을 선정하고 체계적으로 후계자를 양성하도록 한 장인 제도는 벽제갈비와 봉피양 음식의 질과 맛을 이어가고 다점포 경영을 뒷받침하는 핵심 전략이다. 이어, 후계자인 김태현 부회장은 매장의 최전선에서 고기를 굽는 직원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높이고자 '그릴러'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그릴마스터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그릴링의 전문성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 '코리안 바비큐'의 핵심적인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하는 이런 '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은 직원들의 대학 진학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함께 여러 대학과의 산학협력이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인재들을 양성하려는 벽제의 시도는 박사들이 포진한 벽제한우, 직원들의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벽제아카데미 등으로 체계화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 세계 시장으로
벽제갈비의 40년은 세대를 이어 연결되는 리더십과 견고한 조직력, 그리고 이를 통해 전승되는 브랜드 가치의 힘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앞으로 벽제갈비가 향할 곳에 대한 추진력 역시 여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나 벽제갈비가 걸어온 길에서 마주쳤던 시련만큼이나 현재 벽제갈비가 직면한 도전도 만만치 않다. 벽제갈비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최상급 쇠고기'는 더 이상 벽제만의 경쟁력이 아니게 되었고, 해외 시장에 대한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때문에 벽제의 구성원들은 '우리가 이제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한국 요식업계가 처한 현실은 가혹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분야의 패권자가 되기를 꿈꾸는 작은 기업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그리고 어떤 산을 넘어야 할까. 그 산을 먼저 넘어온 벽제갈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