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영재학교를 졸업한 수재였지만, 대화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결혼 전에는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결혼 후에는 벽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왜 모든 걸 일일이 논리로 설명해야 하는지, 왜 내 감정이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4p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을 남편은 알지 못했고, 내가 아무리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어도 그런 나를 이해하지도, 같이 화를 내지도 않았다. 14p
‘그렇다면 이 사람은 자폐일까?’ 그 질문이 내 신경다양성 공부의 시작이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다른 우리의 방식과 서로의 차이를 그가 상처받지 않고 수용할 수 있게 알려주고 싶었다. 16p
나는 신경다양성 공부를 거븓하며 알게 되었다. 남편의 불안, 강박, 감정 통제의 어려움, 그 모든 것이 ‘성격’이 아니라 ‘특징’이었다는 걸. 그는 자신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해 왔고, 다른 그 누구도 그를 이해해주지 못했다. 평생 자신을 그저 감추고, 회피하고, 부인하며 살아온 것이었다. 17p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의 차이다. 이 차이를 ‘신경다양성’, 또는 조금 더 직관적으로는 ‘뇌다양성’이라 부를 수 있다. 각자의 뇌가 세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건 ‘이상함’이 아니라 ‘인간 다양성의 한 형태’다. 19p
우리의 세계는 너무 달랐고, 그 차이를 모른 채 서로를 힘들게 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감각이 보편적이라 여기며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감각의 기준부터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38p
자폐스펙트럼이 있는 사람에게 루틴과 순서, 그리고 어떤 일에서든 ‘예측 가능성’은 그가 숨 쉬는 공기와 같다.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를 반쯤은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2p
ADHD와 절제력의 부족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했다. 어떤 일에 몰입하면 끝을 보려는 성향 때문인지 절제가 어렵다고들 했다. 87p
실제로 많은 신경다양인들은 자폐, ADHD, 강박, 난독증, 운동협응의 어려음 등을 두 가지 이상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87p
자폐 성향이 짙은 사람에게 말은 종종 맥락이나 뉘앙스를 동반하지 않는다. 말은 말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그 결과는 때로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쓸데없는 고집이거나 의도적인 반항은 아니다. 그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137p
많은 신경다양인의 자전적 에세이는 있지만, 그들을 곁에서 바라본 사람의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그들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198p
나는 성인이 꼭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223p
그런데도 나는 스누피를 이해하려 할 때마다 ‘이건 자폐 때문이구나’ ‘이건 ADHD 때문이구나’ 하며 끊임없이 ‘단정’지었다. 그와 나를 구분하고, 이해를 가장한 ‘선 긋기’를 하고 있었다. 228p
아버지의 ‘경직된 사고’ 뒤에는 그의 불안이 짙게 깔려 있었을 것이다. 232p
그의 뇌와 신경물질이 작동하는 방식이 생각보다 훨씬 깊이 그의 삶에 관여하고 있었다. 소량의 약 한 알이 불러온 변화는 그간의 나와 그의 일상과 감정, 태도까지 크게 흔들었다. 250p
초록 알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 스누피와 나는 정체성에 대해 몇 번 얘기한 적이 있다. 무엇이 ‘진정한 나’인가에 대해. 하지만 그건 존재와 관한 쉽지 않은 물음이었다. 세상을 보고 느끼는 방식, 삶을 대하는 방식, 사람에 대한 반응이 달라졌다면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259p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성인이 자폐 진단을 받는 일이 반드시 큰 의미를 갖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자폐 성향이 있는지를 아는 것은 오히려 자기인식을 높이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265p
한 사람의 성격과 신념은 교육, 환경, 관계 속에서 형성되지만, 그 바탕에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뇌의 고유한 리듬이 깔려 있다. 279p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밀도’를 가진 존재들이다. 생각의 밀도, 감각의 밀도, 감정의 밀도, 이 밀도들의 조합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그 차이가 곧 인간 스펙트럼을 만든다. 인간의 감각, 인지, 정서, 사고는 단일할 축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 여러 방향의 결이 겹겹이 포개져 만들어내는 다차원적인 구조다. 283p
겉으로는 비슷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 안을 구성하는 수많은 빛의 조합은 각자 완전히 다르다. 한 사람을 그 어느 한 면만으로 평가하거나 이해해서는 결코 안 되는 이유다. 28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