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걷어내다 보니, 놀랍게도 좋아하는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미켈란젤로가 남긴 유명한 말처럼요.
“조각상은 이미 대리석 안에 완성되어 있다. 나는 그저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려 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취향을 찾기 위해 새로운 것을 자꾸 더하려고 해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시도해야 알 수 있을 거라고 믿죠. 물론 다양한 체험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기도 해요. 하지만 취향이란 조각하듯 불필요한 것, 싫어하는 것들을 깎아내는 과정에서 또렷해지기도 하더라고요.
취향(趣向), 한자를 풀어서 보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라는 뜻이에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반대로 가기 싫은 방향이 어딘지를 먼저 찾아보는 것도 괜찮아요. 내게 맞지 않는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다 보면, 이미 내 안에 완성되어 있던 나만의 취향을 생각보다 빨리 발견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자,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해볼까요? Y 님은 어떤 음식을 싫어하나요?
_2장 ‘싫어하는 것을 건져내면, 좋아하는 게 남습니다’ 중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우리 삶에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답니다.”
기록을 이어가는 8월 한 달 동안은 알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노트를 펼쳐 딱 한 줄의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날은 책상에 앉아 토마토와 그릭요거트를 섞으며 건강한 하루를 살아보겠노라 다짐하고 있었고, 어떤 날은 거울 앞에서 외출할 때 무슨 옷을 입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더군요. 또 다른 날엔 출근하는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걸고 있었고요. 한 달이 지나 빼곡하게 채워진 서른한 줄의 일기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나지막이 내뱉은 말이 있었어요.
“정말, 매일 달랐네.”
멀리서 보면 같은 색인 나뭇잎도 가까이서 보면 저마다 다르잖아요.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도 잠시 멈춰 바라보지 않으면 그저 똑같은 하루로 느낄 뿐이더라고요. 8시에 남긴 한 줄의 기록은 무심히 흘려보낼 뻔한 제 하루에 꽂아두는 작은 책갈피가 되어주었어요.
_4장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면’ 중에서
가족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식탁 위에 작은 조명 하나를 켜두고 앉아 있는 H 님의 뒷모습을 그려봅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대는 부엌에서 펜을 들었다 놓기를 수십 번 반복하셨겠지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들은 분명 있는데 차마 종이 위에 내려놓지 못한 채요.
우리는 부단히 구겨진 마음을 다림질하며 살아갑니다. 굳이 남들에게 구겨진 옷자락을 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왕이면 괜찮은 어른, 긍정적인 사람, 현명한 엄마로 보이면 좋잖아요. 문제는 이 습관적인 다림질이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 앞에서조차 멈추지 않는다는 거예요. 누군가 볼까 봐 혹은 나중에 내가 보고 실망할까 봐 울퉁불퉁하고 모난 날것의 마음을 본능적으로 숨기고 싶어집니다. 결국 빈 페이지로 남겨두거나 마음에도 없는 멋진 말을 쓰며 하루를 포장하기도 하죠.
_5장 ‘어떤 기록은 사라져야 비로소 완성된다’ 중에서
종이 뒷면이 오돌토돌하게 만져질 만큼 한 자 한 자 눌러 쓴 노트에는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어요. ‘2023년 8월 17일 8,246.’ 왼쪽 칸엔 날짜, 오른쪽 칸에 기록된 건 걸음 수였죠. 걸음 수를 왜 매일 적으시는지 여쭤봤어요.
“제가 뇌출혈로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해야 하거든요. 걸음 수를 매일 쓰고, 월말엔 총 얼마를 걸었나 합계를 내요. 걸음 수만큼 남편이 용돈을 주거든요. 재미도 있고, 용돈도 받고, 건강도 챙기니 1석 3조예요. 숫자가 적은 날엔 ‘내일은 조금 더 걸어야지’ 다짐도 하고,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컨디션도 체크하고…, 아주 좋습니다.”
8,246. ‘건강을 위해 노력했다’거나 ‘귀찮음을 뒤로하고 걷기에 성공했다’는 문장보다 더 묵직함이 느껴지는 기록이었어요. 아픈 몸을 일으켜 기어이 운동화 끈을 조여 매는 시간, 무거운 현관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서는 의지, 수첩에 걸음 수를 적으며 오늘을 살아낸 나를 쓰다듬고 내일의 나를 위해 다짐했을 마음까지…. 숫자 안에는 그분이 살아낸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_14장 ‘하루가 텅 빈 백지 같다면’ 중에서
일기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어요.
“나에게 행복이란,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소풍 가서 김밥 먹고 노는 당일보다, 가방을 싸면서 잠 못 들던 전날 밤이 훨씬 더 설레잖아요. 엄마가 손질하는 김밥 재료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하고요. 다가올 내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간질간질했던 그 기분. 행복에 어떤 모양이 있다면 엄마 옆에서 몰래 집어 먹던 못생긴 김밥 꽁다리처럼 생기지 않았을까요? 예쁘지 않아도 맛있고, 완벽하지 않아도 자꾸만 손이 가는 김밥 꽁다리 말이에요.
소풍 전날의 마음을 빌려, 그 김밥 꽁다리 같은 설렘을 기록하기로 했어요. 내일 일어날 기분 좋은 일을 상상해서 적고(주문), 문장 끝에 미리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이는 거예요(결제).
_20장 ‘내일의 행복을 미리 주문합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