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군이 충주를 침략하자 다인철소 사람들은 철광석, 제련한 철, 무기, 제철시설 등을 몽골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일치단결해 싸웠다. 지도자도 없었고, 칼과 창마저 떨어지자 철소의 하층민들은 호미와 낫을 들고 싸웠다.
저항의 역사는 피에 스며든다. 동학 농민들 또한 호미와 낫을 들고 일어났고, 대나무를 잘라 죽창을 만들며 제 목숨을 걸기로 맹세한 것이다.
(4장 「굶주린 자는 먹인다」에서)
고산지대의 하늘은 수시로 색이 바뀌었다. 청록색이었다가 물색이었고, 푸르다가 잿빛이었다. 바람엔 묘한 기운이 실려 있고, 머리 위로는 안개가 흘러갔다. 골짜기에 들어서면 풀과 나무들이 바람에 쓸리는 메아리가 일어났고, 골짜기를 벗어나면 하늘과 땅이 위잉 이윙 하며 호흡을 주고받는 소리를 들려줬다. 둘은 조선의 마지막 능선을 따라 걷다가 이내 혼강(渾江, 훈강)이 흐르는 협곡에 다다랐다. 강물은 잔잔했지만, 그 깊이는 짐작할 수 없었다. 먹물을 푼 듯한 회청색 물이 소리를 삼키고 흘렀다.
(5장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서)
그는 이름을 김구(九)로 바꿨다. 구는 숫자라기보다 결기였다. 그는 다짐했다.
‘무어라 단정할 수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숫자 구(九), 그 숫자를 이름에 넣은 사람은 꺾이지 않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
그리고 연하(蓮下)라는 호를 백범(白凡)으로 고쳤다. 백정(白丁)과 범부(凡夫) 두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백범’이라고 지었다. 그들 모두 나라를 사랑해야 우리가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 그들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 살아간다.
김구는 유치장 마당을 빗자루로 쓸 때나 유리창을 닦을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했다.
“우리도 언젠가 독립정부를 건설해 제가 우리나라 정부 건물 마당을 쓸고, 창문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주십시오.”
(7장 「서대문감옥」에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한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게 많은 혁명가가 나왔다. 독립운동가와 투사, 그 아류와 난류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실력을 겨루고, 칼을 꽂거나 총을 난사했다.
이런 삼각파도의 한복판에서 백범은 모두의 중심이었다. 마마 자국이 있고 광대뼈가 발달한 고집스런 얼굴, 두툼한 손바닥의 힘으로 상징되는 김구의 열정과 고집, 이런 것이 하나의 서사를 이루고 있었다. 모든 혁명 난류들은 김구의 그 힘을 민족 의기의 표상이라고 인정했다.
(11장 「김구 암살작전」에서)
밥은 하늘이 낸 음식이다.
땅의 힘과 인간의 땀으로 만들어진 밥은 생명을 살리는 하늘을 닮았다. 밥은 순리이기에 고맙다. 밥이 입에 들어올 때 사람들은 그 오묘함을 생명의 맛이라고 여긴다. 오랜 시간을 굶은 사람이 한 그릇의 밥을 먹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너그러움과 감사함이다. 밥심으로 너그러워지고, 전신으로 퍼지는 혈관의 생동함에 감사한다. 밥을 먹은 나그네는 노동으로 그 고마움에 답한다. 밥은 하늘을 닮아 인간을 자랑스럽게 만든다.
(14장 「대가족」에서)
백범의 말은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늙은 투사의 독백이었다. 그가 저음으로 ‘독립’을 말하는 순간 청년들은 깨우쳤다. 아니, 깨우치기 전에 보았다. 선배 독립운동가들의 늙은 등허리를! 청년들은 그 야윈 등허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국에서 바친 고통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17장 「빛의 방향으로」에서)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봄기운이 가득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되 그것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는 자유다. 힘든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23장 「비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