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
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이데거는 vermeiden[피하다]이라는 일상어를 여러 번 사용한다. 피한다éviter, 도망친다fuir, 달아난다esquiver. ‘정신esprit’ 혹은 ‘정신적인spirituel’이라는 단어들이 문제가 될 때 이것들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보다 분명히 말하자면 esprit와 le spirituel이 아니라 Geist, geistig, geistlich가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물음은 전적으로 언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독일어들은 번역될 수 있는가? 달리 말해 우리는 그것들을 피할 수 있는가?
p.49
그런데 하이데거가 결국 ‘정신’이라는 단어를 끌어들이는 것은 이러한 근원적인 시간성을 설명하려고 하는 바로 그때다. 그는 두 번에 걸쳐서, 그러나 인용부호 사이에 두 번에 걸쳐서 정신을 끌어들인다. 방금 우리는 이러한 인용부호가 현존재의 공간성의 분석에서 ‘geistig’를 둘러싼 인용부호와 유사할지라도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는 시간이 갖는 자명한 특권에서 비롯된다. 『존재와 시간』의 원래 기획에 따르면, 시간이 실존론적인 분석론의 초월론적 지평, 즉 존재의 의미의 물음과 이 물음에 관련된 모든 물음의 초월론적 지평을 형성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p.89
내가 논의하고 싶은 명제는 이러한 곤란들이 하이데거의 담론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어떤 중대한 담보가 그것의 모든 귀결과 함께 하이데거의 사유 전체에 부담을 주는 상태를 초래한다. 이러한 담보는 하이데거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의 애매성 내에 가장 크게 집중적으로 존재한다.
p.125
정신이란 무엇인가?
하이데거가 마침내 인용부호를 제거하면서 정신에 대해서[정신으로부터, de l’esprit], 그리고 정신의 이름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때인 1933년부터 하이데거는 Geist의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어 왔던 것처럼 보인다.
정신이란 무엇인가? 1953년에 [하이데거가 제시한] 궁극적인 답은 정신은 불, 화염, 불태움, 함께 불탐conflagration이라는 것이다.
이 답은 따라서 20년 후vingt années plus tard에 제시된 것이다. 얼마나 오랜 기간인가!
p.150-151
그 외의 언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이데거를 비난하는 사람에 대해서 하이데거라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하이데거는 아마 우선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마 자신이 자신의 언어 안에서 사유하는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 밖에서는 사유하지 않는다― 것은 이렇게 서로 번역이 가능한 삼각형 안에 위치하고 있다. Geist는 pneuma와 spiritus보다도 근원적인 의미를 갖지만, 이것[Geist]은 역사적으로 독일의 사상가가 이 공간에 거주하는 한에서의 하나의 번역 관계 내에, 오직 이 삼각형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장소 밖에서 사람들은 분명히 적어도 이것과 동등한 존엄성을 갖고, 매혹적인 유비를 부추기는 모든 종류의 의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pneuma, spiritus 혹은 Geist에 의해서 번역하는 것은 이렇게 서로 동화된 언어들에는 부당하며, 궁극적으로는 폭력적인 경솔함의 소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