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명희가 『세상의 모든 K』에서 실험하는 것은 성에 대한 사선(斜線)의 서사다. 사선은 도달을 전제하는 경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속 비껴가도록 설계된 기울기다. 소설의 인물들은 성을 향해 수직적으로 상승하지도, 수평적으로 정착하지도 못하고, 사선으로 접근하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한다. 사선이란 욕망하고 지향하되 거부되고 추방되는 세계에서 행해지는 유일한 이동 방식이다.
소설집의 첫번째 성은 ‘고시원과 오피스텔’이다. 고시원은 이름 그대로 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공부하며 잠만 자는 정도의 임시 주거지였으나 이제는 그 유래가 무색할 정도로 가장 저렴한 방을 구하는 불특정 다수의 거처로 바뀌었다. 「파라다이스 시티 역」은 코로나로 인해 인천공항을 둘러싼 상권과 주거지가 유령도시처럼 멈춰버린 팬데믹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고모의 오피스텔은 파라다이스 시티 역에 있다. 이 외래어 역명과 더불어 운행 중지 상태인, 공항과 해변을 잇는 공중의 자기부상열차는 낡은 고시원이 난립해 있는 서울의 달동네와 견줄 때 “달나라에 건설된 신도시”다. 고모는 세입자가 만기가 되어 나가면 관리비만 부담하는 조건으로 지훈에게 오피스텔을 몇 달간 써도 좋다고 제안한다. ‘미래 도시’, ‘타임머신’, ‘낯선 행성’, ‘샤갈의 그림’, ‘필립 글래스풍 선율’과 같은 지훈의 표현은 그가 파라다이스 시티 역의 오피스텔을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으로 체감하는지를 알게 한다. 그러나 황제와 소주잔을 주고받던 고시원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오피스텔에서 지훈은 허공에 홀로 있는 듯한 적막을 느낀다. 공항과 호텔과 골프장 그리고 바닷가 관광지가 내려다보이는 오피스텔은 고고한 성이다. 그리고 도시의 밤은 가로등, 네온사인, 자동차, 아파트 등 “온갖 불빛이 다 함께 모여 어둠을 밝히기 때문에 휘황”한 것이라는 낭만적인 문장은 고유한 아이덴티티들의 공존이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집약한다.
두번째 성은 ‘아파트’다.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자산에 따라 입성할 수 있는 아파트 계급도가 존재하고 소득, 직업, 교육 등 전방위에 걸친 사회적 위상도 서열화되어 있다. 따라서 부동산 불패 신화에 대한 믿음은 온갖 규제를 뚫고 더 융성한다. 거주지의 위치와 가격이 거주자의 지위와 자본을 표현하는 한 성벽은 더 높아지고 사다리는 자주 끊어질 것이다. 「갭」의 주인공 수민은 항공사 승무원으로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나체로 춤을 추면서 해방감을 누린다.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각자 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수민은 건설사 부도로 소유권이 신탁회사로 넘어간 이 아파트를 시세의 절반 가격에 임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위층에서 기계음이 들린다. 어른 키만 한 종이 박스들이 복도에서 사람의 진입을 막고 있는 섬찟한 미분양 아파트였기에 드디어 누군가 이사를 온 것 같아 반가울 따름이다. 아이가 뛰는 소리며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등 위층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는 수민으로 하여금 단란한 가정을 연상하게 했다가 이내 경비실에 민원 전화를 걸게 되는 계기로 바뀐다. 그러나 603호는 빈집이라는 답변이 온다. 위층을 직접 보기 위해 비상계단으로 올라간 수민은 복도에 가득한 음험한 종이 박스 바리케이드를 목도하고 황급히 뒤돌아서다 계단에서 중심을 잃는다. 위층의 상습적인 소음과 그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위층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공포영화 같은 모멘트다. 소설에서 아파트는 물리적으로 건설된 공간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 추이가 그로테스크하게 현상되는 피사체로 등장한다.
