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이야. 서울식물원에서 사 온 삼색달개비¨가 화분 안에서 과습으로 죽어가는 걸 본 거야. 이러다 식물 하나 죽이는 건가. 쓰레기통에 냉큼 버릴까 하다가, 흙이 뿌리를 꽉 덮고 있는 게 힘들어 보이더라고. 물러지고 시든 부분을 떼어내 뿌리를 씻고, 유리병에 담가 수경재배를 하기로 했어. 속이 다 시원하더라. 살면서 너무 숨 막히고 힘든 때에 망했다고 포기하기보다, 토양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잖아. 어떻게든 뿌리를 내려보려 버둥거렸는데, 어쩌면 한 번은 뿌리를 씻어야 할 때인지도 몰라. 나, 이런 시원한 얘기를 책에 담아볼까 싶네. 시들어 가는 생명을 물에 담근 순간처럼, 나의 이야기도 여기서부터 투명하게 자라났으면 좋겠다. (p.4)
숲 해설의 첫 번째 코스인 약용식물원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다름 아닌 도루박이¨. 나는 평소 듣도 보도 못했던 식물명에 바로 꽂혔다. 숲 해설가 아저씨의 구수한 발음 그대로 조루박이라고 초록 창에 입력했더니만 ‘지루박’이 튀어나와 혼자 빵 터졌다. 아무튼, 도루박이는 줄기가 최대한 길쭉하게 자라다 그 끝이 땅에 닿으면 뿌리와 새순이 자라나는 습지 식물이다. 긴 줄기 끝을 땅에 ‘도루 박은’ 그 자리에서 새 뿌리가 자라난다니 볼수록 기괴하다. 보법이 다르다는 게 이런 건가. (p.66)
땅에 머리를 박은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도루박이, 20년을 죽도록 버티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는 은행나무, 습설에 가지가 부러지면서도 꼿꼿이 자리를 지키고 선 소나무의 버팀을 복기해 본다. 버팀 그 이상의 ‘재생과 회복’이다. 결국, 숲을 이루는 건 상처 하나 없는 나무가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끝까지 살아남은 나무들이다. (p.74)
온실 안팎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한낮의 자연광에서 보는 초록을 워낙에 사랑하지만, 야광 조명 아래 번뜩이는 밤 초록의 색감에도 깊이 반하고 만다. 외부의 캄캄함 속에서 내부의 빛을 꺼내놓는 식물들이 말도 못 하게 아름답고 신비롭다. 식물의 빛과 결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초록 앞에서 마음이 쉽게 풀어지는 사람, 초록의 색감을 통해 본래 내가 누군지를 확인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나 보다. (p.104)
식물의 뿌리는 잘도 덮어주면서 나의 미숙함을 덮어주고 시작을 응원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나를 멀칭하는 법은 어디에 가면 배울 수 있으려나. 작은 잎사귀 하나에 나무 전체의 우주가 담겨 있듯, 1년 차 에세이 작가인 나에게도 19년 차 방송작가의 내공이 프랙털처럼 촘촘히 박혀있음을 믿어주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는 ‘전체’일 테니.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