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활동하던 시대의 학문은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이라는 안온한 틀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방 안에 앉아 마음속에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이러한 사유를 통렬히 비판하며 선언합니다. 마음은 이치를 사유하는 기관일 뿐, 이치 그 자체와는 구별된다고 말입니다. 이치는 마음 ‘밖’의 구체적인 ‘사물과 사건(事物)’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참된 앎은 내면으로 침잠하는 대신, 외부 세계를 향한 적극적인 탐구, 즉 격물에서 출발해야만 했습니다.
--- 「1부 격물치지(格物致知) - 격물」 중에서
다산 정약용은 바로 이 지점, 즉 ‘드러나는 나와 홀로 있는 나’의 불일치를 위선과 인격적 붕괴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한 인간의 품격과 수양의 깊이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오직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고독의 순간에 드러난다고 통찰했습니다. 그리고 이 고독한 때에 자신을 갈고닦는 공부를 ‘신독(愼獨)’이라 불렀습니다.
--- 「2부 치심(治心) - 신독」 중에서
이는 『논어』에서 공자가 인(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극기복례(克己復禮)’에 그 뿌리를 둡니다. 다산은 ‘극기’를 옛 예법(禮)으로 돌아가는 행위로만 여기지 않고, 자신이 세운 뜻을 성취하기 위해 스스로의 방해물인 자신과 싸워 이기는 적극적인 의지의 실천으로 삼았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경세(經世)에 앞서, 먼저 내 안의 혼돈부터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 「2부 치심(治心) - 극기」 중에서
먼저 ‘위인지학’, 즉 남을 위한 공부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닦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여 명성을 얻거나, 남과의 논쟁에서 이기거나,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공부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공부는 화려한 옷과 같아서,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결코 자신의 살과 피가 되지 못합니다. 지식은 인격으로 체화되지 않고, 얄팍한 지적 유희의 도구로 전락하고 맙니다.
--- 「3부 수신(修身) - 위인지학」 중에서
다산은 『목민심서』「진황육조(賑荒六條)」에서 먼저 격물의 자세로 현지의 실태를 정확히 계량하라고 말합니다. 고을의 곡물 보유량, 흉작의 정도, 유민의 상황 등을 실지 보고하게 하여 재난의 규모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문제의 근본을 규명합니다. 굶주림의 근본적인 원인은 배급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곡물의 확보 체계와 분배 원칙의 부재’에 있다고 보고, 대처의 첫 단계를 ‘비자’, 즉 예비 물자를 비축하고 조달 경로를 확보하는 것으로 못박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해결책의 순서를 설계합니다. 먼저 비축과 조달 체계를 확립하고 분배의 원칙과 대상을 설계한 연후에야, 비로소 구호 시설을 설치하여 집행하고 사후 결산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처벌과 단속만으로는 구휼이 지속될 수 없으니, 먼저 ‘곡물과 재원’이라는 근본 동력을 확보하라는 것입니다.
--- 「4부 경세(經世) - 물유본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