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교적 어렸을 때 UFO(미확인비행물체)라고 생각되는 물체와 조우한 적이었다. 경상북도 김천에 살던 일곱 살 무렵이었다. 늦여름의 어느 날 저녁, 집 안에는 내 블라우스를 손수 만들어 주려 뜨개질을 하시는 어머니와 나만 있었다. 보통은 밖이 어두워지면 절대 문밖으로 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 특별한 날 저녁만큼은 무언가에 이끌려 엄마 곁을 떠나 바깥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그날의 일을 두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훗날 말씀하셨다.
‘아니, 얘가 이렇게 다 늦은 저녁 시간에 왜 밖으로 나가지?’
어머니는 나를 말리지 않고 그대로 밖에 나가게 해 주셨다. 집을 나온 나는 내 눈으로 하늘에서 빛나는 일곱 개의 빛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 빛들은 둥글었고, 전부 일정한 대형을 이루고 늘어서 있었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팔짱을 낀 채 시멘트벽에 등을 기대고 계속 하늘을 쳐다보면서 도대체 저 빛들이 뭘까 의문을 가졌다. 그 빛들은 마치 달처럼 보였다.
‘저게 어디서 왔지?’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문득 하늘의 빛들 오른쪽으로 가로등 불빛이 시야에 들어오자 상당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건 분명히 가로등 불빛이 아닌데, 모양은 달이 여러 개 있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일렬로 늘어서 있지?’
그러다가 약간 고개를 들어 반대편 왼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 저기 달이 있네. 보름달이 저 위에 있어!’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빛들을 바라보았다.
‘뭐지, 저 빛들?’
그 빛들은 단연코 가로등도 아니고 달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내 블라우스를 뜨고 계셨다. 여러 해가 지나도록 그 ‘사건’에 관한 모든 것은 절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01 어린 시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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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 나와 사랑에 빠졌다. 나는 영의 빛이었다. 하지만 영은 점차 나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전화를 했을 때 내가 집에 없으면, 내 진심을 의심하거나 심지어는 황당하게도 자기보다 젊은 어떤 남자를 만나러 밖에 나가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였다. 내내 안절부절못하는 영의 두려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상황이 슬펐다. 퇴근하면 곧바로 집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증이 생길 정도였다. 말하자면 새장에 갇힌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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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책상에 앉아서 영이 가져온 책을 펼쳤는데, 몸과 마음, 심령과 관련된 특수한 호흡 명상법을 다루고 있는 내용이었다. 읽자마자 내용에 깊이 빠져들었다. 순간적으로 번개가 번쩍거리듯이 내용이 머리에 쏙 들어왔다.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깨달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신은 어디에나 있다.’
물론 지금 숨 쉬고 있는 여기 이 공기를 포함해서! 그 책에서 신이 종교적인 방식으로 언급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 강력한 깨달음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과거 전체를 돌이켜 보더라도 난 단 한 번도 ‘신’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신심이 깊은 불교 신자였지만, 나는 어떤 종교에도 속한 적이 결코 없었다. 책을 읽으면 서 받은 ‘계시’는 나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왔다. 이 말은 마치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내리듯이 무려 30분이 넘도록 스르르 내 안에서 흘러나왔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사의 마음이 밀려왔다.
-〈02 영을 만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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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이 영매가 언급했던 바로 그 사람이야. 이 사람 이름도 똑같은 요가난다잖아.”
당시에는 사실 그 책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는데도 엄청난 기쁨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올라 온 사방으로 흘러넘쳤다. 책을 펼쳤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 곧바로 문장 하나하나가 내 관심을 끌었다. 책의 내용이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들면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미지의 희열이 가슴속에서 요동쳤다.
“그래, 이거야! 지금껏 평생을 기다리던 책이라고!”
나는 확신에 차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실제로 그랬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때까지 전혀 몰랐던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책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한 순간, 보이지 않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때부터 방 안에서 내 반응을 지켜보면서 나를 미지의 여정으로 이끌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의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그런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다. 영에게 말했더니 그저 들어주기만 했다.
밤새도록 그 책을 읽었다.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무언가에 이끌려 멕시코인 영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요가난다에 관한 책을 구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 저번에 당신을 통해 나한테 이야기하던 그 사람 맞지요, 네?”
