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딱딱한 뇌과학 이론서가 아닙니다. 저의 지도교수님은 늘 “박사(Ph. D. Doctor of Philosophy)라는 이름에 ‘과학(Science)’이 아닌 ‘철학(Philosophy)’이 담겨 있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과학적인 면과 사회인문학적 면을 동시에 보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세포를 사람처럼, 세포 조직을 우리 사회에 비춰보는 습관이 생겼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저는 인간을 ‘소통하는 뉴런 덩어리’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시냅스를 사이에 둔 천억 개의 뉴런들이 소통하며 뇌를 자극하여, 당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향기롭게 만드는 지혜를 공유할 수 있는 단상들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주 만나고,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는 우리의 뇌를 튼튼하게 지탱해 주는 버팀목입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온전한 존재가 됩니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갑작스러운 후각 상실이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뇌 질환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알츠하이머성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은 기억력이나 운동 기능이 떨어지기 훨씬 전부터 후각 기능 저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거의 100%, 파킨슨병 환자의 90%가 후각 상실을 겪습니다. 치매가 시작될 때, 냄새를 담당하는 뇌 부위와 후각신경계부터 가장 먼저 손상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치매 초기에는 모든 냄새를 못 맡는 것이 아니라, ‘특정 냄새’부터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진은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들이 유독 ‘땅콩버터 냄새’를 맡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평소에 익숙하던 커피 향, 김치 냄새, 혹은 과일 향이 잘 느껴지지 않거나 그 냄새가 무엇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면, 단순히 ‘나이 탓’으로 돌리지 말고 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뇌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입니다.
—〈갑작스런 후각 상실, 뇌 질환의 전조증상?〉 중에서
눈 맞춤의 힘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빅토리아 렁 교수 연구진이 과학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연구진은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영아와 성인 사이의 소통에서 눈 맞춤이 어떤 신경학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정밀하게 관찰하였습니다. 연구진은 뇌파 검사EEG 장치를 이용해 어른과 아기의 뇌 신호를 동시에 측정하며 신경 네트워크의 공조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한 그룹의 성인은 아기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부드러운 자장가를 불렀고, 다른 그룹은 시선을 회피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른이 아기의 눈을 직접 응시하며 노래를 불러주었을 때, 두 사람의 뇌파는 놀라운 수준으로 일치하며 강력한 신경망 연결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이러한 신경망의 동기화가 강하게 일어날수록 아기는 어른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더 자주, 그리고 더 길게 옹알이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는 눈 맞춤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뇌와 뇌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안테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뇌는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뿐만 아니라 타인의 의도를 추론하는 전전두엽 피질과 측두엽에서 사회적 인지를 담당하는 상측두고랑 등 복합적인 영역을 가동하여 상대방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해독합니다. 아기는 부모의 눈빛을 통해 자신이 안전하며 사랑받고 있다는 신호를 뇌의 보상 회로인 측좌핵으로 받아들이고, 이 과정에서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도파민이 분비되어 정서적 유대감이 극대화되는 것입니다. (중략)
타인과 눈을 맞추고 교감하는 행위는 우리 뇌의 ‘사회적 뇌’ 회로를 자극하여 신경 가소성을 유지하고, 뇌의 염증 수치를 낮추는 강력한 항산화제 역할을 합니다. 가족과의 화상 통화나 이웃과의 따뜻한 눈 맞춤만으로도 우리 뇌는 다시금 활기찬 생기를 되찾고 노화의 시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사회적 고립입니다.
—〈감정의 파동을 일치시키는 눈맞춤의 힘〉 중에서
국제 연구진은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쥐에서 청각 피질이 통증과 관련된 영역과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소리를 처리하는 뇌 영역인 쥐의 청각 피질과 감각 처리의 중심인 시상의 특정 밀집 지역을 연결하는 신경망을 발견했고, 이 신경망이 통증 억제에 관여할 것으로 보고하였습니다.
소리가 주는 진통 효과는 주변 소음에 비해 5데시벨 정도 높은 경우에만 효과적임을 발견했습니다. 즉 주변 소음을 다 상쇄할 만한 큰 소리가 아니라 주변 소음보다 조금 높으나 전반적으로는 낮은 소리가 청각 피질과 시상 사이의 신경학적 신호를 무디게 하여 시상에서의 통증 처리를 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설명합니다. 이는 일상 소음이 45데시벨이라 가정할 때, 50데시벨 정도 크기의 소리나 음악이 효과적이고, 이보다 큰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청각, 통증을 줄인다?〉 중에서
오랫동안 의학계에서는 치매를 ‘뇌의 저장 용량이 다해 새로운 기억을 더는 입력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해해 왔습니다. 기억을 만드는 ‘등록’ 과정 자체가 고장났다는 가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MIT의 도네가와 스스무Susumu Tonegawa 교수 연구진은 이러한 기존의 통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도네가와 교수는 면역학 분야에서 쌓은 정교한 분석력을 뇌과학에 접목하여, 기억이 뇌의 어디에 어떻게 저장되는지를 추적했습니다. 연구진은 인간의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중략)
연구진은 생쥐가 공포를 느낄 때 활성화되었던 뉴런 집단, 즉 ‘기억 흔적 세포engram cell’를 찾아내어 푸른 빛을 비추어 강제로 활성화했습니다. 그러자 어제의 기억을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평온하게 움직이던 생쥐가, 빛이 들어오는 순간 겁에 질려 몸이 굳어버리는 ‘프리징freezing’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이는 생쥐의 뇌가 어제의 공포스러운 사건을 저장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기억은 분명히 뇌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지만 단지 그것을 스스로 꺼내 쓰는 ‘인출’ 과정에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이 발견은 치매 연구에 있어 큰 전환점을 제공하였습니다. 치매 환자의 뇌가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닫힌 문’이 아니라, 정보는 들어 있지만 열쇠를 잃어버려 열지 못하는 ‘잠긴 문’과 같다는 사실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도네가와 교수의 연구는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뇌 속 어딘가에 ‘침묵하는 기억 흔적Silent Engrams’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주었습니다.
—〈치매, 기억의 저장 오류가 아닌 출력 오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