세번째 성은 새롭게 개시되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시’다. 「잠재적 이웃」의 주인공은 최근 저작권 중개회사를 그만두고 오랜 꿈이었던 프리랜서 번역가가 된 안나다. 그는 새로운 일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논밭과 야산을 뭉개고 올라선 거대한 콘크리트 축적물”처럼 보이는 ‘미니 신도시’로 이사를 한다. 서울로 연결되는 광역버스 노선을 갖춘 대단지로 전형적인 ‘베드타운’인 이곳은 신축 아파트와 주변 시설까지 갖춰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항아리 생할권’이기도 하다. 서울 그리고 그 안에서도 상급지에서 살기 위해 투쟁하고 있을 전 동료들의 우려와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어떤 선택에도 리스크는 따른다는 것을 상기한다. 막상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어보니 직장인 근무 시간보다 업무 시간이 더 소요되어 퇴근도 월급도 없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집이 곧 직장이기도 하니 실내 분위기를 위해 당근마켓에서 식물 고르는 것도 습관이 된다. 나이가 비슷한 여자라면 작은 화분을 인연으로 이웃이 되고도 싶었으나 식물덕후 ‘식덕’이라는 해박한 청소년 판매자에게 안나는 몬스테라를 사온다. 그리고 열대 식물이 아니라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에 백발의 노인 ‘장수하늘소’에게 파키라를 사온다.
네번째 성은 도처의 평범한 얼굴들, 바로 타자들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하비」의 주인공 민수는 학원 원장으로 살아가지만 친구의 보증을 섰다가 파산과 이혼을 겪고 부다페스트 아지트로 도피한다. 개혁을 꿈꿨던 운동권에서 이해타산에 밝은 소시민이 되기에 결국 실패한 것이다. 무방비 상태로 숨어 지내는 민수는 열쇠가 고장 난 작은 사건 하나에도 패닉에 빠지지만 건물 관리인의 도움으로 문제는 해결된다. 으레 남자라 생각했던 관리인 알렉스는 귀부인 같은 여성이었고, 말론 브란도 같은 백인이라 생각했던 아래층 남자 하비는 시리아 출신 난민이었다. 민수가 가졌던 편견은 전혀 예기치 못한 실체의 출현과 함께 부서진다. 「세상의 모든 K」 속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네 명의 여고 동창들은 유럽 유학과 박사학위를 거쳐 결혼한다. “캐슬, 그러니까 성에 초대받아 간 것 같았잖아. 쇼팽의 녹턴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고 테라스에서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바라보고”라고 회상하는 고학력 전업주부 친구들은 독일인과 결혼한 수진의 시댁을 시월드가 아닌 시토피아로 명명한다. ‘나’만 아버지의 부도와 뇌졸중으로 슈트라스부르크에 가기로 했던 K와 헤어지고 골프장 견습도우미로 시작해 가족을 부양하며 이삼십대를 보낸다. 긴 세월 친구들의 수다 속에 등장하던 수진의 시동생 카라얀은 뛰어난 인물과 재능을 갖춘 비운의 천재 피아니스트다. ‘K며느리’가 아닌 수진과 ‘나’는 부모님을 간병하는 맏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오십대가 되어서야 독일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사실 ‘나’의 목적은 친구들과 ‘나’를 구별하고 그들의 성을 견고하게 해주었던 카라얀을 만나보는 것이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나’와 카라얀만 동선이 엇갈리는 우연이 발생하더니 결국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는 그를 만나지 못한다. 카라얀이란 이름도 그의 실제 이름이 아니었고 한집에서조차 그를 만날 수 없었으니 오랫동안 ‘나’의 꿈속에서 성처럼 건재하던 우상은 실재도 아니었고 내 것은 더더욱 아니었던 것이다. 끝내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카프카의 K가 바로 자신이라는 걸 깨닫고 난 뒤 ‘나’는 조금 덜 외로웠을 것이다. 우리 모두 역시 K이기 때문이다.
성이라는 이상적 관념과 계급 의식을 설정하고 경도되는 대신 마을을 찾은 이들을 환대하고 사람이 사람을 추앙하며 살아가길 제시하는 성 모티프는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전언이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신기루를 오래 좇다 보면 모래바람 속 죽음만이 남을 것이다. 소통과 지지 그리고 연대와 협력을 향한 염원은 여러 작품에서 ‘이웃’이라는 다정한 단어로 압축된다. 표명희 소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 소설집에서도 광장에서는 들리지 않는 낮은 신음과 보이지 않는 높은 고통을 기입한다. 염세적이지 않게 그렇다고 성스럽지도 않게 우리들은 결국 다 성 밖에 머무르는 처지 아니겠냐고, 그러니 조금 더 충만하게 존립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묻는다. 성으로부터의 해방, 그의 소설은 새로운 질서를 써내려가고 있다. 성에 들어가기 위한 사선은 끝내 성문을 열지 못한다. 그러나 사선의 의의를 ‘들어감’이 아니라 ‘곁에 있음’으로 전환할 때, 성의 허상은 최초로 약해진다. 이 소설집이 제안하는 것은 성의 점령이 아니라 사선의 방향을 바꾸는 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