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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싸락눈

12·3 내란, 신의 옷자락을 붙잡은 순간들


  • ISBN-13
    979-11-5706-535-6 (0334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메디치미디어 / (주)메디치미디어
  • 정가
    25,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6-02-09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박찬대
  • 번역
    -
  • 메인주제어
    정치 및 정부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정치 및 정부 #12·3 내란 #국회 #탄핵 #공적기록 #박찬대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10 mm, 376 Page

책소개

역사는 광장에서 시작되고 국회에서 완성된다

 

2024년 12월 3일, 불법계엄의 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는 흔들렸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추위와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동안, 국회 안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체포 1순위로 지목된 박찬대는 그날 밤 주저 없이 국회로 향했고, 이후 123일 동안 원내사령탑으로서 매일 선택하고 책임져야 했다. 이 싸움은 박찬대 개인의 정치적 이력으로 남길 이야기가 아니라, 주권자 국민께 반드시 보고해야 할 공적 기록이었다.

《검은 싸락눈》은 그렇게 시작된 책이다. 이 책은 12·3 내란과 그 이후 이어진 탄핵, 파면까지의 시간을 원내 내부자의 시선으로 기록한 ‘원내 전투 일지’이자, 민주주의의 진짜 주인공인 시민들에게 바치는 증언록이다. 

광장에서 시작된 시민의 명령이 국회라는 제도 안에서 어떻게 결단으로 이어졌는지, 그 치열했던 과정을 숨김없이 담아낸다. 이 기록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지금 박찬대가 갚아야 할 가장 시급한 빚이라는 고백과 함께.

목차

 

프롤로그_주권자에게 올리는 늦은 보고서 

 

Part 1 두 글자

01. 선포

02. 집결

03. 전조

04. 헬기

 

Part 2 역류의 시대

05. 촉발

06. 폭주

07. 선전포고

08. 9월의 경고장

09. 눈먼 감시자 또는 방조범

10. 감지된 진동

11. 반란군의 지갑

12. 진실의 거울이 된 게이트

 

Part 3 돌아오십시오

13. 군홧발

14. 해제

15. 병참 전쟁

16. 트로이의 목마

17. 탄핵의 불씨

18. 혼돈의 주말

19. 화이트보드와 사우나실

20. 스톡홀롬에서 온 편지

 

Part 4 가면 쓴 권력, 맨 얼굴의 신

21. 크리스마스의 배신

22. 여의도 체임벌린

23. 8개의 의자

24. 신의 옷자락

 

Part 5 심판의 시간

25. 무너지는 성벽

26. 체크메이트

27. 군인정신

28. 길 잃은 태극기

29. 법조 카르텔의 역습, 사법 탈옥

30. 입법 전쟁

31. 분노의 행진

32. 사건번호 2024헌나8

33. 대한국민의 다시 만난 세계

 

에필로그_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부록

본문인용

내가 이룬 성취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여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더 일하고 나서 쓰겠다”는 핑계로 미루고 또 미뤘다. 하지만 12·3 내란 1년 즈음, 이번 전쟁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 여러분이 광장에서 추위와 싸우며 대한민국을 지켜주실 때 과연 국회 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민주당은 내란 세력과 맞서 어떻게 싸웠는지 주권자께 소상히 보고드리는 것이 당시 원내사령탑으로서의 책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123일간의 ‘원내 전투 기록’이자, 그 승리의 진짜 주인공인 시민들에게 바치는 ‘증언록’이다. 이 기록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지금 내가 갚아야 할 가장 시급한 빚이라 믿는다.

-5~6p, 프롤로그 중에서

 

만약 진짜 계엄이 오면, 의원들은 바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이게 해야 해. 계엄 해제부터 해야잖아. 계엄 해제 전에 이미 국회가 계엄군에 점령된다면 국회의장과 함께 다른 장소에 가서 본회의를 열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해.

