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이 책의 제목은 『사물의 투명성』이지만, 단순히 ‘사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상 만물을 인식하는 인식 주체로서의 의식에 관한 것이고, 우리 자신과 세상을 경험하고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탐구서입니다. 이 책이 주로 다루는 것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의식의 본질입니다. 의식Consciousness이 세상 만물과 상호작용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경험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탐구합니다. 따라서 경험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의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경험의 대상이 사물이라면 그 경험의 주체는 의식이며,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물’은 몸, 마음, 세상의 모든 것을 일컫습니다. 이러한 사물들이 투명하다는 것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엇인가를 인식할 때 우리는 ‘나’라는 관념을 갖게 됩니다. 즉, “내가 인식한다”는 관념을 지닌 것이 곧 의식입니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의식과 그 대상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의식에 의해서 대상적 경험이 창조되며, 모든 대상적 경험은 의식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은 의식을 향해 있다기보다는 의식 속에서 존재합니다. 이것이 불이론의 핵심입니다.
이 책에서 스파이라는 불이론(non-dualism)의 관점을 가능한 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학적인 개념을 동원하지 않고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언어로, 그러나 비범하고도 아름답게 설명합니다. 만약 그의 설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저의 미숙한 번역 탓일 가능성이 큽니다.
불이론不二論은 말 그대로 “둘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냥 일원론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둘이 아니다”라고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저자는 명확히 답변합니다. 비록 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만물이 다 같은 한 덩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을 하나의 커다란 인식 대상으로 만들어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하나”라고 인식하는 인식 주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됩니다. 즉, ‘한 가지’를 이야기하는 순간, 그것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를 암시하게 됩니다. 우주의 전체성을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우주의 전체성을 알아차리고 인식하는 인식 주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인식 주체는 마치 우주 밖에서 우주를 인식하는 주체처럼 느껴지는 법이지요. 그래서 불가피하게 “하나다”라는 말 대신에 “둘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이론은 결국 오로지 현존으로서의 의식만이 참된 실체라고 봅니다.
우리는 늘 세상을 경험합니다. 그것이 경험자아가 하는 일입니다. 경험은 경험자아가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입니다. 이러한 모든 경험 속에서 변함없이 빛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식’입니다. 이 존재는 우리 안에서는 ‘아이엠I am’이라는 경험으로 알려져 있고, 바깥세상에서는 “사물이 있다”라는 인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현존과 사물의 현존은 의식을 통해서 공유되는 동일한 현존인 것입니다. 나의 현존이 곧 사물의 현존입니다. 나와 사물은 구분되는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일반적인 통념(상식)에서 시작해보겠습니다. 인식 대상과 인식 주체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여기서 인식 주체는 흔히 ‘나’라고 불리는 존재입니다. 이 ‘나’는 곧 나의 몸과 마음(생각, 감정, 의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늘 대상적으로 인식합니다. 나의 감정, 생각, 느낌이나 내 몸의 상태 등에 대한 인식은 모두 의식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즉, 나의 몸과 마음은 인식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인식 대상인 것입니다.
나의 의식은 나의 몸과 마음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 주체로서의 ‘나’는 나의 몸이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스파이라는 단언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세상의 일부이고 인식 대상이지 인식 주체가 아니라고. 몸과 마음은 단지 의식 속에 나타나는 대상이자 경험일 뿐이고, 의식이야말로 진정한 '나'입니다.
이처럼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이 스파이라의 불이론의 첫 단계입니다. 즉, 서로 구분되는 두 가지가 있음을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단계는 모든 인식 대상이, 모든 사물들이, 그리고 그 사물들에 대한 모든 경험이 모두 다 의식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구분되는 두 가지가 사실은 두 가지가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는 보통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이라는 이원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성은 일종의 환상입니다. 주체와 대상은 하나의 의식 안에서 발생하는 동일한 실체의 양면인 것입니다. 우리의 지각 작용을 통해 의식에 떠오르는 모든 사물들은 사실 의식이 특정한 모습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마치 바닷물 위에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파도는 각기 독특한 형태를 지닌 채 우리 앞에 나타나지만, 사실 그 본질은 바닷물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는 이미지, 듣는 소리, 그밖에 경험하는 모든 것은 다 우리 의식 속에 떠오르는 의식의 여러 형태들에 불과합니다. 마치 바다 위에 떠오르는 파도처럼 말이죠.
의식과 실체는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의식은 모든 경험의 근본 실체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의식을 통해 이루어지며, 의식 없이는 어떤 경험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실체들(몸, 마음, 세상)은 의식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현상이며, 의식 그 자체입니다.
의식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제한되지도 않습니다. 의식은 무한하며, 모든 존재와 사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몸, 마음, 세상은 의식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일시적인 환영일 뿐입니다. 의식 그 자체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실체입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도 결국 의식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불이론의 관점은 점점 더 많은 현대 물리학자, 생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즉, 시간과 공간이 곧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낸 생물학적 실체라는 것이죠.
의식은 곧 ‘나’입니다. 그리고 세상 만물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곧 우리의 의식입니다. 따라서 세상 만물과 ‘나’는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스파이라에 따르면, 그렇기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진리는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의식 자체가 바로 그 진리인 것입니다. 의식 자체가 이미 온전하기에 이를 깨닫는 것이 진정한 평온함과 고요함과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의식이 스스로를 깨닫는 것이 곧 명상입니다. 따라서 명상은 특정한 상태를 만들어내거나 바꾸려는 행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의식은 이미 완전하며, 이 완전함을 깨닫기 위해 어떤 애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명상은 애쓰지 않는 애씀(effortless effort)입니다. 이처럼 명상은 삶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수용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저자는 명상을 통해 의식의 본질을 깨닫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는 명상이 특정한 상태를 이루려는 시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아차리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의식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삶의 모든 측면이 조화를 이루게 되고, 기존의 이원론적 관점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이는 고통의 근본 원인인 잘못된 고정관념과 집착을 해소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평온함과 자유가 이미 우리 안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사물의 투명성』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고, 의식의 본질을 직접 체험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이 책을 통해 의식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해를 삶 속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본질적 정체성과 세상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저 자신과 세상을 보다 명료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해봅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독자 여러분에게 내면 소통의 깊은 고요함과 텅 빈 자유로움을 선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