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대 문학상 ‘준마상(骏马奖)’ 수상작
중국 소수민족문학의 가장 높은 성취
『처마에 걸린 달(檐上的月亮)』 한국어판 출간.
중국 이족(彝族) 출신 여성 작가 아웨이무이뤄(阿微木依萝)의 준마상(骏马奖) 산문 부문 수상 작품집 『처마에 걸린 달(檐上的月亮)』(이영남 역, 문학들)이 출간되었다. 준마상은 중국 소수민족문학의 가장 높은 수준을 대표하는 상이다. 아웨이무이뤄는 이 작품집을 통해 일약 중국 중견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에세이를 중심으로 장르적 성격이 혼재된 32편의 작품에는 작가의 실제 체험에서 비롯된 생생한 경험적 현실이 담겨 있다. 특히 1990년 전후로 진행된 개혁개방의 파고와 이주에 따른 두려움, 호기심 등이 공동체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극사실적인 묘사의 밀도 위에 상징과 은유를 얹어, 한 편의 산문을 읽는 동시에 성장소설 혹은 사소설을 읽는 듯한 긴장과 몰입을 만든다.
유년의 기억과 공동체의 서사
표제작 「처마에 걸린 달」은 “유년기의 기억을 향토적 서정과 상징으로 풀어낸 기억의 서사”다. “머리카락(发)-할머니, 눈(眼)-큰어머니, 코(鼻)-셋째 숙모, 입(嘴)-진 씨네 할머니, 귀(耳)-큰아버지, 허리(腰)-비투네 어머니, 어깨(肩)-어머니” 등 신체적 상징을 나타내는 일곱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자의식이 강한 소녀를 둘러싼 유년기의 기억과 사람 들을 불러낸다.
각 인물의 신체성을 드러내는 단어를 상징으로 하여, 개인적인 신체적 결함을 비롯하여 생활의 끈기, 지참금·도피혼·납치혼 등 이족 결혼 풍습, 그리고 가족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비롯한 생활사의 풍속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소녀의 자의식과 성장의 내력은 단지 개인의 역정이 아니라, 정체성의 원형으로서 공동체 삶의 구조로 확장된다. 뒤에 이어지는 「낙엽」은 최초의 마을 이주자인 넷째 삼촌의 가계를 통해 회고하는 ‘떠도는 이족들’의 현재이자 자화상이다.
나는 원래 고향을 떠난 삼촌을 원망했었다. 만약 고향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면 사촌 동생의 공부 뒷바라지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고는 침묵하고 말았다.
벽돌공장에 온 뒤로 사촌 동생은 작은 소처럼 억척같이 일했다. 그의 머리는 언제나 먼지로 가득했다. 그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벽돌 찍는 작업장에서 일했다. 날마다 출근할 때면 그는 어른 같았다. 하지만 바지 뒷주머니에는 울트라맨 장난감을 넣고 다닌 것을 본 순간 나는 사촌 동생이 14살밖에 안 되는 소년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 「낙엽」 중
척박한 자연과 산골 마을 인물들의 일대기
「가뭄 든 땅」과 「라이더」에는 산골 마을에서 생을 이어 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작가의 고향으로 유추되는 공간 중에서 마오포는 가장 구체적인 지명으로, “처마에 걸린 달”과 같은 고산지대(高山地带) 생존 환경에서의 노동과 생활상을 묘파하고 있다. 특히 자연 환경에서 오는 고통과 이에서 비롯된 산골 마을의 공동체적 삶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곳에서 살면 돈이 많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너무 가난하게 살다 보면 삶이 그대의 살가죽을 벗기거나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차이빙(菜饼, 야채 전병) 선생처럼 라이더(骑手, 배달기수)로 살아야 한다.
- 「라이더」 중
비투네 어머니는 젊었을 때 라오까오산(老高山)에서 살았다. 그곳 여자들은 모두 물을 머리에 이고 날랐는데 소처럼 머리에 멜빵 줄을 걸었고 그 뒤에 물통이 달려 있었다. 산길이 험하고 미끄러워 걸을 때면 발가락으로 땅을 꼭 잡아야 했기에 그녀의 발가락은 목수가 처마도리에 박는 고리못처럼 변형되어 있었다.
- 「처마에 걸린 달」 중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오는 고통과 이에서 비롯된 인간적 불화를 겪으며 “전에 떠났던 사람들보다 더 결연”하게 다시 사람들이 떠나는 와중에도 “조상들의 강한 의지가 이들의 뼛속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제자리에 뿌리박힌 사람들도 있다.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풀을 짊어지고 돌아오는 여인들은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달빛이 이들이 짊어진 풀잎 위에 떨어졌다. 그 외에도 이들의 발끝도 비췄는데 사람들은 자기 발끝만 보면서 걸었다. 이들의 얼굴은 풀 더미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도 달빛에 물들어 희미해진 땀 몇 방울만 눈에 띈다. 어쩌면 그건 땀이 아닌 이들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여인들은 밤에 주로 눈물을 흘린다. 이런 눈물은 마음먹기에 따라 참을 수도 있다.