국회의장과 부의장은 만약을 대비해서 따로따로 움직여야 하고. 사무총장은 국회 경위를 움직이고 본회의장을 지켜야 한다. 단전, 단수, CCTV도 수시로 확인하고. 무방비 상태로 허둥지둥하지 않도록 원내를 안심시키며 지휘해야 해.

기억을 더듬어 나눴던 내용을 적었다. 녹음하거나 따로 기록하지 않았으니 실제 대화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주요 내용은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문서로 작성된 매뉴얼이 없었을 뿐,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날 밤 사무총장실에서 우리는 오랜 대화의 축적을 꺼내 썼다.

-47p, ‘02. 집결’ 중에서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에 맞선 과방위의 활동은 행정부 견제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사례였다. 6월부터 9월 사이,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라는 본질을 무시한 채 대통령 추천 2인만으로 운영되는 기형적인 ‘2인 체제’를 고수했다. 이 기형적인 구조를 악용해 KBS와 MBC 이사진을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갈아 치우려는 시도가 노골적으로 자행되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여당의 태업에도 불구하고 상임위 일정을 정상적으로 가동해 방통위를 소환했다. 방통위원장 이진숙 후보자 지명에 대해 즉각 지명 철회를 요구했고, 전례 없는 ‘3일 청문회’를 통해 부적격 사유를 낱낱이 파헤쳤다. 언론 단체와의 합동 기자회견, 방송독립 수호 활동 등이 이어졌다. 여권은 이 과정을 ‘야당의 방송 장악 시도’로 규정했다. 그렇게 규정한 근거는 없었다.

-85~86p, ‘06. 폭주’ 중에서

 

더 이상한 점은 기획재정부장관 최상목이 예산안 통과 전 찾아와서 딱 한 가지를 요청했는데, 그게 바로 예비비만 원안대로 통과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정부 사업비는 깎아도 되는데 예비비는 안 된다? 정말 기이하지 않은가. 경제를 살릴 돈도 아니고, 서민을 도울 돈도 아니다. 그저 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현금 뭉치를 지키기 위해 장관이 읍소를 하다니.

그 의문은 12·3 내란 이후 발견된 일명 ‘최상목 문건’을 보고서야 풀렸다. 문건에는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1)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안에 충분히 확보해 보고하고 2) 대한민국 국회 관련 자금을 완전 차단하고, 3)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내용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기재부장관 최상목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예비비는 계엄군을 움직이고, 비상 입법기구를 운영하며, 내란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군자금’이었던 것이다.

-125p, ‘11. 반란군의 지갑’ 중에서

 

4시 27분 드디어 대통령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가 방송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변명과 핑계, 그리고 국민 기만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는 “국회의 요청대로 군을 철수했다”면서도, “새벽인 관계로 국무회의 의결정족수가 미달이라 정족수가 충족되는 대로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국가비상사태에 국무위원들이 자느라 연락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방송 사고로 드러난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담화 영상은 생중계가 아니었다. 파일명 ‘XD-8104432’. 이미 03시 26분에 녹화된 영상이었다. 1시간 동안이나 영상을 묵혀두며 국회를 공포에 떨게 하고,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것이다. 해제를 지연시키며 또 다른 획책을 꾸미려 했던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들었다.

4시 30분 마침내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안이 의결되었다. 바로 10분 뒤 원내대표단과 함께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문을 보고 저희 민주당의 입장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계엄을 해제한다 해도 내란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더 이상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없음이 온 국민 앞에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즉시 하야하라! 국민의 명령이다!

-165p, ‘14. 해제’ 중에서

 

명단을 받아 든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았다. 12월 4일 새벽 계엄 해제 표결에 참석했던 18명의 이름, 이미 내 머릿속에 각인된 이름들에 하나하나 동그라미를 쳤다. 그 18명의 이름이 대한민국을 구할 마지막 생명줄 같았다. 나는 준비된 제안 설명을 마친 뒤, 떨리는 손으로 명단을 펼쳤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이 방송을 보고 이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돌려 본회의장으로 뛰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민의힘 의원 여러분” 본회의장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108명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했다. “강대식 의원, 강명구 의원, 강민국 의원….” 이름을 하나씩 부를 때마다 목이 메었다. “권성동 의원, 김기현 의원, 나경원 의원….” 중진들의 이름을 부를 때는 국민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제발 이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국회로 와달라고 비는 마음이었다.

