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기다림이란, 영혼이 도달할 수 있는 공백을 만들기 위해 예리하게 깨어있는 상태를 뜻한다. 비좁은 자아의 아집을 덜어내고, 그 빈자리에 진실이 흘러들 수 있도록 내면의 영토를 확장하는 수행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팽팽하던 의지의 끈을 놓고 일상의 쉼-산책이나 멍한 응시 같은 무방비한 순간-으로 물러설 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실마리는 진공의 인력을 견디지 못한 듯 섬광처럼 우리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준비된 우리를 발견하고 찾아오는 것이다.
--- 「1부 주의에 대하여, 기다림의 기술」 중에서
‘불행’은 우리가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세상이 합리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를 무자비하게 폭로하고 파괴한다. 내가 쌓아 올린 계획과 가치관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현실은 자기 자신의 자아를 갈가리 찢는다. 이 파괴는 끔찍한 경험이지만, 바로 이 처절한 무력감의 상태에서 뜻밖의 가능성이 열린다. ‘나’라는 견고했던 껍질에 균열이 생길 때, 그 틈으로 외부의 빛, 즉 진실이 스며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 「2부 고통에 대하여, 불행은 어떻게 진리로 향하는 문이 되는가」 중에서
‘나를 죽인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자아의 죽음을 의미한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환상, 나의 능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교만, 나의 욕망이 중요하다는 이기심이 노동이라는 현실의 저항 앞에서 힘을 잃고 스러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아가 죽은 자리에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새로운 내가 태어난다.
--- 「3부 노동에 대하여, 일의 목적은 생산물이 아닌 변화된 ‘나’ 자신이다」 중에서
그렇다면 신은 왜 자신의 선한 의지를 세상에 직접 채우지 않고 내버려 두었을까? 베유에게 있어 이것은 타자를 존재하게 하려는 사랑의 결단이었다. 무한한 존재인 신이 모든 곳을 꽉 채우고 있다면, 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 즉 피조물이 존재할 여지는 단 한 틈도 없게 된다. 따라서 세계가 독립된 실체로서 굴러가기 위해서는, 신이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타자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신이 스스로의 전능함을 거두어들이는 이 거리 두기야말로 베유가 포착한 창조의 비밀이다.
--- 「4부 탈창조에 대하여, 창조의 반대말은 파괴가 아니라 ‘자기-비움’이다」 중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엄성은 이 작은 선택의 능력에 달려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선함을 창조할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또한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완전히 예속된 기계와 같은 존재도 아니다. 그저 중력과 은총이라는 두 개의 절대적인 힘 사이에 끼어있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우리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에도 불구하고, 위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행위를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바로 이 점에 모든 위대함이 걸려있다.
--- 「5부 중력과 은총에 대하여, 운명과 선택 : 중력 속에서 은총을 선택하는 인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