- 「가뭄 든 땅」
이들은 산골의 공중에 불어온 바람을 타고 운명적으로 이곳에 뿌려진 씨앗과도 같다. 세대를 거듭하며 종족의 삶을 이어온 것은 조상에 대한 존중이며 그 자체로서 삶의 가치를 누리거나 증명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떠도는 이족(彝族)들의 현대사
「보부상 삼인」, 「이용원」, 「떠도는 이족들」, 「유목민」은 작가가 거쳐온 삶의 역정을 따라 노점상–비숙련(보조공)–숙련공의 과정을 현실의 질감으로 기록한다. 아웨이무이뤄는 16세 이후 보부상이나 농민공으로 10여 년을 떠돌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시절의 경험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불시에 찾아든 고향 친구 “즈가(子嘎)”와 신혼인 그의 아내 이뉴(依妞)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교육과 언어의 장벽, 문식성(literacy)의 획득 여부가 개인의 생존 가능성을 가른다는 사실을 전한다.
“나도 말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한어를 모르고, 보똥(东/通)화도 못 한단 말이야.” 이뉴는 이족 말로 나한테 설명했다.
나는 그녀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편직기를 다루는 일은 육체노동이었다. 하지만 힘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도면도 볼 줄 알아야 하고, 바늘의 개수도 알아야 하며, 표기할 줄도 알아야 했다. 하지만 이뉴는 이런 걸 몰랐다. 산수 실력이라 해 봤자 머릿수건 안에 보관하고 있는 153위안 2지아오를 셀 수 있는 정도였다.
- 「떠도는 이족들」 중
소통되지 않는 슬픔은, 이들을 궁지에 몰고 사회적 적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의 노동력은 값싼 일거리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있어 “떠돎”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사회적 진입과 배제의 드라마다.
「유목민」은 떠돌이 생활을 회고하는 지점으로, 인간인 이상 모두가 “유목민”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들추어낸다. 작가의 나이 30대 초‧중반으로 짐작되는 이 시기에, 남편은 수시로 귀향에 대한 원망을 내비친다. 그리고 작가의 내부에서도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곳에 살기 시작한 이듬해부터 많은 글을 썼다. 이 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삶의 여정이었으며 반평생을 유목하며 남기는 발자취이다.
나의 반평생을 되돌아보면 공장의 작업 라인과 이용원 그리고 니트 공장의 풀기 어려운 실타래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퉁샹(桐乡), 우전(乌镇), 푸양(富阳), 저우치왠(洲泉) 등을 종종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그 지역은 다른 사람들의 고향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타인의 고향을 자주 그리워한다. 내가 떠나기 아쉬워했던 곳들이 타인들의 고향이었으니, 곧 타향이 나의 고향이었던 셈이다.
- 「유목민」 중
주술적 리얼리즘 : 일상 속의 환몽(幻夢)
라틴아메리카문학의 특징 중 하나를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했을 때, 이를 동양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주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적합하겠다. 작가의 작품 속에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등의 독서 흔적이 보이는데, 이 부분에서는 카프카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울고 있던 남자의 어깨는 어느새 차창에 가려진 그림자에 묻혔다. 그 몸의 반은 등불에 노출되었고, 다른 반쪽은 차창에 바짝 붙이고 있었는데 그 부분이 검은 사막처럼 느껴진다. 그 검은색은 창밖의 어두움과 뒤엉켜 하나가 되면서 마치 근친(近亲) 사이처럼 보인다.
- 「기차 안의 남자」
나는 물론, 나 자신을 속이고 싶었다. 나는 친구가 그렇게 갑자기 말끔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 다시 친구를 보니, 그는 두 발로 걷는 게 아니라 땅에 누운 채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 「되돌아가는 길」
일상의 기묘하고 섬뜩한 장면들이다. “울고 있던 남자”는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자 이미 죽은 사람일 수 있다. 「되돌아가는 길」에서는 죽었다고 들었던 그가 찾아왔다. 살아 있는 그가 온 것인지, 죽은 뒤에 그의 혼이 찾아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환몽 속에 살면서 일상이라 여기는지, 일상 자체가 환몽인지 알 수 없다.
야맹증(夜盲症)」, 「실종자(失踪者)」는 극적(剧的)인 플롯을 가지고 있다. 연극 무대처럼 거미줄이 처진 어두운 복도를 지나서 다시 만난 야맹증을 앓는 두 남녀, 연립 주택의 복도에서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시선과 실종자 그리고 스스로가 실종 상태인 줄을 모르는 복도에 모여 있는 사람들, 작가는 우의(寓意)적인 방법으로 고독한 실존자들이 야기하는 기묘한 상황을 극화하여 보여 준다. 「실종자」에 나오는 남편의 기묘한 모습은 아웨이무이뤄 버전으로 또 다른 모습의 ‘그레고르 잠자’이다.
이번 『처마에 걸린 달』 한국어판은 현 광시(广西)사범대학 외국어학원 조선어과 정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이영남 씨가 번역하였고, 2025년 봄부터 염창권 문학평론가의 교정·윤문, 문화적 보완을 거치며 완성되었다. 중국어(고립어)와 한국어(교착어)라는 언어적 차이 속에서 원문의 문체 효과를 손상하지 않기 위한 세심한 협업이 이어졌고, 그 결과 『처마에 걸린 달』은 중국 소수민족 공동체의 삶과 현대 도시 노동의 풍경, 그리고 문학적 아우라를 머금은 작품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