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각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청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은둔고립청년’. 사회적 고립이나 장기간 은둔 상태에 놓인 청년을 지칭하는 이 단어가 이곳저곳에서 눈에 띈다. 2023년 조사 통계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집이나 방 등 한정된 장소에 머물러 있는 은둔고립청년의 수가 54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숫자에 속하는 이들만이 ‘은둔고립청년’일까? ‘니트족’, ‘일쉼청년’, ‘쉬었음 청년’, ‘여성청년 자살률’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 현상이 알려주는 것은 결국 이런 사실일 것이다. ‘지금 청년들이 어딘가 이상하다.’ ‘청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관계’를 지금 여기의 핵심적 화두로 붙들고 동양고전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는 ‘유학자’인 저자 김고은은 ‘존재클럽’이라는 은둔고립청년 커뮤니티에서 인터뷰 워크숍을 진행하며, 또래 청년이자 고립 경험 당사자로서 은둔고립청년들을 만났다. 그 경험 속에서 저자는 이들이 겪는 고립이 특수한 경험이 아니며, ‘공동체’의 부재가 일반적인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함을 깨닫게 됐다.
“은둔고립청년 문제는 일종의 시대적인, 세대적인 문제다. 고립 문제를 시대나 세대와 결부시켜 이론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실용적인 동기로 움직였다. 무력감, 절망, 불안, 고립, 자괴감 내지 혐오감을 통과하지 않고는 나와 나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되거나 자기 기반을 잃은 경험, 나를 지키는 방법이 ‘각자도생’뿐이라는 생각, 나와 비슷한 위치에 놓인 이들이 모두 경쟁 상대일 뿐이며 나에게 관심 갖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규칙 속에서 설 자리를 잃은 감각을 언제나 느끼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은둔 혹은 고립 경험이 있거나 언제든지 고립될 수 있겠다는 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은둔고립청년’의 개념이 규정되고 정부 차원의 여러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여기에는 이들을 경제적·사회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실패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경제인구 손실을 회복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저자는 청년들에게 이런 ‘생산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청년 세대의 고립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기성 세대가 은둔고립청년이 느끼는 이 감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지금의 청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은둔고립청년을 향한 기존의 ‘회복’ 담론을 거부한다. 그리고 나아가 은둔고립청년의 등장이야말로 지금의 이런 사회가 더는 지속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 책은 청년 당사자인 저자가 만난 은둔고립청년들에 대한 기록임과 동시에, 자신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내왔으며 ‘고립’은 청년 세대가 지닌 일종의 시대 감각임을 이해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저자는 은둔고립청년의 발화를 통해 개인의 삶과 그 삶이 놓인 사회구조가 어떻게 얽혀 고립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고, 고립을 겪은 사람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풀어낸다.
‘그들-청년’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닌
‘우리-청년’을 이해하게 만드는 청년 당사자의 세대론
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부하여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며, 이 책이 학제적인 연구방법을 통해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대학을 자퇴하고 인문학 공동체에서 배움을 이어오며 저자는 공부란 일상에서 세상을 만나고 그것을 자신의 일상 안으로 가져와 곱씹으며 익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저자는 대상과 거리감을 유지하며 분석하는 기존 학계의 방법이 아닌, 관계와 맥락에 녹아들고 그것을 자신의 삶 위로 가져와 만나는 방법으로 은둔고립청년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 방법론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류학자 샹뱌오(項飇)가 언급했던 ‘향신(鄕紳)’의 모습을 가져온다. 향신은 과거 중국의 지방 관리로, 공부와 정치 참여가 별개의 일이 아니었던 시기에 학자이자 지역 살림꾼으로서 공동체 내부에서 활동하고 관계 맺으며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저자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대신 존재클럽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관계를 가꾸면서 은둔고립청년의 경험을 공부했다. 이 책에는 은둔고립청년의 직접적인 목소리와 대화가 담긴 인터뷰와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담은 글이 뒤섞여 있다. 학제적 연구방법을 벗어나 다양한 도구와 언어, 접근 방식으로 구성한 저자의 글에는 공동체의 내부 당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생생함과 내밀함, 진실성이 담겨 있다.