나는 그 영매가 자신을 통로 삼아 요가난다의 목소리로 해준 말을 전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말을 한 존재는 그 영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영매는 자신과 딸이 모두 요가난다가 설립한 〈자아실현동지회〉(Self Realization Fellowship)에 다닌다고 말했다.
-〈03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를 발견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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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난다의 탄신일에 나는 〈SRF〉에서 열리는 구루의 탄신 예배 모임에 참석했다. 그날 거기 모인 사람들은 구루의 이름을 반복해서 염송했다. 그런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구루의 사진 앞으로 걸어가서 경배를 드렸다. 그런 의식은 매년 〈SRF〉 구루들의 탄신일에 열린다.
그날은 요가난다가 마하사마디(육신을 떠나는 최후의 경지, 요기의 죽음)에 들기 불과 한 시간 전에 찍은 그 유명한 사진 ‘마지막 미소’가 제단에 놓였다. 그 사진 속에서 요가난다는 부드럽고 자애로운 미소와 사랑으로 충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나도 사진 앞까지 걸어가서 경배를 드렸다. 그 사진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는데, 내 눈이 요가난다의 촉촉한 눈과 딱 마주쳤다. 요가난다가 사진에서 걸어나와 실제로 거기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가난다의 두 눈이 인류를 향한 사랑과 자비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신성한 사랑’의 깊이를 느꼈다. 그 사진 속에서 요가난다의 두 눈은 분명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그 순간은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다.
-〈05 보이지 않는 스승이 나를 인도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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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니쉬는 섹스 구루야!”
남편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마도 라즈니쉬가 성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도 모텔에 머물면서 라즈니쉬에게 편지를 보내 봤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온 직후, 남편 영은 일본 북부에서 개최되는 음식 축제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 축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품된 특색 있는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자리였다. 영은 〈88 서울올림픽〉에서 선보일 자신의 프로젝트를 위한 아이디어를 거기 가서 얻고자 했다. 영이 함께 동행하자고 해서 흔쾌히 수락했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남편 영이 셜리 매클레인의 《백척간두(Out on a Limb )》 일본어 번역본을 사 주었다. 나는 일본어를 읽을 줄 몰랐지만, 영은 일본어 독해가 가능했다. 영은 그 책을 읽고, 셜리가 자신의 눈을 띄워준 ‘쌍둥이 영혼’ 데이비드와 함께 겪은 영적 체험에 관해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영이 그런 책을 읽어서 무척 행복했다. 내 안의 ‘보이지 않는 스승’이 남편을 이끌어주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훗날 셜리 매클레인의 저서 영문본과 한국어 번역본 양쪽을 모두 구입해서 셜리와 얽힌 이야기 전체를 읽을 수 있었다.
-〈09 다시 한국에서, 구루를 찾아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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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티가 말을 이어갔다.
“바바지께서 마하사마디(열반)에 드시기 전에 여드레 동안 바바지와 함께 있었어요. 바바지께서 당신의 육체를 수많은 다양한 형체로 바꾸는 모습도 직접 보았지요. 남자가 되었다가 여자가 되기도 했고, 노인이 되었다가 다시 젊은이가 되기도 했어요.”
바바지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가슴속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한 흥분감과 희열감이 솟아올랐다. 나는 나티에게 이렇게 물었다.
“바바지라니, 요가난다의 책에 나오는 그 바바지 말인가요?”
내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나티가 바로 대답했다.
“네, 그래요!”
바바지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굳이 나티가 확인해주지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분’이 요가난다가 자서전에 기록했던 그 자애로운 바바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가슴으로, 영혼으로, 존재 자체로 그걸 알고 있었다. 내가 나티에게 되물었던 것은 오로지 영의 의심을 잠재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전에도 영과 항상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여 왔기 때문에, 마치 영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 알겠지요?’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영이 확신하기를 바랐다. 나는 논쟁할 때마다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언젠가 보여줄 거예요. 그땐 당신도 내 말을 믿을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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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나마하 시바이…….”
