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에서
거울 속 남자의 비뚜름하게 말려 올라간 파자마 소매 아래로 팔뚝에 뭔가 보였다.
그는 양손을 공중에 올린 채 왼쪽 팔뚝을 보았다.
근육질의 팔꿈치 바로 안쪽에 숫자와 기호가 늘어서 있다.
‘Level 7 M ―175―a’
살짝 손끝으로 만져 본다. 잡아 본다. 그러나 숫자는 사라지지 않고 기호가 흐릿해지지도 않는다. 피부에 찰싹 들러붙어 살갗에 새겨져 있다.
33p.
제일 앞에 열쇠가 들어 있었다. 아주 작아서 공간은 차지하지 않는다. 공간을 차지한 물건은 따로 있었다.
권총이다.
검고 금속성 광택이 있는 총이 약간 비스듬히 기울어져, 기역자 모양으로 놓여 있다.
53-54p
페이지를 넘겨보니 8월 7일까지 기록이 있고 그다음은 공백이었다.
7일은 딱 한 줄.
‘내일 레벨7까지 가 본다. 돌아올 수 없을까?’
‘돌아올 수 없을까?’라는 글자를 몇 번쯤 되풀이해 묵독했다. 실제로 미사오는 돌아오지 않았고 일기는 여기서 끊어졌다.
67-68p
에쓰코는 생각했다. 대체 한 인간이 일어설 수 없게 될 때까지 지치도록 일해야 하는 법 따위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가. 한 인간을 그렇게까지 부려먹을 권리가 누구에게 있다는 말인가.
죽은 날 밤, 도시유키가 철야로 일한 이유는 다음다음 날인 12일부터 회사 전체가 열흘간 여름휴가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휴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규칙이다.
그러나 휴가 동안 밀리는 일을 누군가 대신 떠맡아 줄 리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도시유키는 여름휴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죽었다.
73p
아이가 술에 취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목소리가 또렷하지 않다. 마치 잠이 덜 깼을 때의 유카리 같다.
“신교지 씨.”
주문처럼 에쓰코를 부르며 전화의 목소리는 말했다.
“……구해,”
거기서 끊어졌다.
13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