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춤법은 문법이 아니다
맞춤법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그 이유를 정확히 짚는다. 맞춤법을 문법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법은 ‘말의 구성 및 운용상의 규칙’으로서 학문과 연구의 영역이고, 맞춤법은 그와 층위가 다른 문제다. 맞춤법이란 단순히 말하면 ‘글자로 언어를 표기하는 법’이다. 한글은 표음 문자이므로 말소리를 글자로 바르게 옮기는 원칙이 필요하고, 그것이 한글 맞춤법이다.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제1항이 바로 그 대원칙이다. 그런데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빛이([비치])’, ‘빛만[빈만]’, ‘빛과[빋꽈]’는 ‘빛’의 발음이 모두 다르지만 ‘빛’이라는 형태소를 그대로 살려 적어야 뜻을 알아볼 수 있다. 이처럼 맞춤법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맞춤법 공부의 진짜 출발점이다.
▶ ‘소리’와 ‘형태’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한글 맞춤법에서 가장 많은 오류가 발생하는 지점은 소리와 표기가 엇갈리는 순간이다. 적지 않은 한국어 사용자가 ‘감기 빨리 낳아’라고 쓰는데, 이는 ‘낫다’와 ‘낳다’는 활용할 때 발음이 같기([나아]) 때문이다. 두 단어 모두 표준어이지만 소리대로만 적고 어법에 맞도록 하지 않으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저지르게 되다. 저자는 된소리, 구개음화, 두음 법칙, 모음 조화 등을 조항 하나하나 따라가며 우리말에서 소리가 표기와 달라지는 원리를 설명한다. ‘ㄷ’, ‘ㅌ’ 받침이 ‘-이(-)’ ‘-히-’ 앞에서 ‘ㅈ’, ‘ㅊ’으로 소리 나도 원래대로 ‘ㄷ’, ‘ㅌ’으로 표기하는 구개음화, 동일한 한자 ‘女’가 들어가는데 ‘여자’와 ‘남녀’로 다르게 적는 두음 법칙까지, 이 모든 것이 임의적인 규칙이 아니라 일관된 원리의 산물이다. 이 책은 그 원리를 추상적 설명이 아니라 풍부한 용례로 보여준다. ‘띠다’와 ‘띄다’, ‘부치다’와 ‘붙이다’, ‘싸이다’와 ‘쌓이다’처럼 소리는 같은데 표기는 다른 말들의 실체를 이해하고 나면, 맞춤법이 단순 암기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 띄어쓰기는 맞춤법과 별개의 규범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별개의 어문 규범으로 안다. 하지만 띄어쓰기는 한글 맞춤법 제41항부터 제50항에 해당하는 맞춤법의 일부다.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는 한글 맞춤법 띄어쓰기의 대원칙은 단순해 보이지만, 조사와 의존 명사, 어미와 의존 명사가 헷갈리는 순간 이 원칙은 일련의 판단을 요구한다. “가진 것은 이것뿐이다”의 ‘뿐’과 “시간만 보냈다 뿐이지”의 ‘뿐’은 같은 글자인데 하나는 붙이고 하나는 띈다. 전자는 조사, 후자는 의존 명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했다고 먼저 사과할걸”의 ‘걸’과 “내가 잘못했다고 먼저 사과할 걸 그랬어”의 ‘걸’도 마찬가지다. 전자는 어미 ‘-ㄹ걸’이 쓰였고, 후자는 의존 명사 ‘거’에 조사 ‘ㄹ’이 붙은 ‘걸’이 쓰인 것이다. 이처럼 모양은 같은데 그 기능은 전혀 다른 말들이 공존하는 한국어의 특성상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편집 실무에서 실제로 마주치는 다양한 예문을 들어 조사, 의존 명사, 단위를 나타내는 자립 명사, 보조 용언, 고유 명사와 전문 용어의 띄어쓰기를 설명한다.
▶ ‘교양 있는 서울말’이라는 표준어의 모호한 정의
표준어의 공식 정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오랫동안 들여다봐도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솔직함이다. 표준어 규정의 각 조항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규정의 취지와 함께 그 한계나 모순도 가감 없이 짚는다. 소리가 달라진 말, 형태가 달라진 말, 복수 표준어 등 표준어 사정의 원칙을 따라가다 보면, 언어란 결국 살아 있는 것이고 규범은 그것을 뒤쫓는 그림자임을 실감하게 된다. 과거에는 비표준어였다가 표준어가 된 말, 반대로 실제로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복수 표준어로 등재된 말을 보면 표준어라는 개념 자체가 끊임없이 갱신 중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규범을 외우기보다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 책은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