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앞으로 꾸준한 추적 관찰이 필요합니다.”
중증 암 환자를 돌보는 요양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던져진 한 마디. 뇌종양 선고였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그 한 마디가 간신히 삶을 버티고 있던 그녀를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눌렀다. 그녀가 모든 고통을 끝낼 마지막 순간을 갈구하던 순간이었다.
말기 암 환자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딸이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으니, 예전에 병실에서 불러주던 그 노래를 녹음해서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저자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노래를 녹음해 보냈고, 며칠 뒤 문자가 왔다. “선생님 노래를 들으며 딸이 편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녀는 가슴에 품었던 사직서를 서랍 속으로 돌려보냈다.
이 책은 어느 간호사의 이야기다. 하지만 의료 에세이는 아니다. 이 책은 어느 병원 환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입원 수기도 아니다. 저자가 줄기차게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헌신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구원이다. 가정불화, 무릎 수술, 화재, 교통사고, 그리고 뇌종양 판정까지. 저자는 스스로를 “다 깨지고 부서진 인생”이라 불렀다. 그 처참한 자리에서 그녀를 끌어올린 사람이 다름 아닌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이 역설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돌봄을 베푼다고 믿었던 시간이 사실은 내가 돌봄을 받고 있던 시간이었다.”
이 고백은 겸손의 수사가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는 그 역설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현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환자들은 울먹이는 간호사에게 실내화를 선물로 남겼고, 격리 병동까지 기저귀를 가져다줬으며, “힘 빼세요”라는 말 한마디로 굳어진 어깨를 풀어주었다. 죽어가는 이들이 살아 있는 이를 먹여 살리는 광경을 저자는 담담하게, 그러나 경이롭게 기록한다.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극한의 자리에 놓인 인물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저자의 시선은 그 극한을 전시하는 대신, 극한 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인간적인 순간들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네 살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젊은 어머니는 마지막 숨을 다해 눈을 감지 못한다. 저자가 살며시 눈꺼풀을 내려주고 나서야 그 눈은 비로소 감긴다. 산소발생기를 달고 호흡이 가빠지는 몸으로도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번이 마지막 밥상일지 모른다”며 아들의 수능 전날 밥을 지으러 산을 내려간다. 췌장암 진단금 전액을 남편의 빚을 갚는 데 쓰고 떠난 아내는 남편이 교회를 다니는 것을 단 하나의 소원으로 남겼다. 평생 배신과 화병을 안고 살았으면서도 “병이 원망스럽지 않다”고 말하며,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얼굴로 증명했다.
저자는 이 사람들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남긴 것들, 실내화 한 켤레, 드레스 한 벌, 해피트리 한 그루, 손수건 한 장을 통해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래된 힘인 연결의 욕구가 죽음 앞에서도 꺼지지 않음을 보인다.
"그들은 안녕하지 않은 자기 삶을 원망하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주저하지 않고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며 아픔 속에서도 꼿꼿하게 살아냈다."
그 꼿꼿함이 저자를 살렸다. 그리고 그 꼿꼿함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독자를 향해서도 조용히 손을 내민다.
끝까지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저자는 베테랑 간호사라는 자부심이 어떻게 환자를 향한 오만으로 굳어지는지를 숨김없이 고백한다. 암 병동 첫 출근날 응급 상황에서 석상처럼 굳어버린 채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던 기억, 트집 잡고 거부하는 환자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얼음 인간이 되어가던 순간, 고통받는 환자에게 “조금만 더 참으세요”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했던 과거.
‘변기 위에서 쓴 간호 참회록’ 챕터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무릎 수술 후 스스로 환자가 된 저자가 극한 고통을 경험하면서, 과거 자신이 환자들에게 얼마나 가벼운 말을 건넸는지를 통깁스를 한 채 변기 위에서 깨닫는 장면은 눈물과 반성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직접 아파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장면이다
암, 시한부, 임종…. 이 책의 소재들은 무척 비극적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의 감정까지 절망으로 몰고 가는 건 아니다. 그것은 저자를 포함한, 책에 등장하는 여러 환자들이 암 투병을 ‘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극한 형태’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솔직하게 감사하고, 더 용감하게 용서했다.
그런 이들에게 가끔은 기적이 찾아오기도 한다. 항암제로 손끝이 갈라지는 몸으로 병원 기타 교실을 열고, 자신의 여섯 개 ‘시한폭탄’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한다. 위암 수술을 세 번 받은 환자가 쉰 넘은 나이에 간호대학에 진학해 4년 뒤 바로 그 병원의 간호사 겸 상담실장으로 돌아온다. 뇌혈관질환으로 와상 환자가 된 아내를 위해 남편은 매일 침대를 창가로 옮기며 “오늘 해가 떴네, 당신 좋아하는 노래 틀어놨어”라고 말한다. 말을 듣지도, 삼키지도 못하던 그 아내가 결국 젓가락으로 콩을 집어 올리는 날이 온다.
저자가 환자들을 통해 배운 것은 ‘어떻게 죽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오늘을 사는가’다. 자녀에게 오늘 사랑한다고 말할 것, 미안하다는 말을 내일로 미루지 말 것, 꺾인 자리에서도 새순을 틔우는 해피트리를 믿을 것.
우리는 결국 사람에게서 다시 살아납니다
다른 의료인들의 수기들과는 달리, 저자는 환자의 자리를 직접 통과한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추적 관찰을 받는 사람으로서, 무릎 수술을 받고 통깁스를 한 채 요양병원에 입원한 사람으로서, 화재와 교통사고를 겪은 사람으로서 저자는 간호사의 시선과 환자의 시선을 동시에 가진다.
덕분에 이 책의 위로에는 치열함이 있다. 죽고 싶었던 사람이 건네는 말이니까. 저자는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며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기를 빌었고, 뇌종양 진단서가 차라리 모든 것을 정당하게 끝낼 명분이 될 것 같아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의 무게가 문장에 실린다.
언론학 석사이자 대한간호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자인 저자의 글은 현장의 생생함과 문학적 절제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다. 카테터, 산소포화도, 드레싱, 손가락 관장 등 현장의 구체성이 독자를 이야기의 디테일로 빠져들게 만든다. 세바시 강연에서 이미 전달력을 검증받은 저자의 언어가 페이지 위에서도 고스란히 그 힘을 유지한다.
투병 중이거나 가족의 투병을 지켜보는 사람에게,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등 돌봄 직군에 있는 이들에 헌정하는 책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선 사람에게 가장 극한의 자리에서 그 질문을 마주하는 이들의 모습을 과잉 없이, 모자람 없이 보여준다. 미안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앞에서 늘 머뭇거리는 우리의 등을 조용히 떠민다.
말기 암 간호사와 뇌종양 환자. 이 책은 내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은 오늘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가장 안녕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건네는 따뜻한 악수, 절망이 가르쳐준 한마디 인사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