그때는 마하만트라를 반복해서 염송하는 것이 바바지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바바지께서는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그 만트라를 반복적으로 염송하면 그 개별적 자아가 ‘더 높은 자아’(보이지 않는 스승 혹은 신)와 연결된다고 말씀하셨다. 진심을 다해서 그 마하만트라를 반복하거나 마하만트라에 대해 명상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몸을 치유할 수 있다.
-〈14 마하바타르 바바지를 발견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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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스리 무니라지의 상점에 당도했을 때, 무니라지는 목제 의자에 앉아서 여느 때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티는 그 전날 밤처럼 무니라지에게 엎드려 절하고 그의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침묵 속에서 무니라지에게 철저히 귀의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구루지, 제 모든 사랑을 당신께 바칩니다.”
그 전날 밤과는 달리 그때 나는 전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바바지의 부름을 받고 나는 기어코 인도에 와서 육신을 갖춘 구루를 찾아 기나긴 여행을 거듭하고 있었다. 내 영혼은 스리 무니라지를 내가 찾고 있던 구루라고 알아보았지만, 전날 밤에는 무의식의 차원에서 순간적으로 그런 판단에 저항했었던 것이다. 나의 자애로운 구루 스리 무니라지를 향한 내 마음이 드러난 첫마디는 ‘구루지’였다.
-〈15 나의 구루 스리 무니라지를 만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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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두리라.”
바바지는 이런 경고도 남기셨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실되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가하게 수다를 떨거나 남을 헐뜯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다시 돌아와서 그대를 괴롭히고야 마는 거짓말을 할 바에는 그냥 침묵을 지키는 편이 훨씬 낫다.”
모든 것은 아쉬람에서 순식간에 펼쳐진 바바지의 릴라였다. 시간이 과거보다 더 빠르게 흘러가고 춤을 추고 있었다. 바바지는 선한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갖가지 생각이 우리에게 카르마를 만든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만큼, 실질적으로 우리가 모든 지각 있는 존재들을 향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향해 친절하게 최선을 다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모든 생각을 경계하면서 알아차려야 한다. 또한 우리의 육체와 영혼과 정신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사고방식을 한층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인간은 강한 마음과 힘, 그리고 더 나은 상태를 창조하고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는 실체를 창조하는 에너지를 조절한다. 반대로 사고방식과 습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절대 바라지 않는 실체를 직면하게 된다. 인류가 가진 집단적 사고의 역동적 특징은 예컨대 세계 전역의 기후 패턴에까지 고스란히 반영된다. 생각이 삼라만상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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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사는 바바지가 1970년에 처음으로 목격되신 〈하이다칸동굴〉로 데려다주었다. 여기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신성한 베다(힌두교의 성스러운 경전)에 기술된 대로 까마득한 세월 동안 존재해 있었던 신성한 동굴이다. 동굴 입구는 아주 작고 어두웠다. 의사를 따라가는 동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몸을 숙여야 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찌나 어둡던지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동굴 안은 고작 두셋 정도 들어갈 좁은 공간밖에 없었다. 의사와 나는 전사(戰士)의 얼굴 모습을 한 바바지의 사진과 불이 안 켜진 촛불이 놓인 작은 제단 옆에 앉았다. 그것은 내가 델리의 호텔에서 처음으로 본 사진이었다. 의사가 초에 불을 켠 다음, 우리는 그 마법의 장소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온 가슴으로 기도했다.
“바바지, 당신의 ‘사랑’과 ‘지혜’가 우리를 통해, 모든 이를 통해 흐르기를 기도 드립니다.”
-〈16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곳, 하이다칸 비쉬와 마하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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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왔듯이, 바바지도 인류를 도와주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힌두교 문화권에서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인간의 몸으로 머물렀고 힌두교의 각종 의식을 통해 모셔졌지만, 바바지는 실제로 여하한 종교도 옹호하지 않으셨다. 바바지는 모든 종교가 진정한 신도를 신으로 인도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대의 가슴이라는 종교를 따르라.”
하이다칸에서 나는 바바지의 부름을 받고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힌두교도, 무슬림, 기독교도, 유태교도, 시크교도 등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바바지는 인류가 겪고 있는 힘든 전환기를 맞이하여 당신이 가진 위대한 힘과 메시지를 가지고 모두에게 영감을 주신다.《바바지의 가르침》 1980년 4월 12일자 항목에서 바바지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대가 평화롭다면 나도 평화롭다. 그대가 괴롭다면 나도 괴롭다.
