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고 할 때, 혹은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가라고 할 때 난감한 점은 예술 창조와 더불어 생계도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쓰며 내 삶은 늘 의미로 충만했지만, 적어도 처음 작가의 길에 들어선 뒤 십 년간은 나를 부양해주는 문제에서 소설은 내 반려견만큼이나 무능했다. 하지만 내가 소설과 반려견을 사랑하는 것은 둘 다 경제적 걱정은 근사하리만치 관심 밖이라는 면모 때문이기도 하다. 잘 모시기만 하면 소설과 반려견은 그 보답으로 무럭무럭 자란다. 집세를 마련할 방도를 알아내는 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_9쪽
사실 내게 이 책의 정수는 과거를 계속 살아 있게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다시 강아지가 된 로즈가 있고, 저기엔 할머니가 계신다. 칼과 내가 처음 만나고, 젊은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전혀 모른다. 운이 좋다면 미래의 어느 순간에 지금 여기 적힌 것들을 보면서, 이때만 해도 내가 얼마나 젊었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앞두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겠지. 그때까지 나는 계속 글을 써나갈 것이다. 지어낸 것들과 실제 있었던 일 모두. 나는 그렇게 내 삶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_24쪽
나는 글쓰기를 사랑했을 뿐 아니라 강렬한 충성심마저 느꼈다. 신발끈을 묶거나 시계를 읽는 일에서는 어리숙했을지 몰라도 내 천직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었고, 이런 확신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본다. 그런 앎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을 꼭 붙들고 절대 놓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내 성장기 동안 내 존재에 목적의식을 부여했고 삶의 우선순위를 알 수 있게 했다. _38쪽
더는 시간을 끌 핑계를 생각해낼 수 없을 때, 미루기가 실행보다 실제로 더 고통스러워질 때, 손을 뻗어 허공의 나비를 잡아챈다. 내 머릿속 한 부분에서 떼어낸 뒤 책상 위에서 꽉 눌러 내 손으로 직접 죽여버린다.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삼차원의 존재를 평평한 종이 위에 넣으려면 그 수밖에 없어서다. 제대로 해낸 것이 맞는지 확실히 하기 위해 핀으로 고정한다. SUV로 나비를 깔아뭉갠다고 상상해보라. 이 살아 있는 존재가 지닌 아름다운 면—모든 색깔, 빛과 움직임—은 전부 사라진다. 남은 것이라고는 내 친구의 바짝 마른 겉껍질, 깨지고 해체되었다가 엉망으로 재조립된 망가진 몸뿐이다. 죽은 나비, 그것이 내 책이다. _47쪽
앨런 거거너스는 연습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내가 실제로 무엇을 잘하는지 스스로 알아낼 수 있도록 엄청난 양의 글을 쓰라고 가르쳤다.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하고 연습한 종이를 쌓아올리다보니, 손과 머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에서도 점점 나아졌다.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연습하다보니 어느 순간 예술에 도달했다. 내 상상 속 아름다운 존재를, 그것을 죽여버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종이 위로 옮기는 법은 결코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그 죽음을 견디는 법을, 그리고 그런 일을 한 나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_54쪽
당신도 한번 해보고 싶은가? 당장 자리에 앉아서 바로 시작하라. 글이 안 써지나? 그래도 계속 앉아 있으라. 이게 아니다 싶은가? 그래도 계속 앉아 있으라. 자신이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는 수도승이라고 생각하라. 신경외과 의사가 되고 싶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라고 생각하라. 그게 가능하냐고? 물론이다. 지름길은 없냐고? 난 찾지 못했다. 글쓰기란 비참하고 끔찍한 작업이다. 그래도 계속해나가길. 그게 세상 어떤 일보다 나으니까. _104쪽
이제 내가 ‘개가 없던 시절’이라고 지칭하는 그 시절이 불행했다는 건 아니지만, 삶이 뭔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했었다.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은 반려견이 있는 삶이 나아도 얼마나 더 나은지였다. 내 인생에, 내 인성에 존재했던 구멍들이 단번에 다 메워졌다. 조건 없는 상호적 사랑이라는 어른스러운 관계를 처음으로 맺게 된 것이다. _128쪽
할머니와 반려견이 서로 구분할 수 없게 되었던 이야기를 쓰는 건 잘못일까? 그 두 존재를 향한 내 보호 본능은 아주 강렬하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고,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라 그 사랑은 특히 순결하다. _188쪽
루시는 자신이 좋아하던 육중한 철학서만큼이나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실제 모습을 정확히 내 머릿속에 담아두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죠. 해가 갈수록 기억이 단순해지리라는 것을요. 결국 더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인물이 될 텐데, 전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제가 열렬히 사랑했던 것은 결국 루시의 객기와 사나움이었으니까요. 그 모든 걸 전부 글로 적으면, 우리 둘의 이야기, 우리가 함께 했던 일과 우정의 이야기를 전부 적으면 단풍나무 잎처럼 책장 사이에 납작하게 눌러 간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_313쪽
나는 치매 병동에서 지내는 할머니와 내가 몇 년 전에 알던 할머니를 연관시키려 애써본 적이 없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북부 캘리포니아에 살던 할머니가 뒷마당에서 메추라기에게 먹이를 주던 기억은 다 없애버렸다. 할머니의 벚나무도, 저녁마다 놀러와 진토닉을 마시던 할머니 친구들도 잊기로 했다. 그 사람, 인형 옷을 조심스레 꿰매주고 S&H 녹색 우표를 너그럽게 나눠주던 사람, 스튜를 끓이고 반려견을 사랑하고 주방 개수대에서 내 머리를 감겨주던 사람, 그 사람은 이제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여전히 바나나를 아주 좋아했고 무척 사랑스러운 기분을 내보일 수 있었다. _365~366쪽
나는 칼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밤 똑같은 집에 와서 똑같은 개를 데리고 똑같은 침대에서 자는데, 세상 모든 집과 침대와 개 중에서 우리가 하필 이 조합을 만났다는 걸 생각해봐.” 이걸 전부 놓칠 뻔했다는 사실, 그것도 내게 있던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그럴 뻔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마치 치명적 교통사고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상의 우리는, 아득한 역사와 바글바글한 세상 속 우리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 점도 못 되는 사실상 보이지도 않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서로가 있다. _4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