동그라미로 표시해둔 계엄해제 표결에 참여했던 18명의 의원 뒤에는 간곡한 덧말을 붙였다. “돌아오십시오. 제발 돌아오십시오.” 다른 의원들의 이름을 부를 때는 간곡한 호소였지만 희망의 불씨 같던 그 열여덟 의원들에게는 ‘타는 목마름’으로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절규를 바쳤다. 본회의장을 지키고 있던 야당 의원들이 복창해 주었다. “돌아오십시오.” 바로 길 건너 광장에서는 100만 시민들도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함께 목 놓아 불렀다.

 -182~183p, ‘17. 탄핵의 불씨’ 중에서

 

그날의 연설은 나 스스로도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연설이었다. 시대를 꿰뚫은 한강 작가의 통찰,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원고를 써 내려간 김경환 보좌관의 고뇌,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우리의 절박함이 빚어낸 결정체였다. 우리 민주당의 최대 승부수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침묵하던, 혹은 망설이던 양심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외쳤다. “국민의힘 의원 여러분, 마지막 기회입니다. 역사의 문을 뛰쳐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으십시오.”

당론과 위협을 뚫고, 양심을 지킨 몇몇 의원들은 ‘역사의 문을 뛰쳐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꽉 붙잡았다. 그 용기 있는 손길들이 모여 12월 14일의 기적같은 가결을 만들어냈고, 대한민국은 다시 ‘민주공화국’이라는 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한강 작가의 질문에 ‘그렇다’를 넘어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고, 산 자는 서로의 어깨를 겯고 도와 다시 일어섰습니다.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민주주의의 성벽을 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11~212p. ‘20. 스톡홀롬에서 온 편지’ 중에서

 

긴급 기자회견과 동시에 우리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1월 8일 내란의 진상을 규명할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이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됐다. 결과는 여전히 절망스러웠다. 각각 200표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으나 내란특검법은 찬성 198표, 김건희특겁법은 찬성 196표로 모두 폐기되고 말았다. 본회의장 로텐더홀에서 열린 규탄대회에서 나는 끓어오르는 울분을 토해내며 이렇게 일갈했다.

내란특검법과 김건희특검법이 부결되었습니다. 국민의힘 내에 양심과 소신을 가진 의원이 불과 8명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한 소돔과 고모라처럼 국민의힘도 망하게 될 것입니다.

좌절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부결된 바로 다음 날인 9일 곧바로 전열을 재정비했다. 여당이 독소조항이라 비난했던 부분을 수정한 ‘제3자 추천’ 방식의 내란 특검법을 다시 발의했다. 국회 법사위 소위를 즉각 통과시키며, 우리는 저들에게 “당신들이 아무리 부결시켜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권한대행 최상목이 중재자 흉내를 내며 나섰다. 그는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니 여야가 합의해 특검법을 만들어 달라”며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사실상 멈춰 세우려 했다. 나는 즉각 반격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이 내란 우두머리와 경호처의 눈치를 보고 결국 그들 뜻대로 시간을 끌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는 권한대행 최상목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는 초강수를 두며, ‘대통령 윤석열 체포가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타협은 없었다.

-248~249p, ‘25. 무너지는 성벽’ 중에서

 

윤석열이 유유히 관저로 돌아간 지 나흘 뒤인 3월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충격적인 진실이 폭로되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오동운 공수처장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법원의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법원이 제시한 ‘시간’ 기준을 따르더라도, 기소는 적법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귀를 의심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의 설명은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가 체포적부심(구속적부심)을 청구하면, 수사 기록이 법원으로 넘어가 있는 동안은 구속 기간 산정에서 제외된다(불산입). 윤석열측이 청구했던 체포적부심 때문에 수사 기록이 법원에 머물렀던 시간은 정확히 10시간 32분이었다. 이 시간을 더해서 다시 계산하면 어떻게 되는가.

