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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정말 올까요?


  • ISBN-13
    979-11-7457-543-2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한국학술정보 / 그늘
  • 정가
    18,8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6-04-15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김혜영
  • 번역
    -
  • 메인주제어
    소설: 일반 및 문학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소설: 일반 및 문학 #한국소설일반 #한국장편소설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청소년소설 #성장문학 #성장소설/가족소설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0 * 200 mm, 376 Page

책소개

고래가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아침도 눈을 떠서 끝내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제주의 수상한 게스트하우스, 〈동백 아래〉에서 펼쳐지는 치유와 회복의 서사!

 

할머니가 죽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 이춘자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열아홉 ‘승리’는 설상가상으로 머물 곳마저 잃은 채 할머니와 함께 보기로 했던 고래를 찾아 제주로 향한다. 절벽 끝에 몰린 소녀는 자신을 지탱해 주던 유일한 존재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버티기보다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다. 비행기 표를 끊고 수상한 게스트하우스 〈동백 아래〉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의 주인장인 ‘정인’과 이상한 스텝 ‘롭샹’을 만나 낯선 사람들과 부딪히며 진정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고래가 정말 올까요?》는 상실과 회복,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극적인 회복이나 치유의 순간을 마주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삶을 대하는 속도처럼 아주 느리게 흔들리고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울 뿐이다. 그건 빠르게 흘러가는 지금의 세상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음가짐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족의 부재로 인해 상처 입고, 목표와 함께 자신을 잃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울고 웃는 이들은 때때로 우리가 상처를 입을지라도 그것이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말과 같지 않음을 알게 한다. 

고래가 정말로 우리에게 올까? 기다리는 시간 속에 무엇이 도착하고 있는지, 아름답고도 반짝이는 김혜영의 세계를 다시 한번 마주할 차례다. 

목차

한승리

고래를 기다려

절망의 끝, 정인

특별한 만남

나마스떼 롭샹

잘 잤냐는 다정한 말

이미현

하영지

동백 아래에 모인 사람들

바람

우리 아이

 

작가의 말

본문인용

할머니는 죽는 순간에도 그렇게 생선과 함께했다. 마지막까지 동태포를 뜨다가 심장이 멎는 순간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심장이 멎으면서도 끝내 칼을 놓지 않았던 할머니가 지키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게 승리 자신이었을까 봐,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너무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다.

-39쪽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늘 고래 이야기를 해 줘.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보고 어떤 사람은 못 보지. 차이점이 뭔지 알아?”

“차이점이 뭔데요?”

승리가 보물찾기라의 숨겨진 표식이라도 찾은 아이처럼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주 간단해. 기다리는 거. 기다리지 않으면 오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66쪽

 

열흘 후 정인은 콜카타의 〈타고르 하우스〉를 방문했다. 타고르가 생전 기거하다가 여든에 생을 마친 곳이다. 현재는 한 대학의 건물로 사용 중이면서 별관을 개조해 그의 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다. 사랑받는 한 작가가 태어나고 숨을 거둘 때까지의 자취가 남아 있는 장소다. 그의 흔적을 한데 모아놓은 듯 전부 관람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림과 작품, 편지, 사진 등의 유물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정인은 절망의 너머에서 아직 찾아오기 망설이는 그 무언가가 분명 희망이었으면 싶었다.

-107쪽 

 

그만큼 세월이 흐르고 보니 피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겪은 일들이 고통인 동시에, 고통은 삶의 의지이기도 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계획대로 건물을 짓고 두 사람을 대신해 마당가에 흰 동백 두 그루를 심었다. 그때까지 공원묘지 납골당에 있던 딸을 데려와 동백 아래 묻었다. 친구도 딸도 잊으려고 할수록 더 그리워지는 것은 의지로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잊으려고만 했지만 생각을 바꾸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오히려 잊지 않으므로 영원히 함께한다고 믿기로 했다. 기억하는 한 누구도 보내지 않았다. 

-134쪽

 

호칭 하나 달라졌지만 천규는 정말 롭샹처럼 살고 싶어졌다. 칸은 어떤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그렇게 드라마 같은 결말을 남기고 떠났다. 누구든 자기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닐까. 그 역시 주어진 역할에 맞게 살다가 죽음이라는 엔딩을 맞아 자기 인생의 브라운관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재생 버튼을 눌러 재방송을 시청하듯 천규는 한 번씩 칸을 떠올렸다.

-163쪽

 

“살면서 내가 가장 후회한 게 뭔지 알아요? 지난 일을 후회하고 자꾸 집착하는 거. 이제 알겠어요. 지나간 어제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이 더 중요해요. 지난 일에는 배팅하지 않아야 하더라고요. 앞으로 올 날에 집중하면 되는 거예요.”

-172쪽

 

넘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탈탈 털고 일어날 힘조차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벌레의 한 걸음만큼씩 앞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새의 깃털이 닿은 만큼의 미세한 온기가 얼어 버렸던 심장을 해빙시키고 있었다.

-299쪽 

서평

끝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시간 속에서 계속되는 것

우리는 가끔 죽음을 끝이라고 말하거나 생각한다. 그러나 남겨진 이에게 가까운 이의 죽음이란 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작에 가깝다. 떠난 사람의 시간이 멈춘 자리에서 남겨진 사람의 시간은 더 복잡하게 얽히고 길어진다. 《고래가 정말 올까요?》에는 이처럼 살아남은 이들의 연장된 시간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의 죽음, 가장 기쁜 날 마주한 부모의 죽음, 먼 타국 땅에서 들려온 딸의 죽음까지…… 이러한 일들을 겪은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한 축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감각과 공포로 인해 외로움의 실체를 맞닥뜨리게 된다. 죽음은 한 사람을 데려가지만 동시에 남겨진 사람이 살아가던 세계 전체의 형태를 바꾼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슬픔의 크기를 유쾌하게, 그리고 치유와 가까운 방식으로 펼쳐 보인다.