그대에게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
신으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넘어야 할 산과 언덕이 있기 마련이다.
산이 무너진다고 동요하지 말라. 무너지는 것은 산의 의무이고, 산을 옮기는 것은 군인들의 의무이다.
바바지는 인류를 사랑하시며, 지구에서 신성의 지고(至高)함을 회복하려는 것이 그분의 의도이다. 바바지는 인류를 몰락에서 구하고 지키러 오셨으며, 정의를 구하고 불의를 없애러 오셨다. 이 시대에 바바지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주된 목표는 인간의 가슴과 마음을 새롭게 만들려는 것이다. 바바지는 인류에게서 혼란과 사악함을 없애기 위해 오셨다. 바바지는 거대한 변화의 메시지, 그리고 진리와 단순성, 사랑 안에 살면서 남들에게 봉사하고, 더 나아가 신과 소통함으로써 더 높은 길을 따라가며 그러한 변화를 헤쳐나가는 법을 전파하러 이 땅에 오셨다. 바바지의 가르침은 영적인 각성과 아울러,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18 바바지가 전하는 자유의 메시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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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라! 이것이 나의 명령이니라.”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바바지의 말씀인가! 곧바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바바지는 오로지 행복하라는 당부만 하셨구나!’
바바지는 나의 마음속에서 행복하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조용히 이 말을 되새기면서 행복과 환희, 그리고 바바지를 향한 사랑을 느꼈다.
바바지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내용은 오로지 행복하라는 것뿐이다.
인류를 대하는 바바지의 자비와 ‘사랑’이 저절로 느껴졌다.
-〈19 바바지의 발견을 공유하고자 하는 소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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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가족과 공유할 수 없어서 외로웠다. 식구들 모두가 그분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정말로 기뻤을 것이다. 전부 인류의 복지에 유익하고 오로지 인류에 대한 무조건적인 봉사만이 목적인 바바지의 신성한 메시지와 가르침에 왜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철저히 혼자였고, 오직 ‘보이지 않는 대스승 바바지’만이 나를 이해해 주셨다. 바바지에게 가족들, 특히 어머니가 나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보냈던 내 편지에 대한 구루 무니라지의 답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
-〈21 바바지가 나에게 일자리를 구해 주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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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돌아온 직후인 그해 이른 봄에, 사이 바바가 손에서 비부티(vibhuti, 신성한 재)를 흩뿌리는 광경을 비디오로 보았다. 자신의 성스러운 힘을 통해 사이 바바는 얼마 안 되는 공기로부터 엄청난 양의 비부티를 만들어냈다. 비부티는 전 세계에 걸쳐 신도들에게 ‘사랑’의 제스처로 주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비부티를 치유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훗날 나도 직접 나 자신에게 사용해 보고 강력한 치유의 경험을 가진 적이 있었다.
비부티 말고도 사이 바바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계와 반지, 목걸이처럼 다양한 물건들을 실제로 만들어냈다. 사이 바바는 생성된 물건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쁜 축복으로 선사해 주었다. 사이 바바는 회의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그런 기적을 연출한다고 말했다. 신의 힘은 전능하고 어디에나 미칠 수 있다. 신성한 의지를 통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대스승’ 바바지와 마찬가지로 사이 바바는 지고의 신, 시바의 현신으로 여긴다. 또한 바바지처럼 사이 바바도 똑같은 진리, 곧 ‘신은 우리 안에 있고, 어디에나 있다’고 말한다. 사이 바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믿음이 있다면, 그대 존재의 핵심인 주님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실 것이다.
주님은 그대가 손을 뻗치면 닿을 수 있다.
영원한 증인, 주님을 알아차리라.
주님은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아신다.
나는 신이다. 물론 그대도 신이다.
그대와 나의 유일한 차이는 단 하나이다. 나는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는 반면, 그대는 아직 그런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종교는 ‘사랑’이라는 종교뿐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계급은 ‘인류’라는 계급뿐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언어는 ‘가슴’이라는 언어뿐이다.
세상에서 신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한 분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이 바바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사랑으로 하루를 시작하라.
사랑으로 하루를 채우라.
사랑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라.