법원 논리대로의 구속 만료 시점 : 1월 26일 저녁 7시 39분

검찰의 실제 기소 시점 : 1월 26일 저녁 6시 52분

결국 검찰은 구속 만료 47분 전에 기소를 완료한 것이었다. 날짜(日)로 따져도 적법했고, 법원이 억지를 부려 시간(時)으로 따져도 적법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판사들이 이 초보적인 산수를 몰랐을까? 검찰은 이 사실을 모르고 항고를 포기했을까? 아니었다. 그들은 알면서도 눈을 감았다. 법원은 계산기를 조작해 ‘불법 구금’이라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검찰총장은 “법원 판단 존중”이라는 핑계로 서둘러 문을 열어주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 완벽한 사법 사기극, 윤석열의 사법탈옥이었다.

-280~281p, ‘29. 법조 카르텔의 역습, 사법 탈옥’ 중에서

 

나는 3월 30일 일요일 오전 11시 국회 본청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국무총리 한덕수와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를 향해 던지는, 물러설 곳 없는 마지막 통첩이었다. 나는 떨리는 분노를 억누르며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결정에 나라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윤석열 파면이 아니라 나라를 파멸로 이끌 결정을 내린다면, 신(新)을사오적으로 역사에 오명을 남길 것입니다.

‘을사오적’. 1905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에 비유하며, 만약 기각 결정을 내린다면 역사에 역적(逆賊)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가장 수위 높은 압박을 가했다. 그리고 권한대행 한덕수를 향해서도 못을 박았다.

한덕수 총리에게 엄중 경고합니다. 4월 1일까지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십시오. 이행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중대한 결심을 할 것입니다.

4월 1일. 데드라인을 명확히 그었다. 만약 이때까지 임명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가진 모든 권한을 동원해 파국도 불사하겠다는 경고였다.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패를 테이블 위에 쏟아부었다.

우리의 승부수가 통했다. 권한대행 한덕수에게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촉구하며 못 박았던 데드라인, 바로 그날인 4월 1일 헌법재판소가 드디어 응답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 기일을 4월 4일 금요일 오전 11시로 지정합니다.

-302~303p, ‘32. 사건번호 2024헌나8’ 중에서

 

처음부터 이 책은 4월 4일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원내에서 치른‘내란 전쟁’을 기록하는 것이 당시 원내대표였던 나의 책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을 위협했던 가장 위태로운 순간들을 정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2024년 12월 3일의 내란, 아니 그 이전 4월 총선부터 이듬해인 2025년 4월 4일의 파면까지. 파편화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건들을 한차례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만큼, 2025년 4월 4일 찬란한 민주주의 승리의 낮을 만든 날들도 중요하게 기억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물론 역사는 계속 흘러갔다. 제22대 대통령선거와 이를 통한 이재명정부의 출범 등 역동적인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치열한 복구의 시간은, 또 다른 호흡으로 기록되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한다.

-313~314p, 에필로그 중에서

 

 

 

 

 

 

 

 

서평

민주주의가 흔들리던 밤, 국회는 무엇을 붙잡았는가

주권자에게 올리는 보고서

 

정치인의 삶을 돌아보고 비전을 책으로 남기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박찬대는 오래도록 그 선택을 미뤄왔다. 아직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취를 온전히 개인의 공으로 말할 수 없었고, 기록이 자칫 무용담처럼 읽히는 일을 경계했다. 하지만 12월 3일 이후, 국회 안에서 벌어진 선택과 책임의 과정을 주권자에게 보고하는 일은 회피할 수 없는 책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주권자에게 올리는 늦은 보고서’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의 밤, 시민들이 광장에서 추위와 싸우며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동안 국회 안에서는 어떤 선택과 결단이 이어졌는지, 당시 원내사령탑이었던 저자가 국민께 소상히 보고하기 위해 쓴 기록이다. 이 책의 출발점은 단 하나의 질문이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때, 국회는 무엇을 했는가.