애도와 죄책감은 왜 늘 살아남은 이들에게 뒤엉켜 있는지 모르겠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슬퍼하는 그 자체로 그치지 않는다.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그 사람의 삶이 그렇게까지 고단했는지 더 깊이 보지 못했을까, 그런 뒤늦은 질문들을 통해 죄책감 속으로 빠져든다. 열아홉 소녀 ‘승리’는 할머니의 노동과 가난, 몸의 소진, 그리고 끝끝내 쉬지 못하고 모든 행복을 자신의 삶 이후로 미루어 두었던 그 무게를 기억하려 애쓴다. 상실은 사랑의 다른 얼굴이겠으나 그 사랑은 때때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작품은 그 잔인한 진실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정확하고, 더 후련하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사람은 왜 이리도 무력할까. 그런데 그 무력함 속에서도 왜 또 살아가야 할까. 이 작품은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섣부르게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에 일상의 모습으로써 그 질문의 답을 적나라하게 펼쳐 둔다. 그건 어려운 철학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옷감의 촉감, 차가운 방과 따뜻한 이불, 시장의 비린내 같은 것이다. 그 구체적인 감각 속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생활의 자리에서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다시 세상 속으로 접속해 가는 느린 감각, 치유

많은 작품이 대부분 상처를 극복의 대상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상처를 그렇게 쉽고 간단한 것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할머니를 잃은 승리가 제주에 도착한다고 해서 그 슬픔이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 바다를 본다고 해서 아픔이 걷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해서 곧장 다시 살아가고 싶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곧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감정들과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작품은 회복이 얼마나 더디고, 얼마나 우연에 기대며, 얼마나 비논리적으로 찾아오는지를 보여 준다. 때때로 ‘치유’라는 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일에 가깝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 미세한 차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회복을 낭만화하거나 신성시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이 보여 주는 것은 ‘다시 세상에 스며드는 감각’이다. 차려진 밥상 앞에서 배고픔을 느끼는 일, 낯선 침대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일, 바다를 오래 바라보다가 아주 잠깐 마음이 비워지는 순간, 그리고 누군가의 호의가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사소한 감각들은 언뜻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무너진 존재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징후 같은 것이기도 하다. 큰 절망은 종종 언어가 아니라 작은 감각의 회복을 통해 조금씩 느슨해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철학적이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느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밥이 맛있고, 이불이 따뜻하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상냥하게 들리는 순간, 사람은 조금씩 삶에 더 가까워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복이 혼자만의 결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타인의 존재를 통해서만 다시 세계를 믿을 수 있을 때가 있다. 롭샹과 정인, 그리고 〈동백 아래〉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승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대신 곁을 내어 준다. 판단하지 않고, 과장된 위로를 강요하지 않고, 다만 함께 머문다. 회복은 바로 그 머무름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완전히 살릴 수는 없지만 혼자 가라앉지 않게 붙들어 줄 수는 있다는 것. 이 작품이 말하는 연대는 그토록 절제되어 있고 그래서 더욱 깊다. 상실 이후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한 치유가 아니라 다시 사람 곁에 있어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계속 기다리게 만드는 존재를 사랑하는 일

고래는 정말 승리와 이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까? 이러한 기대 속에는 고래를 꼭 봐야겠다는 소망과 고래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체념이 함께 담겨 있다. 여기서 고래는 승리에게 할머니와 함께 품었던 약속의 흔적이자, 할머니가 끝내 이루지 못한 삶의 한 장면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은 죽음 너머로 건네는 승리의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고래를 단순히 희망만으로 두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는 말처럼, 고래는 내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지만 이미 승리의 삶을 움직이고 있다. 계속해서 기다리게 만드는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일, 그 막연하지만 놓을 수 없는 마음이야말로 삶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이유이지 않을까.

‘기다림’이라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 속에서의 기다림은 오히려 가장 조용한 방식의 움직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절망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은 거창한 미래를 그릴 수 없다. 그 대신 아주 작고, 멀고, 불확실한 하나를 붙든다. 내일도 바다에 나가 보기, 오늘은 혹시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 없다고 단정하지 않기. 이런 태도들은 낙관이라기보다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마음이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완전히 믿지는 못해도 완전히 놓아버리지도 않는 상태, 이 소설은 그 연약한 지점을 정확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기다림은 더 이상 멈춤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 준다.

고래가 정말로 오느냐는 물음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다림 속에서 주인공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조금씩 되살아나는가이다. 상실은 한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기다림은 그 위에 시간을 다시 쌓게 만든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사라진 시간 역시 복원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기다림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계속 살아간다. 고래가 정말로 올까? 책 속에서 그 질문의 답과 고래의 흔적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잃은 이후의 삶이란, 잃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잃은 채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가는 일이라는 걸 말이다. 

저자소개

저자 : 김혜영
충남 태안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일본 도쿄와 치 바, 안산, 완주, 대전, 시흥을 거쳐 안양에 살고 있지만 늘 귀촌을 꿈꾼다. 제15회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자가 아닌 작가가 되고, 책이 아닌 작품을 쓰는 일은 지극히 당연해서 의심하거나 고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존재감은 지치지 않고 계속 쓰는 일로 증명해야 한다고 믿는다. 머릿속의 많은 부분이 소설로 채워져 있어 다른 일에는 매우 서투르다.
저서로는 단편집 《아보카도》, 수필집 《철학 한 잔을 마시다》, 《더듬듯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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