-〈23 사이 바바를 발견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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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지, 사이 바바가 누구인지 꼭 여쭙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스리 무니라지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음성으로 설명해 주셨다.
“그 사람은 성자일세.”
그 말을 듣고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성자’란 구루께 무슨 의미인가요?”
구루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당신에게서 만족스러운 답변을 이끌어 낼 때까지 내가 질문을 거둬들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나의 구루는 잘 알고 계셨다. 또다시 저음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구루의 답변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한마디만큼은 뚜렷이 이해했다.
“성자는 사랑이라네.”
구루의 답변을 들은 나는 엄청 뿌듯했다. 내가 듣기를 바라던 바로 답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사랑이 아니라면 성자도, 깨달음도, 자아실현도 전혀 무의미했다. 사랑이 아니라면 신도 무의미했다. 나에게는 깨달음과 사랑과 신이 모두 함께였다. 그것은 그냥 ‘사랑’에 관련된 삼라만상의 각기 다른 모습이었다.
-〈34 나의 구루가 인도로 부르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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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성이 이런 일을 하면, 사람들 눈에는 무당으로 비쳐요.”
(한국에서 무당은 신령들에 봉사하고 그런 신령들에 빙의되기도 하는 여성이다. 무당은 대체로 신령들에게 봉사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신령들은 고도로 진화한 것은 아니지만 예외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조용한 어조로 정 선생에게 물었다.
“방금 언급하신 ‘이런 일’이 정녕 무슨 의미인지 알고 계신가요? 아니요, 절대 모르십니다!”
나는 자애로운 바바지를 향한 사랑을 생각하면서 단호히 말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제가 이 세상에서 바바지의 일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라 해도, 저는 이 세상에 ‘사랑’과 ‘빛’을 전파하는 제 사명을 끝까지 수행할 것입니다.”
-〈40 프로젝트의 조력자를 구하는 일이 난항을 겪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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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지의 ‘방문’ 시간은 30분 정도 이어졌지만, 우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물론 우는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바바지가 나에게 오셔서 내 존재 전체를 휘감으시면서도 이번에는 잘못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도록 하신 이유는, 내가 예전처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또 다른 불행을 겪지 않게 하시려는 배려 때문이었다. 바바지의 의도는 나를 보호해 주시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산간 시골 마을의 작은 방에서 그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고,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원고 작업을 안전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더욱이 나는 어쨌든 젊은 여성이 아닌가! 우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다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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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聖者)와의 탄트라가 어떠할지 항상 궁금했다. 그것은 육체적 차원의 섹스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마치 환상을 실현하는 것과 같으리라. 한 분의 성자와 합일을 이루고, 음양의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것은 과연 어떠할까? 이것은 여러 해 동안 그저 막연한 꿈처럼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갈망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을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러니 구루지는 아마도 나에게서 이런 갈망을 익히 알아보셨을 것이다. 그것은 제자 라히리 마하사야가 자신의 환상에 얽매이지 말고 영적인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히말라야에 궁전을 실체화하신 바바지의 뜻과 마찬가지였다. 나의 자애로운 구루지는 자신의 사랑하는 여제자의 갈망을 채워주시려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구루지에게 내 에너지를 드리면서 구루지의 영혼 속으로 순환시키고 있었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루지를 내 영혼과 가슴 안에 온전하게 받아들였다. 구루지를 돕고 있는 스스로를 목격했다.
남자와 사랑을 나눌 때마다 나는 언제나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고 ‘신성한 여신’의 치유 에너지를 주었다. 나는 자애로운 나의 구루에게도 똑같이 행동하는 나 자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여하한 육체적 흥분도 느끼지 않았다. 모름지기 내 마음속에서 구루가 성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었으리라.
구루가 곧 몸을 일으켰다. 나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겸손하게 구루에게 절을 했다. 내 방으로 돌아갔다. 이 순간을 매우 감사하게 느꼈다. 구루는 나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내 갈망을 이루어 주시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성적 접촉은 없었지만, 나로서는 그 순간의 경험이야말로 완벽한 갈망의 해소였다. 구루지는 모든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은 화신(化身)인 동시에 아름다운 스승이셨다.
-〈47 구루가 내 갈망을 이루어 주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