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수양대군』
“수양, 왕위를 빼앗은 찬탈자인가, 시대가 부른 통치자인가?”
“양평 형님, 제 소생 가운데 뒤를 이을 걸출한 이를 고르라면, 단연 유((瑈 수양)를 택할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세종이 형님인 양평대군에게 한 말이다. 세종실록에도 이와 비슷한 해설이 나온다. 세종은 유를 부르는 이름을 ‘진평’, ‘진양’에서 ‘수양’으로 바꾸는데, ‘밝은 곳으로 나아간다’는 진양의 의미가 왕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할 수 있기에, ‘백이와 숙제’ 형제가 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산 ‘수양산’을 따서 ‘수양대군’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곧 형 왕을 잘 보필하라는 무언의 당부이다. 그러나 역사는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김동인의 『대수양』을 현대인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편저한 『수양대군』은 널리 알려진 『단종애사』의 대척점에 서 있는 소설이다. 단종애사가 단종의 눈물,에 집중했다면, 수양대군은 출중한 수양의 울분,을 드러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간 유교 윤리와 인륜에 반한 ‘단종의 죽음’은 많이 부각되어 왔다. 반면 아버지 세종과 조정대신들로부터 뛰어난 능력과 배포를 인정받은 수양이 병약하고 유약한 문종의 신하로, 12세에 보위에 오른 단종의 단지 ‘수양숙부’로 살아내야 했던 깊은 그늘은 애써 덮여왔다. 오직 왕권에 대한 욕심에 어린 조카를 죽인, 잔인한 삼촌이라는 이마 위 먹물 글자가 수양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정말, 그 때문만이었을까?
소설은 세종 재위시부터 문종의 승하 후 단종이 12세에 보위에 올라, 15세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과정까지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세종, 양평, 안평, 금성, 문종, 단종 그리고 김종서, 신숙주, 권람, 정인지 등, 인간의 얼굴을 한 그들의 복잡하고 내밀한 속도 들여다볼 수 있다. 단종이 수양에게 왕위를 양위하면서 끝나는 이 소설은 ‘조카를 죽인 삼촌’이라는 먹물 글자를 배제하고,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의 세상이,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야욕이 어떠했는지를 정면으로 얘기해 보자고 한다. 어린 왕을 가벼이 여기며 입지를 굳히려 드는 대소 신료들과, 친족으로서 왕의 경계를 허물려드는 삼촌들, 세종 문종의 연이은 국상에, 국경의 방비며, 제도 개혁이며, 멈춰버린 국가 행정을 수수방관하는 어린 왕과 행정가들을 맞대면해 보자고 한다.
또한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가 배워온 역사에 슬며시 의심이 든다. 특히 안평과 김종서, 신숙주가 그렇다. 역사 해석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데, 그간 우리는 한 가지 관점만을 배워왔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그러했다. 과연 그러한 것들이 진실인지, 때늦은 의구심이 든다.
앞선 『단종애사』의 편저자, 이정서의 손에서 거듭난 『수양대군』은 작품의 원형과 본뜻을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대부분의 문장을 현대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손봤다. 소제목 없이 55분으로 나뉘었던 각 장에 제목을 달고, 어려운 한자들을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풀어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