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죽은 전교 1등이 나타났다.”
야자 부활, 친구와의 이별, 모든 건 우연이 아니었다.
소설은 윤나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윤나가 재이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1학년이었다. 새 학기에 학생부장이 클렌징티슈를 들고 복장 검사를 했다. 예고한 적 있기에 윤나는 검사에 걸리지 않았다. 재이는 그날도 눈썹을 진하게 그리고 왔다. 결국 화장실에 가서 눈썹을 벅벅 지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며 이야기의 볼륨을 높였다.
그러니까 왜 안 지우고 왔어. 오늘만 참았으면 이런 모욕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네가 자초해 놓고서 울기는 왜 울어.
p.25
윤나는 재이의 눈썹을 그려 줬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깊이 알게 됐다.
둘은 다른 학교보다 자유롭다는 기순고등학교에 갔다. 반이 달라졌지만,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이 옆에 현서가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시기 학교에 교장이 바뀌었다. 교장은 학교를 치유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단속을 벌였다. 야자도 그중 하나였다. 야자가 부활하자 윤나는 자신의 꿈이었던 미용 학원에 다닐 수 없게 됐다. 결국 찾은 건 ‘강령술’이었다.
“저기 죄송한데 20년 전에 죽은 기순고 전교 1등 맞으세요?”
겨우 진정한 윤나는 귀신의 신원부터 확인했다. 만약 전교 1등이 아니시라면……. 먼 길 행차해 주셨는데 죄송하지만 그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다행히 그런 머쓱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귀신이 말하길, 자신의 이름은 백순지. 20년 전 죽은 전교 1등이라고 했다.
p.57
윤나와 순지는 서로를 위해 합의하기로 했다. 수월하게 상황이 정리되고, 원하는 것을 이룰 줄 알았다. 하지만 윤나는 순지가 온 건 우연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삶의 이면이 보이고, 무시하고자 했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을 거다. 윤나는 ‘보이지 않던 것을 끝내 보게 된 이상’(본문 p.80) 더 이상 눈앞의 일들을 모르는 척할 수 없던 것이다.
빠른 전개 속에서도 인물들의 심리는 절대 휩쓸리지 않는다. 작가는 인물 한 명 한 명을 섬세하게 다뤘다. 작품은 독자에게 저마다의 인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는 이들의 움직임과 시선을 쫓아 함께 움직일 것이다. 지금부터는 순지의 말에 우리가 조금만 더 마음을 열어 줄 차례다.
부당함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깔린 부당함은 때로는 역으로 작용한다. 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따라가야 한다거나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소제목은 작가의 말 일부를 발췌한 것인데 이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기억에는 여전히 부당함이 남았을 테니 말이다.
고등학교에서 체벌이 만연하던 시기는 조금 지났다고들 한다. 하지만 곳곳에 보이지 않는 부당함은 그림자처럼 붙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도 있겠지만, ‘거의’ 하나의 목소리를 내며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소리치기도 한다.
“폭력은 쓰시면 안 되는 건데. 아버님이 백번 잘못하셨지. 세대가 다르니까…… 기다리면 너희를 이해해 주시는 날도 올 거야. 그러니까 너희도 마음을 조금만 열어 줬으면 좋겠다.”
재이는 물을 입에 잠시 머금고 있다가 그대로 바닥에 뱉어 버렸다. 선생이 뭐 하는 짓이냐며 재이를 야단쳤다. 윤나는 재이가 뱉은 물이 피와 섞여 발갛게 변해 있는 것을 보았다.
p.154
어떤 이유라도 이해를 바랄 수 있을까. 어른들은 줄곧 세대와 기다림을 바라기도 한다. 소설은 이러한 지점들은 감추지 않고 가감하게 드러낸다. 등장인물들도 적극적으로 상황을 파헤치며 분명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들을 알려 준다. 이렇듯 부당함은 삼키는 것이 아니라 뱉어야 하는 거 아닐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는 십 대들의 아슬아슬한 선택
살아남으라는 말은 어쩌면 무책임을 담고 있는 듯하다. 어떠한 상황인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서로 물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20년 전 죽은 순지는 그동안 학교를 맴돌고 있었다. 많은 것을 보고 들었으며 학교가 달라지는 걸 가까이 지켜봤다. 하지만 오래전 벌어졌던 소독이 치유라는 이름으로 되풀이되는 걸 알게 됐다. 야자, 복장 단속 등 교칙이 강제적으로 생겼다. 아이들은 동요했으며 그때와 같은 아픈 일들이 벌어지리라는 걸 예감했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없던 일로 만들 생각 없어요.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요. 우리라고 조용히 있다가 적당히 졸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 아세요? 수업을 며칠이나 빠지게 되든 상관없어요. 그건 선생님들한테나 문제겠죠. 우리한테는 아무 상관 없다고요.”
p.139
순지가 그랬듯 아이들은 움직였다. 이건 살아남으려는 필사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지만, 무언가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그렇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여러 모양으로 변화를 꿈꿨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아이들은 ‘현서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돌아오고 싶을 때 언제라도 그곳을 찾을 수 있도록.’(본문 p.170) 살아남을 것이다.
『귀신 붙게 해 주세요』는 학교 교칙과 친구 사이를 밀도 있게 풀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애쓰는 인물들은 우리의 지난날 혹은 내일을 들여다보게 한다. 또한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문제작이라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에서
부당함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며 그 순간에 느끼지 못하는 행복은 한참 뒤에 떠올려 보아도 행복이 아니다. 그때 뭔가를 조금 더 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