Part 1 ‘두 글자’는 계엄 선포 당일 밤 국회를 사수하기까지의 긴박한 시간을 분 단위로 복원한다. 담을 넘다 부상을 입은 원내대표, 문서도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작동한 즉석 지휘, 헬기와 병력이 국회를 향하던 순간까지. 이 장은 계엄 해제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 기록이다.

Part 2 ‘역류의 시대’는 12·3 내란이 하루아침에 벌어진 사건이 아님을 추적한다. 총선 이후 누적된 권력의 불안, ‘반국가 세력’ 프레임, 군과 권력의 위험한 결합, 언론과 여당의 방조까지. 저자는 회계사 출신 정치인의 시선으로 예산과 권력의 흐름을 짚으며, 국회가 감지해 온 경고 신호들을 차분히 드러낸다.

Part 3 ‘돌아오십시오’는 계엄 해제 이후 탄핵 가결에 이르기까지의 12일을 다룬다. 군홧발이 본청을 밟고, 김밥과 컵라면으로 버텨낸 병참 전쟁, ‘108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던진 양심의 호소. 이 장은 숫자와 표결의 이면에서 국회가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는지를 보여준다.

Part 4 ‘가면 쓴 권력, 맨 얼굴의 신’은 대통령 직무 정지 이후에도 계속된 권한대행 체제의 방해와 헌법재판소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제도적 싸움을 기록한다. ‘합리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권력의 민낯과,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요구되었던 냉혹한 결단들이 이어진다.

Part 5 ‘심판의 시간’은 체포에서 파면 선고까지, 법치가 다시 작동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군인과 시민이 만든 인간 방패, 법과 제도를 둘러싼 마지막 공방, 그리고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선고의 순간까지. 이 장은 민주주의가 결국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기록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말한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고. 그러나 그 봄은 저절로 오지 않았다. 《검은 싸락눈》은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123일의 기록이자, 그 승리의 진짜 주인공인 시민들에게 바치는 증언록이다. 이 기록은 지금 그가 미룰 수 없이 갚아야 할, 주권자에게 진 빚에 대한 응답이다.

저자소개

저자 : 박찬대
제22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초대 원내대표. 인천 연수구(갑) 국회의원.
평범한 공인회계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뀐 것은 2009년 5월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路祭)가 열리던 날, 무작정 인파를 뚫고 들어가 운구차에 손을 얹고 기도를 올렸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 대통령의 유지는 그를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거쳐 현실정치의 길로 이끌었다.
2024년 5월, 171석 제1야당 원내사령탑에 취임한 뒤에는 입법부의 권능을 회복하고, 폭주하는 윤석열 정부를 감시·견제하는 데 매진했다. 숫자에 밝은 회계사 출신의 전문성과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의 강단으로 '실천하는 개혁 국회'를 이끌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따박따박' 해내는 우직한 실천가. 2009년 그날, 운구차 앞에서 다짐했던 '깨어있는 시민'으로서의 약속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메디치 가문은 중세 말 근대 초기에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의 리더이자 후원자였습니다. 지구상에 여러 명문가가 있었지만 메디치 가문은 이름을 오래 남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금융업으로 기반을 다져서 피렌체의 시정을 담당했고, 문화와 예술을 후원했습니다. 르네상스, 문예 부흥에는 메디치 가문의 기여가 컸습니다. 단테, 페트라르카,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메디치 영주의 식탁에서는 도시국가 피렌체의 현안인 군사, 외교, 행정, 재정뿐 아니라 문학과 미술, 건축에 관해서도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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