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할 점은 빨간 헬리콥터의 움직임! 헬리콥터는 홈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정해진 지점에 착륙해 실어 온 짐을 내려놓자마자 다시 이륙한다. 행여 방심했다가는 큰일. 넋 놓고 있다가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을 놓칠 수 있다.
전기가 다시 켜지기까지 1분 10초, 그리고 울타리의 높이 3미터 10센티. 이것이 마의 숫자! 13홈을 나가려면 기억해야 한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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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외출하거나 돌아올 적마다 엄마는 베란다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늘 웃는 얼굴로. 때로는 동네 떠나가라 딸 이름을 부르곤 했다.
“창피해. 내가 애야? 베란다에 그만 나와, 엄마!”
“뭐가 어때? 잘 배웅해 줘야 다시 돌아오지. 또 이름 부르며 맞아 줄 사람이 있어야…… 네가 신나서 집에 들어오지.”
딸을 기쁘게 보내고 맞아 주는 게 엄마만의 따뜻한 철칙이었다. 가끔 경민은 엄마를 킹콩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앤이라 놀려 댔다. 킹콩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 앤이라고.
“어떻게든 빨리 가야 해. 엄마가 계속…… 기다릴 텐데.”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 경민의 눈시울이 어느새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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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민의 호방한 웃음과 가벼운 손짓 한 번이면 콧속까지 침범한 죽음의 향취가 피시식 증발하는 게. 경민은 헤이에게 만병통치약이었다. 경민만 있으면 손가락 끝까지 온기가 돌았다. 팔팔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몰라? 이젠 네가 내 가족이야. 너 가면 난 또 혼자야. 가지 마, 제발!
상실감이 급류처럼 몰아닥쳤다. 헤이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떠나지 말고 영원히 함께 있자고, 친구를 설득할 만한 말주변조차 없는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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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 이젠 홈이 우리 집이야.”
“우리 집 아니에요!”
“생각해 봐. 처음부터 네가 태어날 집을 골라 태어난 건 아니잖니. 홈이 그런 거지. 넌 홈을 선택할 수 없어. 싫어도 이게 네 운명이야. 거스를 수 없단다.”
살살 달래는 어른의 음성은 묵직하고 서글펐다. 제자를 타이르는 중에 불현듯 잃어버린 제 가족을 떠올린 걸까. 새로운 가족에 적응하라 충고하는 양 샘도 예전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은 어쩌지 못했다.
가족이 있는 집. 스위트 홈. 그러나 13홈은 ‘스위트’ 하지 않다. 푸근하지도 따스하지도 않다. 기본적인 의식주는 제공해 주나, 가장 중요한 게 결핍되었다. 그래서 자꾸만 달아나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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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훔쳤다! 헤이는 뿌듯했다. 앞으로는 화장품이 아니라 저런 걸 훔쳐야겠다. 자신의 못된 짓이 처음으로 대견했다.
“잘 있어. 필광이 너도 천천히…… 죽어. 아주아주 천천히.”
헤이는 필광이 던진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었다 천천히 죽어.
이건 죽으라는 말이라기보다 제발 살라는 부탁에 가까웠다. 필광의 희망대로 방사능 수치가 낮아져서 안전도시로 들어갈 때까지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 보라는 바람이었다. 고약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약을 팔아먹으며 안전도시를 꿈꾸는 필광, 악하디악한 그를 끝내 미워할 수 없었다. 필광 또한 부모를 잃고 외톨이가 되어 버린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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