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끝은 새로운 시작과 맞닿아 있다. _p.9
나는 길이 있으니까 걷고, 걸으면서 의미 있는 일을 겸하고, 그 의미로 생명을 지키는 탈핵을 평화롭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길도 함께 걸을 사람이 없다면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란 걸 산티아고에서 이미 혹독하게 경험해보았다. 길 위에는 벗이 필요하다. _p.26
수많은 사람들이 품은 저마다의 몸짓으로, 지구는 오늘도 별빛 같은 사랑을 받는다. 탈핵은 결국 사랑이므로. _p.41
마트에서 방울토마토를 한 팩 사서 화장실에서 씻었다. 차에서 잘 셈으로 화장실에서 세수도 한 뒤였다. 차 안에서 토마토를 걸신들린 듯 먹다가 문득 지금 왜 이런 궁상을 떠나 싶었다. 적어도 씻고 잠은 제대로 자야 다음 날 순례를 할 것 아닌가. _p.89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고 만나는 이들에게 전심으로 대하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한다면 삶이 덜 후회스럽지 않을까. _p.112
나는 또다시 짐을 싸서 길을 뜬다. 길을 뜬다는 것은 비움이요 성찰이고, 길에 뜬 것은 존재요 생명이고, 길에서 찾는 것은 이상이요 운명이다. 새로 걷는 길 위의 그 하늘에도 여전히 별이 떠 있을 것이다. _p.143
나는 더욱 외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과도 내 존엄과 자유와 평화를 바꾸지 않으리라. _p.199
남들은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노후대비할 나이에 아무 대책 없이 걷기만 하고 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걷고 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_p.220
걸으면서 알았다. 걸어야 그 고장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_p.273
나의 순례는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다. 내 마음은 이제 언제든지 원하는 곳으로 길을 바꾸어 갈 수 있다. 길의 주제도 마찬가지다. 탈핵이든 명상이든 성지순례든 이름이 무에 중요하랴. _p.362
나를 오래 안 사람들은 지금의 내가 걱정되는 게 당연하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여리고 약하고 아프고 슬픈지 잘 아니까. 하지만 나를 정말 생각한다면 용기를 북돋워야 한다. 내게 현실감이 있었다면 엄동설한 한파주의보에 길을 걷지도 않을 테니까. 정신 차리라고 조언해봤자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그리고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 _p.379
오후 6시, 기차에 올랐다. 부서진 스틱 끝이 보인다. 자신은 부서지면서도 나를 지탱해준 파란 스틱. 진정한 사랑의 실상이다. 그러나 이제는 일방적인 헌신도 부질없는 희생도 하지 않으련다. _p.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