자신 및 타인과의 연결이 끊어진, 더는 이 세계를 견딜 수 없어진
청년 세대의 고립─혼맹을 진단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타인을 마주할 수 없다.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
존재클럽의 은둔고립청년들은 각자 자신의 목소리와 언어로 자신의 삶의 궤적과 고립을 되짚는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당사자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의 ‘혼맹(Soul blindness)’ 개념으로 은둔고립청년을 진단한다. 혼이란 한 존재가 그의 신체나 언어를 넘어서 관계 위에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혼을, 혼을 인식할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관계 위에서 만나며 서로를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은 존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다. 그러나 만약 혼을 잃고 혼을 마주할 능력을 잃는다면 그는 다른 이들의 삶 속에 실존할 수 없고, 다른 이들이 그의 삶 위에 실존할 수 없다. 저자의 시각에 따르면 은둔고립청년들은 이 세계의 관계망에서 떨어져나와 고립된 이들이다. ‘혼’을 인식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기에 자신도 타인도 인지할 수 없게 되었고, 타인도 그를 인식할 수 없게 되었으며, 존재 자체가 실질적인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이 세계에 참여할 수 없고, 세상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며, 그렇기에 타인을 마주할 수 없고,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감각한다. 이들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존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은둔고립청년은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게 아니라, 일종의 죽은 상태 혹은 죽음을 경험한 상태라는 것이다. 아직 취약하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죽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이 ‘점’에서부터—혼맹 혹은 죽음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이 사회는 경쟁하며 타인을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하며 서로 혼을 주고받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경쟁 때문에 세상 속에서 붕 뜬 존재들에게 ‘진짜 자신’을 찾으면, ‘완벽한 파트너’를 찾으면, 정상성 속에 편입되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찾으면 된다고 끝없이 몰아붙인다. 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부추김은 더더욱 청년들을 혼맹과 고립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급속한 성장기를 거쳤던 한국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성장과 성공이 가능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양식, ‘정상’ 궤도에서 탈락하고 이탈한 후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환경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런 ‘다른 삶’의 양식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최고의 도구로서 인문학의 필요성을 말하며, 다른 시공간에서 우리의 시공간을 살펴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은둔고립청년은 ‘실패자’나 ‘낙오자’가 아니라
동의할 수 없는 삶에 브레이크를 건 역동적인 존재다
저자는 은둔고립청년을 ‘실패자’나 ‘이탈자’가 아니라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기엔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또는 경쟁 사회에 의해 내쫓겨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바라본다. 경쟁에서 끝없이 이기고, 경제적 주체로서 노동과 생산을 해내고, 계속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정상’ 생애주기에 편입되지 않으면 낙오되는 사회에서,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음을 몸으로 절실히 깨닫고 “자신의 삶에 브레이크를 건”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을 물리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는, 사회의 시각으로 포착되거나 편입되지 않는 각자의 방식으로 도망치고 싸우고 있는 역동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은둔고립청년은 자신이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존재이며, 이들에게는 이 시대에 어떠한 위험이 닥쳤음을 감지해낸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다른 존재’들에게는 세상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경험한 폭력과 그 폭력을 재생산해야만 하는 굴레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은둔고립청년이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살아가는 일, 즉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일에는 역동과 앎이 있다. 실패와 함께 살 수 있다면, 실패가 땅이 될 수 있다면 어둠과 함께 사는 일은 가능하다. 설령 시도했던 모든 것이 좌절되고 도돌이표를 찍는 듯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 책은 ‘탈락’하고 ‘이탈’하고 ‘도태’된 존재로서 살아가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이들의 삶의 궤적을 짚으며 지금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해보기를 제안한다. 또한 존재클럽 안에서 은둔고립청년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관계 맺고 갈등을 해결해갔던 과정을 보여주며, 실패하거나 ‘정상’ 궤도를 이탈하더라도 비난받거나 낙오되지 않는다는 신뢰가 가능한 공동체, 즉 ‘뒷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은둔고립청년은 내가 발 디딜 구체적인 땅이 이 세계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다. 이미 이 구조 속에서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구체적인 관계를 만들어내게 되는 걸까? 그곳은 기존의 사회로부터 살짝 비껴난 곳일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환대해주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환대할 수밖에 없다.”
청년 당사자의 생생하고 통렬한 사회 고발이자
이전과는 다른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제안
이 책은 은둔고립청년 당사자의 목소리와 함께 고립을 만들어내는 사회를 진단하고, 우리가 서로를 인간답게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 양식, 관계와 공동체의 단서를 말한다. 또한 사회가 강요하는 청년의 상과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성장 신화’를 넘어, 우리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와 관계망의 상상력을 촉구한다. “더는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에는 청년 당사자인 저자의 생생하고 통렬한 사회 고발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제안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은둔고립청년뿐만 아니라 오늘날 청년 세대의 ‘시대 감각’인 고립을 직시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짚으며 더 나은 세계와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죽음과 함께 사는 이들은 ‘지배 계급’을 ‘전율’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단결’하지도 않을 것이고, ‘공공연하게’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견해’와 ‘의도’는 ‘감춰’질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함께하는 이 삶의 형식이 “다른 길”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에 이 존재가 파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유령’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하나뿐이다. 또 다른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