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일상과 생각을
아이들의 목소리로 해맑게 그린 동시집!
동심이 가득한 세계로 어린이들을 초대해 온 청개구리 출판사의 동시집 시리즈 〈시 읽는 어린이〉 116번째 도서 『햇빛 세탁소』가 출간되었다. 시와 동시, 그림책 등 넓은 문학 스펙트럼을 가진 양은정 동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양은정 동시인은 “고추장을 품어 안은 순창”의 어느 섬진강 강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까지도 순창을 떠나지 않는 걸 보면 고향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햇빛 세탁소』에는 순창을 떠올리게 되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장군목 요강바위」「힘센 돌멩이」「섬진강 미술관」「섬진강」 등 섬진강이나 지역 명소에 대한 작품을 읽다 보면 순창에 다녀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래도 ‘순창’하면 뭐니 뭐니 해도 고추장이 아닐까. 양은정 시인도 이에 대해 「발효의 시간」「장독대」「순창 고추장」「살아 있는 된장」 등으로 그려냈다. 단순히 고추장에 그치지 않고, 고추장과 된장이 발효되는 시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들이다. 그중 동시집의 초입에서 독자들을 맞이하는 「발효의 시간」을 살펴보자.
순창 할머니가
장독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보이며
―요렇게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달을 보고
그래야 좋은 균이 생긴단다
썩지 않고 좋은 균이 나오는
마술 같은 장독 안에서
날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해님 달님만 아는 비밀이라고
오래오래 품어야 나오는 비밀
할머니가 그랬다
된장, 고추장, 간장독 열어 보며
―이제 됐다!
할머니 입에서
이 말이 나와야 합격이다
―「발효의 시간」 전문
맛있는 장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낮에는 해를 보고/밤에는 달을” 봐야 한다거나, “오래오래 품어야” 한다는 것이 순창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비법을 기대한 독자들에겐 조금 허무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품어 안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렵지 않을까? 양은정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10여 년 동안 캄캄한 항아리 안에 넣어 두었던” 자신의 동시에 대해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장독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보”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시인 자신의 모습이 엿보인다. 아마도 시인은 자신의 작품들을 매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마술’과도 같은 발효의 시간을 거쳤을 게다. 결국 “이제 됐다!”는 외침이 이 동시집을 이루어내지 않았을까? 해설을 쓴 이준관 시인 역시 “시어 하나 하나, 표현 하나 하나를 정성껏 갈고 다듬어서 그의 동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정갈하고 단아”하다고 하였다.
『햇빛 세탁소』에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상상력과 동심으로 빚어낸 동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빨랫줄에 걸린 가족들의 빨래가 마르는 풍경을 평화롭고 정겹게 그려낸 표제작 「햇빛 세탁소」 외에도 「제트기 지나간 자리」「초승달」처럼 익숙한 하늘을 상상력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 작품도 눈에 띈다. 또한 「인사」「논밥」「나무 그늘」「왕자두나무 과수원」등 자연과의 교감을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들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은 익숙한 자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엄마빵이 방바닥에 누웠다
나는 얼른 엄마빵 위로 올라가 고기가 되었다
동생은 양상추라며 내 위에 올라간다
엄마빵이 움직인다
꿈틀꿈틀 흔들흔들
앗, 햄버거가 무너지면 안 되는데
―아빠빵, 빨리 오세요!
나는 출장 간 아빠를 불렀다
―「햄버거 만들기」 전문
양은정 시인의 작품에는 아빠가 부재하는 가정이 자주 등장한다. 「햄버거 만들기」는 그러한 작품 중 하나다. 출장 간 아빠를 그리워하는 어린 화자의 마음이 느껴지지만 어둡지는 않다.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인 ‘나’와 양상추인 동생이 올라간 탓에 엄마가 흔들리긴 하지만 위태로운 느낌은 아니다. 함박눈 내리는 아침에 “눈뭉치 동글동글 굴려/손자손녀 만들고/둥글둥글 굴려 아들딸 세우고/하늘나라 가신 할아버지까지//나란히 세워 놓고/합죽합죽 웃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린 「눈사람」 역시 비슷한 이미지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그리움마저도 놀이로 승화시키는 인물들에서 시인이 가진 긍정의 힘을 엿보게 된다.
『햇빛 세탁소』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선배가 시를 쓰고 후배들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자신이 졸업한 모교 어린이들의 그림을 함께 동시집에 담은 시인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